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표 잔치국수
거제도 토박이였던 할머니의 음식은 늘 심심했다. 그저 자연이 우리에게 내어준 재료로 육수를 내고 손수 밭에서 키워낸 야채들을 곱게 썰어 물끄러미 정성이라는 시간의 박자에 맞춰 하나하나 만들어 내면 그만이었다. 유난히 멸치 육수 냄새가 강했던 할머니의 잔치 국수는 방학 때면 몰려와 신나게 뛰어노는 손자 손녀들의 단골 새참 메뉴였다. 라면이 먹고 싶다는 우리들의 투정을 그저 못 들은 척 미소로 답하고 할머니는 말없이 국수를 삶으셨다. 그리고 한참 동안 부엌을 소리 없이 왔다 갔다 하며 할머니의 손맛이 고스란히 담긴 곰삭은 묵은 지와 할머니 표 잔치국수를 세월의 때가 뭍은 동그란 밥상에 얌전히 올려놓으셨다. 어묵을 좋아하는 우리를 위해 긴 꼬챙이에 삐뚤삐뚤 꽂은 동그랗고 네모난 어묵은 할머니의 특별 보너스였다. 허기진 우리가 후루룩후루룩 정신없이 국수를 입 속으로 신나게 빨아들이는 소리를 할머니는 지그시 눈을 감고 들으셨다. 창 틈으로 얌전히 내리는 햇살을 등진 할머니의 얼굴에는 서서히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어느덧 가정을 꾸려 자신의 품을 떠난 사랑하는 아들과 딸의, 그 아들과 딸이 그 옛날처럼 자신이 만든 잔치국수를 맛나게 먹고 있는 이 소리는, 할머니에게는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듣기 좋은 행복한 소리였을지도 몰랐다.
할머니의 손맛 덕인지 나는 잔치국수를 좋아했다. 비가 오는 날에도 나는 수제비나 칼국수보다 잔치국수가 먼저 생각났다. 입맛이 없어 하루 종일 쓴 커피만 홀짝이다 가도, 잔치국수라면 조 금 먹을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각자의 잊지 못할 사연이 서린 탓에 잔치국수를 나만큼이나 좋아하는 지인들은, 어쩌다 우연히 발견한 동네의 잔치 국숫집을 결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어김없이 그날의 점심이나 이른 저녁이 된 잔치국수를 젓가락으로 먹음직스럽게 퍼 올린 사진을 때마침 허기가 진 누군가에게 보내면, 순식간에 전염병처럼 모두에게 빠르게 번졌다. 그리고 그날 어디선가에서 각자 해치운 잔치국수 사진들이 군침 도는 답글이 되어 돌아왔다.
시장을 좋아하는 나는 시골집 부엌에나 있을 법한 투박한 양푼에 국물이 찰랑찰랑 넘치도록 담아주는 시장 골목의 잔치국수를 자주 먹었다. 그곳에서 국수를 먹으며 쉬지 않고 국수를 삶아내는 후덕한 아주머니의 손놀림을 틈틈이 눈 속에 담으며 나는 언제나 할머니 생각을 했다.
이제는 다시 먹을 수 없게 된 할머니의 잔치국수 -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맛이었다는 걸 알았다면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아네고 에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