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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ego emi Sep 26. 2024

그녀와의 브런치

 어머 처음 보는 이 멋진 분은 누구세요?” 동그랗고 뽀얀 피부에 세련된 단발머리를 한 우아한 중년의 여인이 이모와 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이모는 제자식 칭찬을 들은 엄마라도 된냥 신이 나서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 우리 외사촌 동생의 이쁘고 똑똑한 딸이에요. 엄마 닮아 멋쟁이예요.”이모는 호탕하게 웃으며 살갑게 내 팔짱을 끼었다. 나는 나를 보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중년의 여인을 향해 가볍게 목내를 하고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두 딸의 어머니인 그녀는 일요일마다 딸들과 함께 성당에 와서 미사를 보고, 근처 유명한 베이커리에서 빵과 차를 즐기며 모녀들만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늘 서먹서먹했던 우리 모녀사이와 달리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한 번은 미사가 끝나자마자 이모가 가게 일로 황급히 자리를 비웠고, 나는 혼자서 산책을 하다가 향긋한 빵 냄새에 이끌려 그녀들의 단골 베이커리로 들어갔다. 제법 한적한 오후 시간인지라 드문드문 테이블을 채운 손님들의 모습이 보였고, 그중에서도 단연 그 아름다운 모녀들은 눈에 띄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나를 보며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했고, 나는 조금 망설이다 그녀의 테이블로 갔다. 그녀는 큰 딸에게 나의 커피를 주문하라 말을 하고 내 앞으로 빵 접시를 밀었다. 나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그녀는  가볍게 내 손을 잡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내가 이 근사한 숙녀분에게 너무 호감이 있어요 그래요. 꼭 만나서 차를 나누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거든…”나는 마치 낯선 남자에게 고백이라고 받은 듯 수줍은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아무런 기대도 대가도 바라지 않고 먼저 다가가서 이렇게 손을 잡아준 것이… 때마침 커피가 나왔고 그녀만큼 인상이 좋은 그녀의 큰 딸이 커피를 내 앞에 얌전히 놓으며 일본어로 말했다. “ 언니, 천천히 드세요” 세 모녀의 브런치에 얼떨결에 초대된 나는 주로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유난히 향이 좋은 커피와 한 입 베어무는 순간 녹아내리는 크로와쌍을 먹었다. 그녀들은 역시 나의 한국 생활을 궁금해했다. 나는 과거의 나를 그동안 나를 말해주었던 신분을 빌어 몇 마디로 소개하고, 지금의 내가 왜 이곳에 온 것인지를 끝을 흐려가며 수줍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눈이 동그레 지며 마시던 찻 잔을 내려놓으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멋진 여성일 거라고 첫눈에 알아봤잖아요. 이왕 이곳에 와서 이렇게 인연이 되었으니 우리 친하게 지내요. 이렇게 가끔 이곳에서 브런치도 먹고, 철없는 우리 딸들에게 좋은 이야기도 좀 해주고… 괜찮지요?”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 후,  나는 이모가 성당에 오지 않거나 바쁜 일이 있는 날이면 종종 그녀와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눴다.  그녀는 사람을 참 편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아마도 반달눈을 하고 약간의 콧소리를 섞은 아이 같은 웃음소리를 내면서 간간히 쏟아내는 칭찬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별일 아닌 일도 그녀에게는 모두 소중하고 고마운 일이었고, 별 것 아닌 것도 그녀에게는 대단한 선물이고 축복이었다. 그런 것들을 발견하는 즐거움과 행복을 그녀는 나에게 알려주고 싶어 했다. 어쩌면 그녀의 눈에는 그간의 고단했던 내 지친 마음이 틈틈이 뱉어내는 작은 한숨과 떠나온 곳에 대한 그리움이 끌어내는 후회의 눈빛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내가 세례를 받게 되었다고 말하던 날, 그녀는 나를 가볍게 껴안으며 말했다. “ 이제… 하느님이 딸이 되고 내 딸도 되면 되겠다. 내가 대모가 되어주고 싶은데…”나도 모르게 몽글몽글 쏟아 오른 꽉 찬 눈물 한 방울이 맥없이 한쪽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런 나를 따뜻한 눈빛으로 잠시 쳐다보다가  그녀는 다시 나를 껴안으며 부드러운 손길로 내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이제 편안해지고 다 괜찮을 거야. 내가 늘 기도해 줄게. 참 그리고 세례를 받은 첫 미사 후에 성모님에게 세 가지 소원을 빌면 꼭 이뤄주신데. 무슨 소원을 빌 건지 기쁜 마음으로 생각해 보렴.”그녀는 마치 그녀가 그 소원들을 이뤄주고 말겠다는 듯이 내 두 손을 꽉 잡으며 파이팅까지 외치며 나를 웃게 했다. 세 가지 소원… 나는 과연 무슨 소원을 빌고 싶어 질까? 그녀와 헤어진 후 돌아가는 덴샤에서 나는 곰곰이 생각에 빠져든다.  또 머릿속이 깜깜해진다. 소원… 그런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언제였더라?

<아네고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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