마음에게 '맘껏' 휴식을
최근에 부쩍 마른 친구가 있다. 입을수록 조금씩 늘어나는 고무줄 바지처럼 서서히 옆으로 퍼져만 가는 나이 살에 한숨이 절로 나던 나는 괜스레 부러운 마음까지 들었지만 역시 걱정이 앞섰다. 나이 들어 갑작스레 살이 빠지면 우리끼리 장난스럽게 내뱉는 말로 '없어 보인다'. 그러다가 그 상태가 지속되면 '안돼 보이다'가 어느 날 깊게 파인 입가의 팔자 주름이 선명해지면서 팍 싹 늙어 보이고 만다. 최근에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그만둔 친구는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했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안 먹던 술까지 진탕 먹고 기절해봤지만, 이 술기운은 새벽을 넘기지 못했고, 귓가에 윙윙되는 어둠의 또렷한 소리들을 들으며, 멍한 눈은 천장의 한 점을 향한 채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했다고 했다. 한 달 전 그녀는 지긋지긋하게 다니던 회사를 상사의 입에서 '희망퇴직'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손을 번쩍 들어 용감하게 관두고 몇 년 치의 월급과 퇴직금을 두둑하고 챙기고 환하게 웃었다. 지금부터 하고 싶은 일을 찾겠다고 모두에게 선언을 했다. 그런데 몸은 편해졌는데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헤매는 마음이 수시로 울렁거리며 불안해졌다. 출근도 야근도 하지 않으니 몸은 쉬는데 하루 종일 들썩들썩 분주한 마음이 쉬질 못하는 거였다. 그러니 잠이 잘 올리가 있을까? 이 고약한 현실 앞에 난 그녀의 손을 꽉 쥐었다. 앞일은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이고,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건 당연한 일이고, 욕심을 쫓지 않기로 했으니 욕심을 버리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퇴사 후의 후유증' 같은 어지러운 시간들을 잘 견뎌내야 한다고. 그리고 그 후에야 드디어 하고 싶은 것들이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법이라고. 마음에도 절대적인 휴식이 필요하다. 마음이 그야말로 '맘껏' 쉬지 못하면 그것이 만병의 원인인 스트레스 덩어리로 딱딱하게 들러붙어,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사는 일인 '먹고 자고 숨 쉬는 일' 이 힘겨워지고 만다.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란 틈틈이 놀꺼리를 만들어 같이 시간을 보내고, 그녀보다 더 평범하고 보통의 날을 보내면서도 그저 철없는 아이처럼 즐거운 나를 보여줌으로써, 그녀를 억지로라도 웃게 하는 것이 전부다. 그녀도 나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에 대한 당연한 이유와 그 속에서 문뜩 알듯말듯한 가슴속 여운을 남기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빙긋 미소 짓게 하는, 소소한 유희들을 스스로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녀와 독한 커피를 두 잔이나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대학 후배에게 문자가 왔다. 무심코 연 그 문자엔 같은 동아리 후배이자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얻게 된 회사 후배이기도 한 녀석이 오늘 아침, 갑자기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이었다. 화들짝 놀란 마음에 후배에게 전화를 걸자 연신 한숨을 거칠게 쉬며 "선배.. 어떡해요... 사는 게 너무 허망해요. 아직 하늘로 가긴 너무... 하잖아요. " 후배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며 울먹였다. 나는 그 순간 멍하니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이틀 전 카톡으로 선배 사는 게 너무 녹녹지 않다고 짜증 어린 투정을 하던 그 녀석의 이야기가 환청처럼 귓가에 울려 퍼졌고,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신입시절의 그 녀석의 얼굴과 대학시절 같이 광고학 수업을 들으며 나누었던 토론 아닌 토론을 하던 그 녀석의 날이 선 눈빛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이렇게 허망하게 갈 줄 알았다면 힘들어한던 그 밤에 달려 나가 같이 술이라도 한잔 마셔주며 이야기라도 실컷 들어줄 걸 하는 가슴 아픈 후회가 성큼성큼 밀려들었다. 최근 몇 달 동안 계속된 후배의 과로는 스트레스를 살찌우고 그것이 몸과 마음을 암세포처럼 뜯어먹으면서 돌연사라는 끔씩한 결과를 남기고 만 거였다.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며 버스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눈치 없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고 그 푸르름을 뚫고 내리는 가녀린 햇살이 눈부셨다. 그랬구나. 그래서 오늘 아침부터 왠지 우울했구나. 여름의 열기가 가신 듯한 가을바람 탓인가 했더니, 그렇게 나와의 소중한 인연과의 이별을 예고하는 거였다. 도대체 누가 줄 수 있을까? 아니 누가 주는 것일까? 우리에게 꿀맛 같은 마음의 휴식은. 하늘나라로 훨훨 날아가기 전에는 불가능한 것일까?
<해결책> 머리가 쉬어야 마음이 쉬는 법. 생각이 필요 없는 다음이 빤히 보이는 그러나 재미있는 막장 드라마나 만화책을 마지막 회까지 몰아볼 것. 그러다 머릿속에 텅텅 비어갈 무렵, 목욕이나 샤워를 한 후, 차가운 맥주 한잔을 마시며 크게 심호흡을 해볼 것. 맘이 노곤 고곤 해진다면 대성공.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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