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스코 닭꼬치 구이
누군가는 여행을 가는 것보다 여행을 준비하는 설렘이 더 크다고 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저 다 준비해 놓은 여행을 내 몸뚱이 하나 잘 챙겨줄 짐들만 싸서 훌쩍 떠나고 싶었다. 시간을 들여 이것저것 비교하고 예약하고 코스를 짜고… 그 모든 것들이 다 귀찮고 재미도 없었다. 그렇다고 낯가림이 심한 탓에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패키지여행을 가는 건 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프리랜서가 된 후 예전보다 펑펑 넘치는 시간 속에도 해외여행 한번 가기가 힘들었다. 해외여행이라는 게 일주일은 아쉽고 최소한 이주일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언제나 숙소를 예약하는 것부터 엄청난 귀차니즘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런 나와 달리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다음 여행지로 정한 곳의 호텔이나 에어 엔비의 통 채 빌려주는 집을 검색하며 즐거워하는 여인이 있었다. 뭐든 똑 부러지고 야무진 그녀는 광고회사 기획자답게 각 숙소마다의 특장점들을 귀신같이 찾아내 끝까지 비교하고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 아울러, 비행기표도 다양한 사이트를 쭉 둘러본 후 가장 저렴하고 합리적인 가격을 찾아내 예약을 했다. 나로서는 그저 존경스럽고 놀라운 뿐이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그녀와 나는 일요일 저녁 무렵 새로 생긴 피자 집에서 번개를 했다. 수제 맥주 한잔을 시켜놓고 피자를 먹다가 그녀가 불쑥 말했다. “언니… 나 올해는 마추픽추가 보고 싶어. 그래서 다음 달에 떠날 거야. 이미 예약도 대충 다 끝냈어.”나는 그녀의 뜬금없는 여행 스케줄에 눈이 동그레 졌다. 그리고 순간 곰곰이 생각했다. ‘그래… 마추픽추라. 남미 여행은… 혼자 힘으로는 절대 갈 수 없을 거 같은데… 이참에 그냥 그녀를 따라가 볼까?’
그리고 그다음 날 그녀가 보내준 일정대로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서점에 들러 제법 두꺼운 남미 여행책을 한 권 샀다.– 이 책은 결국 비행기 안에서 내가 아닌 그녀에 의해 읽혔다.– 그렇게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미국을 경유해 30시간 만에 페루의 리마 공항에 도착했다. 리마에서 이틀 밤을 보내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쿠스코로 갔다. 최근 들어 체력이나 면역력이 그리 좋지 않았던 나는 고산병에 대비해 한국에서 사 온 약도 미리 먹고 좋다는 허브티도 틈틈이 마셨다. 다행스럽게도 걱정과 달리 나는 너무 멀쩡했다. 숙소로 정한 호텔 로비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눈동자가 풀린 채 넉이 나가 있는 일본 남자를 빤히 보며 고산병이라는 게 새삼 무섭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부터 소금 평야로 근교 여행을 다녀온 그녀가 일찍 잠든 사이에 나는 호텔을 나왔다. 해가 진 광장의 불빛은 아름다웠고 오래된 성당에서 잔잔하게 새어 나오는 오르간 소리는 여행지에서의 들뜬 마음을 차분하게 했다. 게으른 천주교 신자인 나는 골목골목에 자리 잡은 낡은 성당들을 순례하며, 나와 그 누군가를 위해 작은 기도를 했다.
한참 돌계단을 올라 제법 높은 꼭대기의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성당에서 내려다본 쿠스코의 야경은 눈이 시리도록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별 욕심 없이 살아가는 그들을 향한 알 수 없는 여러 갈래의 감정들이 교차했다. 앞으로의 남은 내 인생도 부자로 살기는 어려울 거 같은데 차라리 이런 곳에서 축복 같은 저녁노을과 소박한 풍경들에 감사하며, 수수하게 늙어 가는 것도 멋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커다란 눈망울의 꼬마가 내 옷자락을 당겼다. 그리고 때가 꼬질꼬질 뭍은 조막만 한 까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남은 동전을 몽땅 쥐어주었다. 동전을 받고 기분이 좋아진 꼬마는 싱글벙글 웃으며, 멀리서 힐끔힐끔 자신을 처다 보고 있던 할머니에게 뛰어갔다. 할머니는 한 손을 꼬마의 어깨에 올리고 뭐라고 야단을 치는 듯했다. 그리고 돌계단을 내려가는 나에게 성큼 다가와 접시 위에 담긴 꼬치구이를 내밀었다. 반토막으로 잘린 주먹만 한 울퉁불퉁 한 감자들과 닭고기인지 양고기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기 덩어리가 나무 꼬챙이에 투박하게 꽂혀있었다. 할머니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페루 말로 끊임없이 나에게 이야기를 하며 내 앞으로 접시를 자꾸자꾸 들이밀었다.‘아하… 내가 동전을 준 대가로 이 꼬치구이를 준 것이구나.’ 나는 괜찮다고 고개와 손을 힘차게 흔들어 보지만 할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접시를 손에 받아 들고 나는 그들과 함께 나란히 돌계단과 앉아 꼬치구이를 먹었다. 입안 가득 엄청난 짠맛과 강한 향신료 냄새가 나의 비위를 자극했지만, 양볼 가득 음식을 부지런히 씹으며, 나는 이들의 소박한 식사 초대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이곳 사람들의 푸근한 마음이 담긴 울퉁불퉁 감자가 가득한 꼬치구이- 꼬마와 할머니 더없이 해맑은 미소를 바라보며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 아네고 에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