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어둑 해가 지면 슬슬 주점들과 식당, 라면집, 가라오케 그리고 정체불명의 클럽들까지 저녁 장사를 준비를 한다. 그리고 여지없이 그 가게 앞엔 손 때 묻은 앞치마를 얌전히 두르고, 흔히 우리가 삐끼라고 부르는 종업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좁은 상가 골목을 채우기 시작한다.
' 이럇샤이 마세. 어서 오세요. 오늘의 추천 메뉴는...'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좁은 골목에 우렁차게 퍼진다. 그 덕분인지 지친 퇴근길이 조금씩 활기 차 보였다. '오늘 오랜만에 한잔할까' 하고 골목을 서성이다 열심히 호객행위를 하는 상냥한 미소의 언니와 눈이 마주쳤다. 혼자 뭉그적뭉그적 망설이는 나를 살가운 미소와 함께 가게 안까지 따라 들어와 안내를 하고 차가운 물수건을 권하고, 즐거운 시간 되라는 '당부의 인사'를 남기고 그녀의 자리로 돌아갔다. 역시 일본인들의 부지런함과 친절은 몸에 밴 타고난 근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덕인지 일본 사람들은 그 옛날의 나 만큼 늘 피곤해 보였다.
구스리야. 약국이라고 부르는 곳에 가면 가장 눈에 뜨이는 입구에 놓인 상품은 바로 로열제리. 비타민 드링크 등과 같은 자양강장제, 피로회복제이다. 그 종류가 너무나 다양해서 놀랐고, 그 녹녹지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엄청난 양이 팔려나간다는 사실에 놀랐다. 얼마나 피곤하면, 얼마나 일이 지치면 이렇게 약을 먹어가며 버티는 걸까? 나 또한 10년이 넘게 광고회사를 다니며 만성 피로와 어깨 통증, 스트레스들을 달고 살았지만, 이렇게 약을 먹어가며 버틴 적은 없었는데 말이다. 정말 힘들다 싶으면 마자시 샵에 의존하기는 했지만 한 번도 중년 아저씨들의 전유물 같은 소위 '몸에 좋은 약'들에 손을 댄 적은 없었다.
일본은 이렇게 늘 피로하다. (지금의 대한민국도 달라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을 짓누르는 듯한 부담감과 책임감이 피로라는 이름의 꼬리표가 된 덕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하기도 하지만, 희미한 눈빛과 표정 없는 얼굴의 그들에게 그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졌다. 즉 내 눈에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일본은 우울증이 암보다 더 무서운 병으로 취급되고 있다. 어느 날, 그들 중 누군가는 갑자기 달리는 아침 덴샤, 전철 앞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또 그들 중 다른 누군가는 예고 없이 세상과 소통을 끊고 자신만의 세계로 숨어들기도 한다. 아마도 다급하게 도망치듯 도쿄로 뛰어든 나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우울증이란 자신답지 못한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 그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오는 마음의 병이라고 한다. 잘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긍정의 마인드는 스스로를 끝없이 몰아붙이게 하고 피곤하게 한다. 그 피곤은 어떻게 해도 자신이 원하는 자신이 되지 못하는 현실을 원망하는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가끔은 자신을 어떤 기준도 아닌 무방비로 방치해주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지금의 나에게도 그 유연함이 간절한지 몰랐다. 더 이상 나를 짓누르는 피로에 덜미를 잡혀서 살기 싫으니까. 그저 조금은 게으르고 헐렁하게 살아가고 싶으니까.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