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정식 백반
그녀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도 모른다. 단아하고 어여쁜 미모와 착한 성품으로 입사 초부터 모두의 사랑을 듬뿍 받더니 결국 잘 생기고 집안 좋은 남자를 만나 시집을 간단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수줍은 미소와 함께 청첩장을 내미는 그녀는 마냥 행복해 보였다. 나는 준비된 멘트인 ‘축하해’를 반복하며, 그녀가 내민 청첩장 봉투 속에 반쯤 삐져나온 주인공들의 사진을 무심하게 훑었다. 일주일 내내 계속된 야근에 지쳐있는 내 얼굴을 가만히 보던 그녀는 말했다. “선배… 눈썹 사이에 팔자 주름 생긴 거 알아요? 힝… 그건 아니다. 내가 다 속상하네~”그녀의 걱정스러운 말에 “그래? 주름이 생겼어? 정말?”하고 말하며 창문에 희미하게 아른거리는 내 얼굴을 빤히 봤다.
웃을 일보다 인상 쓸 일이 많았던 나의 지난날들이 드디어 엄청난 생채기를, 그것도 내 얼굴의 한가운데에 또렷하게 남기고 만 것이었다. 자리로 돌아와 손거울을 꺼내 들고,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뚫어져라 봤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 미간을 찡그리는 버릇의 결과물인 이 깊은 골의 팔자 주름은, 아무리 두 손으로 힘껏 펴보아도 제자리였다. 그 순간 나는 깊은 한숨이 났다. 그리고 곧 신부가 될 그녀 만큼은 아니더라고 아직은 조금 더 생기 있고 어려 보이고 싶었던 나의 욕심과,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소개팅도 하고 가을이 오기 전에 연애라는 걸 다시 시작하고 싶었던 나의 바람은, 이 꼴 보기 싫은 팔자주름 앞에 맥없이 꺾여 버렸다. 아울러, 그동안 나를 꿋꿋하게 버티게 했던 스스로를 향한 자신감은 ‘나 또한 별 수 없다’는 좌절감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멍청한 얼굴로 생각에 잠긴 나를 누군가 툭 건드리며 책상 위에 검토해야 할 자료를 산더미처럼 올려놓고 사라졌다. 전생에 나라도 못 구한 나는, 타고난 거라곤 일 복뿐이었다. 그 순간 시계를 봤다. 곧 퇴근 시간이었다. 자료조사를 핑계로 일찍 회사를 나와 무작정 홍대로 갔다. 뭐랄까… 날마다 쌓이는 일에 에너지와 기운을 쭉쭉 다 빨린 채 점점 메마르고 늙어가는 나에게,‘젊음이라는 것’을 잠시라도 실컷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피부만큼은 자신 있다며 좀처럼 처다 보지도 않던 영양 크림도 사고, 요즘 젊은 애들에게 인기라는 핫핑크의 립스틱도 샀다. 그리고 결코 출근길에 걸칠 것 같지 않은 화려한 색깔의 하늘하늘한 카디건도 사고, 큰 키덕에 잘 신지도 않는 높은 구두도 샀다. 양손 가득 주렁주렁 쇼핑백을 들고, 나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젊음의 거리를 방황했다. 내 옆을 지나가는 모든 젊은 그녀들에게 나도 모르게 눈이 갔고 그 생기발랄함에 또 금세 기가 죽고 말았다.
나는 터벅터벅 힘없는 발걸음을 옮기다 ‘나를 위한 예쁜 밥’이라는 간판이 걸린 작은 식당 앞에 멈췄다. 뭘 해도 예뻐지지 않는 오늘의 나에게 예쁜 밥이라도 사주고 싶었던 걸까?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카운터 끝자리에 앉아 이 가게의 대표 메뉴인 일본 가정식 백반을 주문했다. 따뜻한 녹차 한 모금을 삼키고 가만히 오늘 내가 나를 위해 사들인 물건들을 내려다봤다. 순간,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나도 모르게 샘이 났던 후배의 청첩장에서 시작된 이 히스테리는, 팔자주름에 꽂혀 더 커졌고, 결국 이것저것 충동구매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나이 듦을 비관하며 밤거리를 헤맸게 했다.
잠시 후, 내 앞에는 아기자기하고 탐스러운 빛깔의 예쁜 밥상이 차려지고, 나는 씁쓸한 미소와 함께 수저를 들었다. 뭘 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 날의 나를 위한 예쁜 밥 - 어쩔 수 없는 그런 날도 있는 거니까, 그저 웃으며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아네고 에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