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나보다 두 해 앞서 회사를 떠난 선배 언니가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전화를 끊기 전에 건네는 인사다.
처음에는 그 흔한 그 말이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 끊어진 그녀의 전화를 여전히 귀에 대고, ‘왜 나에게 자꾸 힘을 내라는 거야, 난 잘 살고 있는데…’하는 삐딱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걸 속된 말로 자격지심이라고 하는 걸까? 이 바닥에서 한 획을 그을 것처럼 미처 날뛰던 내가, 그야말로 제대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때인 제2의 20대라는 불혹을 넘기자마자, 어이없이 방구석으로 방향을 튼 탓일까?
분명 언니의 속내는 그런 뜻도 그럴 의도도 아니었을 거였다. 단지 전업주부가 된 자신에게 그리고 별일 없이 사는 나에게 기죽지 말자고 그리고 더 씩씩하게 살자고 한 응원의 말일 터였다.
그런데 이 당황스러운 나의 자격지심은 지인들의 모임에서도 여지없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나오고 제법 큰 금융그룹의 회계사로 일하는 대학 동창이, 오랜만에 서울로 여름휴가를 와서 친한 동기들을 불러 모았다. 물론, 그와 나는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인연을 이어가는 베프다. 당연히 그는 나의 행보를 속속들이 알고 있고 그 누구보다 나의 결단을 지지했다. 문제는 나머지 동창들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대학 동기 모임에 나간 적이 없는 나를 궁금해하던 그들에게 지금의 나는 어떻게 비칠까? 시시콜콜 나의 역사를 까발리며 나는 말이야… 그러니까… 하는 구차한 변명 같은 화두로 나의 처지와 근황을 대신해야 하는 걸까? 솔직히 안 가면 그만일 자리였지만 그나마 나를 기억해주는 고마운 친구들과 영영 담을 쌓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아울러, 나의 이‘어쩔 수 없는 마음’은 내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이고, 이런 애매한 상황들은 내가 방구석에서 남은 생을 보내기로 결심하지 않은 이상 언제고 맞닥뜨려야 할 일이었다.
8월 말임에도 불구하고 초저녁의 여름밤은 여전히 끈적끈적 되었고, 인사동의 전통주점에서는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뒤섞이며 김광석의 구슬픈 노래를 무색하게 했다. 반쯤 열린 문으로 나는 이미 중년의 포스가 묻어나는 동창들을 확인하고, 무릎 아래까지 오는 검정 원피스의 주름을 단정히 펴고 주점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대학시절 늘 그랬듯이, 나는 가장 늦게 등장하는 유일한 홍일점이었다. 동기들은 다양한 회사의 중간 관리자로써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었고, 그들이 내민 명함들이 꽉 쥔 나의 왼 속 안에 두툼하게 쌓였다. 그러나 그중 그 누구도 내가 나의 근황을 단박에 말해줄 명함을 그들에게 건네지 않은 것과 내가 요즘 뭘 하고 사는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몇 잔의 술이 오가고 나는 이‘어쩔 수 없는 마음’을 극복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나는 동기들에게 선언을 하듯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말이야… 남은 생은 이제 일 안 하려고. 남의 돈 벌어 주는 일… 재미도 보람도 없더라.” 동기들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나를 향해 환한 미소와 함께 잔을 들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결정이 마냥 부럽다면서, 자신들은 하고 싶어도 못하니까 너라도 신나게 하라고 나를 추켜세웠다. 그리고 이 자리의 주인공이자 내의 베프는 엄지 손가락을 척하고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래, 이제부터라도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멋지게 살아라. 술과 밥은 우리가 실컷 사 줄게. ” 어쩔 수 없는 마음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 행복한 밤이 깊어갔다. 그 후, 나는 이제 힘내라는 선배 언니의 말에 “ 응 언니. 힘 낼께 ”하고 큰 목소리로 씩씩하게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해결책 : 대학 동기들 모임이나 회사 모임에 나가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당당하게 지금은 인생의 2막을 위한 휴지기라 선언하고, 지인들이 사주는 맛있는 밥과 술을 덤으로 먹는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