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도 중2병에 걸린다

오늘부턴 인생 계발을 시작합니다 (2화)

by 문전성시

인간의 평균수명이 80세 정도라고 하면,

마흔이라는 나이는 인생의 반환점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보통 25살 전후로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55세 정년까지 일을 하게 된다면,

대략 30년 가까운 시간을 어딘가로 출근해서 살게 되는 셈이고,

공교롭게도 마흔 살이라는 나이는 또 그 중간지점이 된다.


40을 목전에 둔 출근길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벌써 내 인생의 반환점을 향해 지나가고 있는데,

그냥 이렇게 출근하고 퇴근하고 아이들 키우다 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서 어느덧 은퇴를 하게 되고,

아이들은 각자 인생을 찾아 떠나고 나도 금방 노인이 되겠지.. 뭔가 좀 아쉽다...


이 지점에서 난 해 보고 싶은 무언가는 없을까?

쉼표 같은, 마침표는 아니지만 콤마 정도는 남겨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직장인도 ‘중2병’에 걸린다


한국에서 태어나면 보통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을 학생으로 보내게 되고,

총 16년의 시간 중 중간지점이 되는 곳은 중학교 2학년이다. 우리가 익히 알듯이 중2병이 걸리는 시점이기도 하다.


인생이란 이렇게 반환점을 도는 시점이 되면 뭔가 심리적인 변화를 느끼는 것인가?

그래서 반항도 하고 싶고, 일탈도 하고 싶은 건가?


아무튼 직장생활도 절반 정도 오게 되니 슬슬 지겹기도 하고,

'회사에서 하는 일에서는 인생의 커다란 의미를 찾는 건 힘들겠구나'를 느끼며 뭔가 심경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즈음에 ‘육아휴직’ 제도란 것이 눈에 들어왔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육아를 위해 휴직을 신청한다는 것이고,

둘째가 아직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일단 가능은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 온전하게 함께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

아이들과 어딘가에서 함께했던 추억을 만들어 둔다는 것은

나와 와이프를 위해서 꽤나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고,

그 기간이 결코 길지 않더라도 인생의 쉼표 역할은 충분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선은 주변 사람들 중에 '아빠 육아휴직'을 써본 사람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걸 준비하고, 회사에서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찾을 수 없었다.

(지금은 아빠 육아휴직에 대한 책도 몇 권 나왔지만, 당시에는 그런 게 없었다.)


그래서 아빠가 쓸 수 있는 육아휴직이 정확히 어떠한 제도이고,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신청을 하면 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했다.

뭔가 복잡해 보이긴 했지만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 육아휴직 제도 요약 >


★ 대상

-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둔 근로자


★ 기간

- 최대 1년 (기간을 두 번으로 나눠서 사용 가능)


★ 조건

- 사업주의 승인 확인서 필요 (타당한 이유 없이는 거절 불가)


★ 지원금

- 통상임금의 첫 3개월 동안은 80%(상한액은 150만 원) 지원하고,

4 ~ 12개월 동안은 50%(상한액은 120만 원) 지급함

→ 통상임금은 개인마다 다르고, 쉽게는 최근 3개월 월급 평균이라고 생각하면 됨!


★ 지원방식

- 지원금을 꽉 채워서 주는 건 아니고,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기간에는 지원금의 75%를 받고,

육아휴직 후 6개월 근무가 확인되면 나머지 25% 지급함

→ 지원금만 받고 퇴직을 하는 경우를 줄이기 위한 듯!


★ 참고사항

- 부모가 모두 육아휴직일 경우는 한쪽만 지급


추가로 한 아이를 대상으로 부모가 순차적으로 육아휴직을 하게 될 경우,

두 번째 휴직자의 첫 3개월 지원금을 통상임금의 80%가 아닌 100%를 지급하는

‘육아휴직 보너스’ 제도도 있다.




둘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니 일단 대상이 되는 건 확인되었고,

생각지도 않았는데 정부에서 지원금을 준다고 하니,

그간 월급에서 말없이 떼어가던 세금들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가장 큰 문제는 사업주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데,

우리 회사는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 누구에게 결제를 받아야 하는지 우선 확인해봐야 했다.


인사팀에 있는 친한 동료를 통해 슬쩍 물어보니,

회사 남자 직원 중에는 아직 '아빠 육아휴직'을 써본 사람이 없어서 여직원이 사용하는 출산휴가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좀 더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빠 육아휴직 1호라니..

보통 회사에서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첫 번째 케이스가 되면,

한 동안 그 사람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게 되는 경향이 있는지라,

시작도 하기 전에 어딘가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실제로 내가 육아휴직에 들어가고 나서

남자 직원들의 육아휴직 문의가 폭주를 했다는 이야기를 후문으로 들었다.

