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의 첫 면접

by anego emi


이곳 도쿄에서의 나의 첫 번째 면접은 그야말로 친구 따라 강남 간 덕이다. 같은 동네에 사는 클래스의 친구들을 따라 취업 센터에 갔다.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새로 생긴 돈가스 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기 때문이다. 나는 솔직히 도쿄에서 취업을 할 생각이 별로 없었고 이렇게 무거운 나이를 감히 어떤 회사가 감당해 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와 달리 취업센터에 드나드는 것이 학생 휴게실만큼 익숙한 그녀들은 취업 담당자가 내미는 지원서를 꼼꼼히 검토하고 이것저것 질문들을 쏟아냈다. 멍하니 테이블에 앉아 공모전 관련 자료를 뒤적이는 나를 담임 선생님이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 어... 김상도 이제 취업할 마음이 생긴 거야? 그럼 우리가 적극 도와야지" 하고 디자인과의 취업 담당인 동그란 인상에 제법 살집이 있는 40대로 보이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와 잠시 이야기를 했고 그는 나에게 다가와서 자신의 명함을 건네고 이력서와 포트 폴리오 준비에 관한 설명을 시작했다. 내가 졸업작품 심사에서 상도 받았고 성적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는 적극적으로 이곳저곳을 소개하며 자신감을 갖고 함께 도전해 보자며 어색하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그 후 그분의 적극적인 노력 덕분에 나는 다양한 회사의 취업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의 이력서와 포트폴리오에 관심을 보인 낯선 게임회사의 아트 디렉터로 지원하게 되었고 인사 담장자와의 일차 면접을 마친 후 드디어 사장 면접을 보게 되었다. 나의 뜻밖의 게임회사 면접에 주변 친구들은 의외라는 듯 깜짝 놀라 했다. "어머, 그건 언니 그림이랑 전혀 안 맞는데. 언니랑 어울릴까? " 하고 고개를 꺄우뚱했다. 나랑 늦깎이 유학생이라는 공통점으로 절친이 된 대만 출신 동생 또한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에헤? 누나가 게임회사를? 그건 상상이 안되는데..." 솔직히 그들의 이 네거티브 한 반응은 고스란히 내 가슴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메아리처럼 맴도는 고민과 의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과분하게 넘쳤던 노력과 관심에 보답하기 위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금요일 아침, 오랜 만에 정장을 꺼내 입고 롯폰기 근처의 게임 회사로 향했다. 예상보다 멀쩡한 회사 분위기에 머쓱해하며 면접시간을 기다렸다. 전에 만난 적이 있는 인사 담당자가 나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잠시 후, 적당히 물이 빠진 청바지에 하늘색 셔츠와 타이를 맨 40대 후반의 사장님이 알듯 말듯한 미소와 함께 등장했다. 제법 눈매가 매서웠다. 역시, 사장님들의 눈빛에는 남다른 것이 있다. 회사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과 긴장감 탓인지 주위를 압도하기에 충분한 그 무엇이 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에게 직원들이 좀 전에 그려낸 듯한 따끈따끈한 게임 캐릭터의 섬네일을 뜬금없이 내밀며, 개선할 점을 말해보라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눈이 동그레 졌다. 허거덕.. 학교에서 흔히 오타쿠라 불리던 아이들이 맨날 삼삼오오 모여 그리던 그림들이 내 눈앞에 쭈르륵 펼쳐져 있었다. 그 순간에 '역시 이곳은 내가 올 곳이 아니다'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한 번도 그려본 적도 관심 가져 본 적도 없는 이 그림들을 개선하고 흔히 나다운 아우라, 세계관을 그 속에서 펼쳐 보인다는 게 과연 노력만으로 가능할까? 나는 아니라는 확신이 들자 긴장감이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솔직한 나의 감상을 객관적으로 털어놓았고 두서없는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듣던 사장님의 얼굴에는 오묘한 미소가 돌았다. 그 미소의 의미는 굳게 다문 그의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나는 오랜 사회생활 덕분에 충분히 알 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것저것 이 업계의 입문을 위한 충고와 자신의 경험과 현재의 고민 등을 부담 없이 털어놓는 것으로 그날의 면접은 마무리되었다. 창밖에는 아직 의슬의슬한 한기를 품은 겨울비가 멈추지 않고 내렸다. 오랜만에 신은 구두덕에 발가락이 욱신 욱신 쑤셔왔다. 따듯한 캔커피 한잔을 뽑아 들고 지하철을 기다리며 갑자기 그 옛날, 15년 전의 나의 신입사원 면접날이 생각났다.


광고라곤 광자도 몰랐던 나에게, 그저 문과 출신이니 글 쓰는 일이라면 어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자신감으로 몇 달간 끄적였던 나의 습작 카피들을 담은 노트를 펼쳐 보이며, 열심히 죽기 살기로 나의 생각을 떠들어 댔다. 그런 나를 흐뭇한 미소와 함께 눈여겨 봐 주었던 면접관 덕분에 난 기적처럼 최종 면접을 통과하게 되었다. 입사 후 그분이 그랬다. 그날의 내 모습에서 그 옛날의 자신이 보였다고. 그날의 그 마음, 잃어버리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그렇다. 면접이라는 녀석을 사로잡는 법은 예상외로 간단하다. 얼마나 내가 이 일을, 이 곳에서 하고 싶은 지가 그날의 키를 쥔 누군가에게 전달되면 되는 거다. 유창한 말도, 세련된 메너도 중요하지 않다. 진실된 그 마음은 반듯이 통하는 법이다. 더 더욱이 그 회사를 책임지고 이끌어야 하는 인물이라면, 더욱 그 간절함에 대한 싸인에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사랑도 그렇지 않은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척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를 지키는 것에 그치는 쓸모없는 자존심은 버리고 그런 척하는 마음을 버리고 진실을 어필하면 된다.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날의 면접은 도쿄에서 조금이라도 그림이라는 녀석을 붙들고 살아가기 위한 나의 피난처에 불과했다. 그 진심이 여지없이 그 사장님의 눈에 포착되었다는 걸 난 그날의 그 미소에서 단박에 알아차렸다. 돌아오는 길에 그분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그러하지만, 일본의 면접은 좀 더 실무적인 돌출 질문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특별히 실기시험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에 버금가는 테스트가 반드시 면접의 중간에 등장한다. 그러니 그 일에 대해 혼기, 솔직한 마음으로 꾸준히 준비하지 않았다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의 각오로 그곳에 서지 않았다면 그 진실의 답을 면접이라는 녀석에게 어필하기에 힘이 들것이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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