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에 핀 꽃 비빔밥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난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내 인생을 위해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정해준 대로 학원에 다녔고 영어를 배웠고 피아노를 배웠다. 내가 그것에 취미가 있었는지 남다른 의지가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엄마가 하라고 하면 했다. 그게 정답이라고 바른 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대학도 마찬가지였다. 가능하면 문과대를 갈 것 그리고 재수생이라는 타이틀은 달지 않을 것. 운이 좋았다. 나는 문과대에 진학했고 입시에 재도전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또 4년이 흘렀다. 엄마는 선생님이 되길 바랬고 나는 교직을 이수했다. 졸업을 앞두고 교생실습을 끝내고 오는 길에 문뜩 생각이 들었다.‘정말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은 걸까? 자신도 확신도 없었다. 그 후 나는 선생님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공채를 보기 시작했다.
수많은 면접과 자소서를 쓰면서 나는 깨달았다. 내가 진정하고 싶은 것을 이제는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그 누군가가 더 이상 대신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내 의지대로 원하는 회사에 도전을 했다. 그 당시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는 낯설고 이름조차 들어 본 적 없는 소위 ‘득보잡’인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입사를 했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엄마와 아빠는 담담했다.‘그래. 네 인생이나 네가 알아서 해라’그리고 4년이 흘러 대리로 승진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를 해 사표를 내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10초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알듯 말 듯 내쉬는 작은 숨소리와 함께‘네 인생이니까 네가 알아서 하라’는 그때처럼 담담한 대답이 또 돌아왔다. 유학을 결심한 구구절절한 이유를 다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내 커리어 향상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그리고 사표를 내고 대학시절 포함 8년간의 내 짐들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유학비자를 받고 학교에 입학금을 보내고 모든 걸 끝내는 데는 한 달이면 충분했다. 어느덧 출국 일은 일주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런데 문제는 아빠였다. 평생을 공무원으로 성실하게 살아온 아빠는 나의 선택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듯했다. 그 이유로 내가 집으로 돌아온 후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나에게 하지 않으셨다. 나는 괴로웠다. 그러나 선택은 이미 되돌릴 수 없었고 차가운 아빠의 표정을 보는 것 또한 힘겨웠다. 출국을 이틀 앞둔 날, 온 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엄마는 각종 나물을 정성껏 다듬고 볶아 비빔밥을 했다. 동그란 국수 그릇에 담긴 비빔밥을 앞에 놓고 아무도 말이 없었다. 아빠는 여전히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셨다. 그 순간, 엄마의 밝은 목소리가 숨 막히는 이 정적을 깼다. “여보, 그만해요. 지가 좋다는데… 맘 편히 하게 해 줘요. 더 이상 서로 마음을 괴롭히지 말아요. 이제 우리는 그저 탈없이 지 갈 길을 잘 가길 바라면 그만인 거예요.” 아버지는 크게 숨을 한번 내쉬고 말없이 숟가락을 들고 비빔밥을 비비셨다.
나도 아빠를 따라 숟가락을 들고 비빔밥을 비볐다. 나는 비빔밥을 한 숟가락 크게 떠 입에 넣자 순간 목이 메었다. 나의 새로운 도전을 위한 용기를 꾹꾹 담아 비볐던 비빔밥 – 떠나기 전 가족과의 마지막 식사란 걸 떠올리며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아네고 에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