다들 말은 안 하지만 처음에 대한 부담감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런 건 굳이 지금부터 신경 쓸 필요는 없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남자 직원 중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만큼

딱딱하고 고리타분한 금융권 회사에서 과연 휴직을 신청할 수 있는 ‘용기’가 나에게 있는지가 중요했다.


휴직으로 인해 진급이나 고과에 피해를 보는 게 심히 걱정이 된다면 포기해야 하는 거고,

나중에 임원이 될 것도 아닌데 회사생활은 좀 내려놓고 이 시점에만 할 수 있는 인생 추억을 만들겠다는 각오가 있다면 한 번 용기를 내 봐야겠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쉽지 않은 결정이라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싱숭생숭 고민하는 시간이 점점 흘러갔고,

그렇게 한 해가 지나가고 있었다.





왜 육아휴직을 마음에 품게 된 거지?


그러다 문득 '어쩌다 난 육아휴직을 마음에 품게 된 건가?' 란 의문이 다시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시작점은 그곳이었다.

아이를 위해서도 있겠지만 마흔을 앞두고 내 인생의 전환점에서 작은 쉼표를,

그간 살아온 내 인생에도 작은 휴식을 주고 싶었구나..라는


언젠가 시간이 흘러 인생을 돌이켜 볼 때,

그때 선택한 휴직이라는 쉼표는 과연 잘한 선택이었을까 아니었을까...

그런 마음으로 다시 생각해보니 심플하게 정리가 되었다.


그렇게 육아휴직을 신청해 보기로는 결심을 했고,

회사 1호라는 부담감도 있으니 너무 튀지 않게 차근히 준비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회사 1호 '아빠 육아휴직'을 신청합니다

육아휴직을 준비하기 위해 몇 가지는 미리 고민하고 정리해 두려고 했다.


우선 휴직 신청의 계기를 만들기로 했다.

'그냥 쉬겠습니다'는 직장인으로서 어딘가 마음이 좀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왠지 회사도 좀 더 이해를 해줄 것 같았다.


당시 우리는 와이프의 인생 목표 중 하나인 작은 주택을 짓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공사비용을 마련하다 보니 가지고 있는 자산을 모두 현금화해야 했다.

그리고 집을 짓는 6개월 동안은 월세를 살며 기다려야 했고,

어차피 그럴 거면 우리 가족이 사랑하는 제주에서 지내는 게 좋겠다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난 출근을 해야 하니 처음 몇 달은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외지에서 와이프 혼자 아이들을 돌보는 게 아무래도 힘이드니 단 기간 휴직을 내고 가족을 잠시 돌봐야 할 것 같다는,

다소 이상할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합리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두 번째, 휴직기간 동안 업무가 구멍 나지 않도록 몇 달 전부터 조절을 했다.

결국 회사는 휴직하고 나서 일이 펑크나 문제가 발생할 것이냐가 중요했다.

임원들과 부서장은 몇 번이고 업무에 지장을 주는 상황인지를 휴직하기 직전까지도 여러 번 확인했고,

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도록 주말에도 출근해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

(다행히 휴직기간 동안에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는 않았다.)


세 번째 육아휴직 기간 동안 지켜야 할 약속을 정하기로 했다.

어릴 때 방학이 시작되면 어,, 하다 금방 끝났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늦게 자고 늦잠 자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어디에서 어떻게 보내겠다는 자세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 대신 간단한 3가지 약속을 정했고,

휴직 기간 동안 이것만은 스스로 지키기로 했다.


1) 매일 아침 6시에 기상하기 (출근을 위해 기상하던 시간을 유지하기)

2) 매일 간단히라도 느낀 점을 일기로 쓰고, 사진을 출력해서 붙여놓기

3) 매일 짧게라도 아이들과 밖에 나가서 놀기





그렇게 약 50여 일 정도 휴직기간을 가졌다.

원래부터 긴 휴식보다는 짧고 굵게 노는 것이 목표였기에

성에 찰 만큼 길진 않았지만 그래도 인생의 쉼표를 남겼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로 다시 복귀해서는 태연하게 자리에 앉아,

마치 어제 퇴근할 때 남겨놓은 일을 오늘 다시 이어서 하듯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갔다.

누구도 그랬는지 알아채지 못하게..


그리고, 복귀 후 6개월이 된 시점에는 '고용보험공단'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나머지 지원금을 받았다. 월급보다도 고마운 돈이었다.


끝으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나라 아빠들도 육아휴직을 당연하듯 쓰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우리 모두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정년까지 하려고 태어난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살다 보니 그저 지금처럼 일하며 살고 있는 것뿐이지..

월금에서 적지 않게 세금을 떼어가는 만큼 육아휴직에 대한 지원금도 좀 늘려서,

많은 아빠들이 때가 되면 당연히 신청하고 지원 혜택을 누리며,

각자의 인생에서 아이들과도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육아휴직을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망설이고 있는 아빠들이 있다면 한 번 용기를 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자라고, 나도 생각보다 빠르게 늙어간다는 걸...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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