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작은 새>
하루, 이틀 며칠간은 후회할 참이다.
작은 새의 죽음으로 마음이 내내 아리다.
눈이 펑펑 오던 간밤에 왜 작은 새를 생각해내지 못했을까. 아침에 2호 유치원 차타리 가는 길 그제야 어제 오후 옮겨 둔 작은 새가 생각이 났다.
늦은 오후 장을 보고 오는 길에 아파트 정원에서 털이 많이 뽑혀 웅크리고 울고 있는 새를 발견했다. 새끼였고 머리에 붉은색이 개성 있길래 흔한 종은 아니다 싶었다. 주변에 꽁지 털이 모조리 빠져있는 거보니 또 사나운 까치 짓인 거 같았다. '짹짹' 거리는데 한참을 마주 봤다. 나도 웅크리고 앉아 새와 마주 보며 대화를 시도했다. 지나칠 수 없는데 어찌해야 하는지 방도가 생각나질 않았다. 경비아저씨를 찾으러 움직이는데 작은 목을 옆으로 돌려 나에게 시선을 주는 것이다.
'가는 거 아니야. 걱정 마.'
경비 아저씨는 나무가 많은 아파트라 종종 죽은 새끼들 봤다고... 까치나 고양이가 새끼 새를 그렇게 못살게 군다나. 그런데 이걸 어쩌겠냐는 거다. 제 아이 위해 동물병원 갈 수도 없고.
"아저씨 살았는데 애가 너무 슬프게 쳐다보니까 구해줘야죠 창고 한쪽에 따뜻한 천 깔아주시고 옮겨주셔요 제가 쌀 갖다 놓을게 요."
"응 그렇게 할게요."
그러고서는 경비아저씨가 창고에 새를 손으로 움켜쥐고 가신다. 새끼는 사력을 다해 부리를 휘젓는데... 괜찮다 괜찮다 하니 신기하게 가만있더라.
곧 눈이 오기 시작했고 집으로 들어간 나는 그 이후의 작은 새를 잊었다.
분명 경비아저씨가 보온성 있는 천이 며 모이를 가져다주셨으리라. 창고 차가운 돌바닥에 잔뜩 웅크린 채로 빳빳해진 작은 새를 아이와 함께 본 것이다. 분명, 따뜻하게 해 줄 거라고 하셨는데... 올라오는 원망이 불쑥 내뱉어졌다.
"엄마, 그럼 집에 데려다 놓지 그랬어. 새끼 다리 나을 동안."
아이의 담담한 소리와 함께 댕댕댕 머릿속에 울리는 종소리.
도대체 누굴 탓하는 거야.
생각의 범위가 그 정도뿐이니?
생명을 책임지겠다는 마음이 고작 이 정도라니.
아이 말이 옳다.
눈이 바로 내리기 시작 했으니 경비아저씨는 무척 바빴을 거다. 나는 눈을 보며 예쁘게도 내린다고 운치 운운하며 창 너머로 바라봤고 눈으로 인해 아저씨는 노동일이 시작된 것일 게다. 또한 눈 때문에 바닥이 더욱 차가워진 작은 새는 간밤을 못 넘겼겠지.
제르마노 쥘로 글 알베르틴 그림의 <작은 새>가 생각났다.
나의 인생 책으로 매일 모임에서 소개하면서 정작 지금의 나는 이 책 앞에서 부끄럽다. 작은 새를 알아봤으나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나. 책에서 어른은 작은 새가 날아갈 때까지 기다려주고 나는 법을 가르쳐주었는데...
한 발짝만 걸친 호의를 베푼 나다.
내가 새끼를 발견한 것은 그 아이가 온몸을 다해 보내온 신호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신호를 받은 난 '호의'나 '선의' 따위가 아닌 적극적으로 새끼를 구할 책임을 부여받은 것이다
그런데.
새끼를 미물로 본 나의 민낯이 드러난 것. 아이에게 제대로 설명이 필요했다. 나의 진정성을 아이게 게 설명하는데 진땀이 났다. 미흡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매일 잊으니까 매일 봐야 한다. 그림책의 세계.
세상 마지막 너와 눈 맞춤한 인간을 미워하지는 말아줘. 미안해 작은 새.
작은 것들을 발견되기 위하여 태어났습니다
<작은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