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20년을 돌아보며
코끝이 시큰하고 불편한 계절이 왔다. 잡고 있던 여름을 서둘러 보내고 겨울을 대비하기 위한 두툼하고 무게감 나가는 옷들을 꺼내어 뒤집어 본다. 나의 하체 비만 측정의 기준이 되는 ‘청록색 골덴바지’를 조심스럽게 꺼내었다. 부쩍 작아 보여 줄어든 건가 의심도 해본다. 9개월을 잠자고 있던 골덴바지는 줄어들 리가 없다. 올해 나의 육체는 부피가 꽤 커졌고 뱃살의 깊이가 더욱 깊어졌다. 잠기지 않는 버클을 냅다 잡아당기고는 위태로 워하며 입어냈던 그 시점이 이미 지났음을 확인했다.
아, 그 어떤 절망보다 고통스럽게 피부로 와 닿는 버클의 모서리여. 코로나로 감정의 블루가 심해졌고 그것보다 더 블루한 나의 육체. 당장 입을 겨울옷이 없어 이리저리 인터넷 쇼핑몰을 탐험하지만 마음에 드는 옷은 사이즈가 66이다. 나는 이제 77을 사야만 한다. 아니, 10년 단골쇼핑몰을 벗어나 중년 컨셉의 쌈박한 쇼핑몰을 하나 찍어 마음을 두어야 할 때인가 보다.
“엄마 작년이랑 비슷해. 늘 통통했는데 새삼스럽게 왜 그래?”
큰 아이가 울적한 나에게 위로인지 장난인지 모를 말을 던진다.
“배가 부풀어서 남산이다 남산. 나는 정말로 ‘확찐자’가 되고 말았어”
그렇다.
올해, 아니 내년까지도 이어질 인류의 고통스러운 전염병은 겨울을 책임져 줄 골덴바지 하나 마음 편히 입지도 못할 만큼 일상의 사소하고도 소소한 곳까지 장악해버린 것이다.
‘이제 곧 나아질 거야’를 다짐하며 보낸 3개의 계절이 가고 돌고 돌아 다시 코로나 시작의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영원하다, 견고하다, 당연하다’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전복되는 해였다.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를 실감하는 해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허둥지둥 아침밥을 먹고 회사를 가거나 학교에 가든 어디로든 바쁘게 가야만 하는 일상은 이제 당연하지 않다. 계절이 바뀌고 계절을 대비하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사계절과 늘 찾아오는 매일의 상쾌함은 더 이상 영원하지 않다. 나쁜 상황에 닥쳐도 국가가 그들을 구원해줄 거 란 선진국의 대처는 견고하지 않았다. 게다가 ‘선진국’이란 게 도대체 무엇이냐라는 생각마저 든다.
올해 우리가족은 어두침침한 골목 한 중간 나오지도 못하고 돌아가지도 못할 그런 곳에 위치해 있다. 아이의 사춘기, 그리고 친구와 운영하는 책방, 가족경영에 가까운 남편의 사업체 어느 하나 말간 상태가 아니어서 더듬더듬 길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 골목에서 절망하지는 않았다. 대신 차곡차곡 주변의 것을 챙기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양쪽 벽을 더듬어 가는 중에 친정엄마가 내 나이였을 때의 용기와 지혜를 알 수 있었고 아빠의 불행도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아이의 ‘수업력’도 확인이 되었고(이 부분은 꽤 절망적이다) 책도 더 많이 읽을 수 있었다. 시선을 밖으로 향해본다. 우리가 너무 매일 많은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 불편했고 사교육에 올인(ALL-IN)하는 시스템이 허무하게 느껴졌으며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가지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결혼 이후 나타나지 않았던 불안장애 증세가 십여 년 만에 나타났다. 물론 ‘예기불안’이 오면 나는 꽤 잘 컨트롤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두터워져 있는 상태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자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증세가 나타났다는 것은 정말이지 반갑지 않다. 공황장애는 2년 동안 나를 갉아먹었었고 그런 일은 이제 없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골덴바지가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을 나는 전적으로 코로나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올 한 해의 넋두리를 골덴바지 안주삼아 잘근잘근 씹어 먹고 있다. 나의 뱃살로 시작한 거대담론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나라 소상공인 정말이지 뼈를 깎으며 하루를 버티고 있다. 우리 집의 이야기다. 남편은 ‘괜찮지 않다’고만 한다. 더 이상의 말을 이어갈 여력조차 없다. 나는 굳이 괜찮지 않은 설명을 들을 필요가 없다.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작은 것에서부터 찾을 수밖에 도리가 없다. 시간을 내어 베이킹을 배워본다든지 가게의 sns를 관리하고 직원들을 독려하는 등의 것들로 틈을 배워가고 있다.
어둔 골목을 빠져나가기 위해 희미한 빛에 의지하려 했는데 그 빛마저 찾지 못했다. 그저 나는 나를 믿고 우리는 우리를 믿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로 5년 입은 코르덴바지는 이제 안녕을 고하고 나의 5년의 겨울을 책임져줄 넉넉한 77 사이즈의 골덴바지를 어서 장만해야겠다.
* 여성 에세이 웹매거진 2W 매거진에 기고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