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가 된 시

by anego emi

밥은 천천히 먹고

길은 천천히 걷고

말은 천천히 하고

네 책상 위에

'천천히 '라고 써 붙여라

- 피천득의 '인연'중 서영이에게 중에서 -


올해는 행복한 행복한 느림보가 되자!

'천천히' 가는 사람이 세상을 '천천히' 볼 수 있음을 아는 당신 -

늘 새로운 생활을 생각하는 CJ mall이 서둘러 꼼꼼히 준비합니다.

느림의 행복 속에서 당신의 알찬 생활을 찾아 드릴 수 있도록.


의미를 압축하고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말만 남기는 시와 카피는 서로 닮은 점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카피라이터들은 가끔은 시를 읽으며 카피를 구상하기도 합니다. 뜻하지 않게 머릿속에 번쩍 하고 들어온 시 한 구절이 단초가 되어 멋진 헤드라인으로 탄생하기도 합니다. 위의 카피도 어쩌면 '천천히'라는 시 한 구절이 단초가 되어, 그와 반대로 빠르고 알찬 쇼핑을 약속하는 인터넷 쇼핑몰의 존재 이유를 말하는 카피로 탄생했는지도 모릅니다. 단박에 이해가 되지 않지만, 곱씹을수록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무엇보다 시를 읽는 듯이 카피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식이 접근 법은 브랜드의 콘셉트를 전달하기에 효과적입니다. 브랜드 콘셉트이란,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하는 약속을 의미합니다. 명확한 제품 광고에 비해 다소 두루뭉술하고 광범위한 의미를 내포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것을 말해줄 인도우저, 화자가 필요한 법이죠. 위의 카피의 경우는 시 한 편이 화자가 되어, 천천히 가는 것이 행복인 요즘 시대지만 당신의 생활만큼은 알차게 누구보다 서둘러 챙겨내겠다고 선언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늘 새로운 생활이라고 덧붙입니다.

천천히라는 느림의 행복을 빌어 인터넷 쇼핑몰의 속도를 심리적으로 갸름하게 합니다. 인터넷 쇼핑이 빠른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비교의 대상이 생기면 더 확실해지는 법이죠. 이것이 바로 카피의 힘입니다.


사랑, 행복, 가치 등등 브랜드 콘셉트가 너무 일반적이라 고민이라면, 그것을 내포하는 멋진 시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멋지게 낭독해 주는 것도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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