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나, 제가 주말에 파는 호떡이 천 개가 넘어요!” 대모님 가게의 가 오픈을 며칠 앞두고, 가게로 가는 길에 잠깐 들은 호떡집의 아르바이트생, J군은 나에게 신이 나서 말했다. 그로 말하자면, 강남역에서 제법 놀았었을 법한 눈에 띄는 외모와 넉살 좋은 입담을 자랑하며 이곳에서 아이돌급 인기를 자랑하는 유명인이다. 주말마다 그가 정성스럽게 구워주는 호떡을 먹기 위해 한 시간을 넘게 덴샤를 타고 오는 팬들도 있다. 그와 나는 같은 어학원 동기이며 전문학교 입학을 위해 여러 번 함께 체험 수업을 참가한 적이 있다. 그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사진 공부가 하고 싶어서 도쿄로 왔다고 했다. 튀는 외모와 달리 그는 매우 성실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독립심이 강해서, 자신의 학비는 스스로 벌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전문학교 입학을 잠시 유보하고 알바 전선에 뛰어들었다. 치솟는 인기 덕분에 얼마든지 고수익의 알바자리를 얻을 수도 있지만 그는 꿋꿋하게 평일에는 편의점에서 일을 하고, 주말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호떡을 굽는다. 나는 그가 구워주는 호떡을 먹으며 젊은 날의 나를 떠올려 본다. 간절히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을 기꺼이 하게 되는 시절. 비롯 그것이 힘이 들고 내 뜻과 다른 일이라고 해도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명분이 뚜렷해짐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되는 시절.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가 뿜어내는 꿈을 향한 강렬한 의지와 내면에 숨겨진 진짜 모습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게 된다. 지금 호떡을 굽는 J가 아니라 꿈을 굽는 J를… 호떡 값을 건네는 나를 한사코 만류하며 그는 누나도 힘내서 부지런히 그림 더 열심히 그려야 한다 고 자신이 지켜보고 있다며 나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향해 환하게 웃는다. 어느새 호떡 가게 앞에는 길게 줄이 늘어서 있다. 역시 대단한 인기다. 오전부터 이 정도라면 오늘은 천 장을 넘기고도 남을 기세다.
드디어 간판이 새로 걸리고, 한복을 입은 귀여운 꼬마 돼지 커플이 그려진 메뉴판이 완성되었다. 그동안의 시장 조사의 결과를 바탕으로 삼겹살 구이를 비롯해 다양한 한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2인, 4인, 6인용 세트 메뉴를 만들고, 비빔밥과 찌개류, 두부김치, 닭장정 등과 같은 특별 메뉴를 몇 가지 추가하기로 했다. 대모님은 차별화 전략으로 기본 찬을 아낌없이 제공하자고 했다. 기본 찬의 개념이 별로 없을뿐더러, 추가로 제공되는 것은 무조건 돈을 내는 것에 익숙한 일본인들에게, 추가로 제공되는 반찬 또한 무료임을 음식을 내어줌과 동시에 꼭 알려 주었으면 좋겠다고 대모님은 말했다. 점장의 소개로 온 두 명의 한국 유학생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조금 걱정이 앞섰다. 그들의 서툰 일본어가 문제였다. 손님 응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점장의 말을 믿고 일단 뽑기는 했으나, 그들은 초급 수준의 일본어를 띄엄띄엄 구사했다. 일본어도 우리말처럼 존댓말과 경어가 있다. 손님들에게는 무조건 존댓말을 써야 하는데 그들의 짧은 일본어는 또래끼리 주고받는 반말에 가깝고, 억지로 ‘입니다’와 ‘합니다’를 붙인 말들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무조건 의식적으로라도 존댓말을 쓰려고 노력하고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애드리브처럼 달아야 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그 순간 나를 의식한 듯 슬쩍 나를 곁눈질하던 점장은 입을 꽉 다물고, 그들을 눈짓으로 불렀다. 가게 밖으로 나가 잠시 숙떡이던 그들은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대모님과 나는 그런 그들을 못 본 척하며 개업 준비를 위해 빠진 것은 없는 지를 확인했다. 주방의 이모님은 오픈 날 와야 할 식재료등이 제대로 주문이 되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라고 점장을 다그쳤고, 그는 심드렁한 얼굴로 전화를 건후 문제없다고 했다. 비로소 모든 준비가 끝났다.
드디어 오늘이다. 이른 아침 가게로 가는 길이 마치 새로 옮긴 회사로 가는 첫 출근길처럼 들뜬다. 의도한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새로운 인연을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이왕이면 그것을 통해 내가 조금 더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나는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팔을 걷어 부치고 가게 앞을 쓸었다. 길가에 버려진 전단지와 휴지 조각들, 나뭇잎들을 쓸다가 이왕이면 옆 가게 앞까지 쓸 요량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씩씩하게 빗질을 한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던 옆가게의 주인아저씨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 한국 사람들은 참 부지런해. 몸도 마음도… 뭘 해도 잘 될 사람들이야. 너처럼…” 나는 뜻밖의 칭찬에 환한 미소로 답하며 무엇이든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아마도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인지도 몰랐다. 지금의 나는 무엇이든 열심히 함으로써 불안하고 흔들리는 나의 시간들을 버텨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기대하지 않은 누군가에게 이런 과한 응원을 듣는 것, 그런 것이 내가 운명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믿는 것, 그로 인해 나를 살게 하고 나아가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이 시기를 통과하면서 나는 조금 다른 꿈과 삶을 의해 살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 믿음의 근거가 고작 소소한 이런 노력과 애씀의 흔적들 뿐이라고 해도 말이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