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봄이다

딸에게 보내는 고백같은 편지

지난달에는 너를 비난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글을 쓰고 말았지만 요번달에는 너를 봄이라 부르며 아낌없이 환대하려고 한다. 지중해를 건너는 마음으로 너를 구하려고 마음을 먹으니 화는 조금씩 가라앉더라. 그렇다고 내가 성인군자 근처쯤으로 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너는 루비콘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고 하더라. 너의 눈빛과 행동과 말투가 그렇게 설명해주고 있었어. 한번 나서면 되돌아올 수 없는 그 강에 발을 내딛고 있었어. 부디 강의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지 말해줄 수 있길 간절히 바랄 뿐이야.

성격이 급하고 신중하지 않은 너는 분명 냅다 뛰거나 우당탕탕 크게 잡음을 내며 건널 거야. 발뒤꿈치를 들고 최대한 무게를 분산하지 않은 채 조심히 그리고 천천히 건너라고 말했지만 말은 너의 달팽이관만 살짝 스쳐 뇌까지 전달하기도 전에 너는 넘어지겠지.

넘어진 너를 구하려 루비콘 강을 건너는 일은 없을지도 몰라. 나는 애초에 모성애가 장착되어 있지 않은 채 엄마로 태어났거든. 엄마 자격 12년째지만 첫 번째는 여전히 서툴러. 너의 엄마로는 나도 처음이잖아. 물이 무서워 배도 못타니깐 내가 너를 구하려 강에 뛰어들지는 못할 거야.

사랑하는 너는 스스로 헤엄쳐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고 그 곳에서 다시 꼿꼿하게 뒤꿈치를 든채로 그 강을 건너야 한단다. 무슨 엄마가 이러냐고? 그러게나 말이야 무슨 엄마가 이럴까?

너가 흰자를 90%나 보이며 대들 때에도, 생각할 틈없이 '싫어'와 '안 해'를 남발할 때에도 왜 그러면 안 되는지를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설명했어야 하는데 엄마는 꿀밤 먼저 때리고 너를 비난하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도 참아내야 하는 것이 엄마의 숙명이거늘. 나는 너와 똑같이 '핑, 퐁'을 하고 있더구나. 이럴때마다 나도 대책없이 내 안의 아이가 튀어나와 ‘에라 나도 모르겠다’ 너랑 핑퐁 탁구를 치구 앉았어.

나는 생각했어. 너와 나는 점점 사이가 멀어져야 한다고.

스스로 부서지고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로 하였다. 심드렁하게 왠 멋진척이냐고 하겠지. 언제나 너는 혼자서도 잘했다고. 너를 나의 논리와 의도와 방향대로 끌고 가는 것은 조금 소홀해볼까 한다. 대신 자꾸 넘어지고 벽에 부딪치는 기회를 주려고 해. 이래도 엄마 못 믿는거야? 이래도 엄마한테 순종 안 할꺼야? 강 건너편에서 엄마는 잔소리를 하겠지만. 손은 잡아주지 못하니까 엄마의 눈빛과 목소리를 듣고 너의 균형을 찾으려 노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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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그래야 한다 나의 봄.

소중한 너가 외모를 비하하고 투덜되고 모난 모습을 보일때마다 엄마라는 사람은 아프다.

고작 12년 살았으면서 어른의 흉내를 내는 것이 어느 순간 귀엽지가 않단 말이지.

그렇게 사춘기가 오는 모양인데 친구중에서도 너가 '스타터'가 되는 것이 싫단 말이지.

독방에서 줌으로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하고 꼼짝않고 2시까지 붙잡아 두는 이 상황이 원망스럽지만 너에게만 해당되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말할 수밖에 없구나. 이것도 너의 인생, 곧 다가올 입시지옥도 너의 인생.

안전하게 강을 잘 건너고 나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 곳까지 도달했을 때 엄마는 그제서야 왼쪽에 찼던 '엄마'라는 완장을 벗을 수 있을 것 같아. 이젠 그 뒤에 내가 있다는 것만 기억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되겠지?

너는 설명하지 않아도 화사하고 발랄하고 유일한 봄이야.

빛, 온기, 살랑바람, 달달한 비,사람들의 따뜻한 시선, 봄은 만물이 도와주니까.

안심하거라. 모두가 너를 좋아하고 있어.

균형을 스스로 잡고 가끔 무서우면 엄마쪽을 바라보면 되.

소중한 봄은 찬란한 여름을 위해 요란하게 준비하지 않아도 된단다.

오늘도 '너는 나의 봄'이라며 주문을 거는 중입니다.


+ 함께 보면 기분이 더 좋아지는 그림책

- <가을에게 봄에게> /미디어창비

-<엄마가 너에 대해 책을 쓴다면> /청어람아이

-<사랑하는 딸에게>/우리동네 책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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