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생은 일하지 않습니다28

그대 길을 잃었는가?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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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점심을 편의점 샌드위치로 때울 요량으로 집을 나왔다. 폭신폭신한 에그 샌드위치를 한입 크게 물면서 내 발 밑으로 떨어지는 벚꽃 잎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솜사탕을 가늘게 찢어 놓은 듯한 구름이 덮인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속에서도 봄날의 햇살이 유별났다. 순간 나는 봄날의 만개한 벚꽃을 떠올리며…‘석촌 호수 역 경유’하고 쓰여있는 마을버스에 올라탔다. 이게 얼마만 인가?


평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넘쳐났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어머님들, 팔짱을 낀 연인들, 소방대원처럼 주홍 색 조끼를 맞춰 입은 중국 관광객들… 호수를 따라 흐드러지게 핀 벚꽃 아래를 각자의 소음을 내며 사푼사푼 걷고 있었다. 나 또한 꽃과 호수와 하늘을 번갈아 보며 봄날의 행렬에 기꺼이 동참했다.


한참을 걷던 중, 어디에선가 우렁찬 북소리가 들렸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북소리가 새어 나오는 가파른 계단 너머를 빤히 보다가 그곳으로 향했다. 국악 공연을 위한 돔 형태의 공연장이었다. 주말 공연을 위해 리허설 중이었고 객석은 띄엄띄엄 공연을 관람하는 어르신들로 채워졌다. 20대로 보이는 생기 넘치는 여인들이 허리춤을 동여맨 발목까지 오는 긴 검정 치마를 입고 크고 작은 각자의 북들을 신나게 쳐댔다. 쩌렁쩌렁한 북소리와 함께 절도 있는 그녀들의 몸놀림과 상기된 그녀들의 얼굴에서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무대 앞으로 걸어 들어오는 그녀들의 하얀 버선발을 보자 갑자기 눈물이 차 올랐다. 지금 갈 길을 잃은 나는 스스로 정해놓은 앞 길을 향해 하얀 버선발을 내딛는 열정 넘치는 그녀들이 순간 가슴 시리게 부러웠다.


꽉 찬 눈물 덕분에 시야가 흐릿해진 나에게 누군가 묻는 듯했다. 그대… 길을 잃었는가. 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다시 눈을 감고 가라. 누군가는 또 말했다.


어느새 북소리는 사라지고 그녀들이 무대를 향해 인사를 했다. 기분 좋은 바람을 타고 벚꽃 비가 내렸다. 한 줌의 뜨거운 눈물을 꼭 감은 두 눈에서 속 시원히 쏟아내며 나는 그녀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가던 길을 갔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가던 길이 있었다. 봄날의 벚꽃이 나를 오랜만에 기다리던 그 길…


해결책 : 일 때문에 가지 못했던, 포기했던 수많은 것들을 떠올려본다. 그것들을 그저 봄날의 산책을 가듯 편안하게 시작해 본다. 그렇게 새 길을 찾을 이정표들을 만들어 간다.


<아네고 에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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