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의 첫 데이트 날

핫도그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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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아빠와 보낸 시간이 별로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을 오면서 아빠와의 관계는 더 어색해지고, 취업을 한 후에는 매일 바쁘다는 핑계로 그저 명절 때 잠깐 식탁 앞에서 얼굴을 마주치는 게 전부였다.


그 옛날 우리의 아버지들은 지금의 친구같은 아버지들처럼 함께 놀아주거나 허물없이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그런 대상이 아니었다. 어렵고 때로는 무섭고 그가 일궈낸 한 집안에서 가장 꼭대기의 사람인 가장으로써 우뚝 선 존재였으니까. 정년퇴임후부터 점차 본색을 들어낸 오랜 지병으로 해마다 말수가 줄어들고 유약 해지는 아빠는 어린아이같은 투정과 식탐이 늘어 갔다. 잘 걷지 못하는 아빠가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해가 질 무렵 아빠를 모시고 집 근처의 어린이 대공원으로 산책을 왔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걸음을 떼는 아빠의 뒷모습을 따라 나는 그림자처럼 걸었다. 한여름의 더위를 이겨내고 한 뼘 더 자란 나무들이 어느새 차분한 가을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힘겨운 걸음걸이를 멈추지 않던 아빠가 크게 숨을 내쉬며 햇살이 내려앉은 벤치에 가만히 앉으셨다. 나는 가방 속에 넣어 둔 생수 병을 꺼내 아빠에게 권하고 이름 모를 철새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가는 초저녁의 하늘을 봤다. 그 순간 아빠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까칠까칠한 세월의 흔적이 새겨진 커다란 그 손에 꼬깃꼬깃 접은 만 원짜리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저쪽 매점으로 희미한 시선을 돌리며 핫도그를 사오라고 하셨다.


지금까지 군것질 이라고는 몰랐던 아빠의 굳게 다문 입에서‘핫도그’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나는 흠칫 놀랐다. 팔뚝만한 형형색색의 금붕어가 내려다 보이는 공원의 다리 위에서 왁자지껄하게 웃어 대며 핫도그를 맛있게 먹던 아이들이 아빠의 눈에 들어 왔던 것 같았다. 밋밋하고 길다란 프랑크 소시지에 밀가루를 두툼하게 입혀서 금방 튀겨낸 핫도그 두개를 사고, 하나를 아빠의 손에 쥐어주고 하나를 내 손에 쥐었다. 아직도 옅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핫도그 위에, 꼬불꼬불 끊김없이 뿌려진 케첩을 물끄러미 내려보다 나는 아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빠는 해가 진 반대편 호수를 바라보며 아이처럼 요리조리 고개를 흔들며 맛나게도 핫도그를 드셨다. 아빠의 입가에 묻은 케첩을 물 티슈로 닦고 나도 핫도그를 한입 물었다. 물컹한 핫도그를 힘차게 씹으며 울컥울컥 북받치는 마음을 억지로 넘기고, 아빠의 남은 한 손을 꼭 잡았다. 이렇게 아빠와 나란히 앉아 무언가를 먹어본 게 처음이라는 사실에 가슴 속 큰 돌덩이 하나가 쿵 하고 떨어지며 먹먹한 여운을 남겼다.


“핫도그, 이거 생각보다 맛있는 음식이구나.”하고 아빠는 혼잣말처럼 내뱉고 생수 한 모금을 꿀꺽하고 삼켰다.

그 옛날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는 게 전부였던 아빠의 시간은 그저 오늘 해야할 일을 무사히 마치는 것만으로도 빠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눈부시게 아름답고 소중했던 시간들을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다 써버린 아빠의 그 시간들이 나는 가슴 아파왔다. 어느덧 중년이 된 후 아빠와 하게 된 첫 데이트 날의 핫도그 - 언젠가 눈물 나도록 그리워질 이날을 위해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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