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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시로바로앉는여자 May 01. 2021

처음은 어렵지만_ 나는요,

<마을방과후학교> 키즈그림책테라피1

아이들을 다시 만났다. 

마을방과후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만나온지 4년이다. 처음엔 작은 책방에서 틈틈이 용돈을 벌겠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지원했다. 그러나 더 큰 이유가 생겨버렸다. 책방지기들의 아이들과 그 친구 들을 모아 그림책을 읽어주겠다며 시작한 많은 수업들.  내 아이를 잘 키워보겠다는 목적이 눈덩이처럼 불어 이웃들의 아이들과 함께 좋은 그림책을 나누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무려 유치원 꼬맹이, 초등 1학년 아이들을 사춘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 엄마다. 금쪽같은 오후 시간을 발 동동 구르며 쪼개고 스케줄 하여 만들어진 시간의 간극을 이용한다

귀한 시간 귀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다. 

오늘 어색하게 만난 3명의 열 살 둥이들, 어쩐지 너희들 기대된다. 끝날 때 뿌듯한 얼굴로 책방 문을 나서는 아이들 얼굴을 기억하려 애쓰며 청소를 했다.

<오늘의 수업 이야기>

몰캉한 음악을 틀고 스트레칭을 하며 눈인사를 해본다.

이건 또 무슨 수업인가 싶었지. 어색한 건 나도 참을 수가 없어서 마스크 안으로 가뿐 호흡을 몰아세며 쉴 새 없이 설명해주었다. 

" 줌 수업 오래 하느라고 몸이 찌뿌 두둥 하지? 찌뿌두둥하다는 의미를 알고 있니? 선생님은 오래 앉아 있으면 몸이 굳어가는 거 같은 기분이야. 이렇게 몸을 풀어줘야 해. 기분이 금방 좋아질 거야 얘들아"

첫 시간은 신상을 탈탈 터는 날이다. 이름부터 가족관계, 좋아하는 것과 태어난 날까지 어떻게든 아이들과의 공통점을 찾으려 노력하는 시간이다. 

<나는요,>로 포문을 열었다.

어느 모임에서든 '시작하는 그림책'으로 <나는요,>가 백점이다. 아름다운 수채화 색 그림이 나타날 때마다 아이들의 감탄소리가 마스크 틈으로 새어 나왔다.

"너희들을 동물로 표현한다면?"

기습 질문에 당황해한다. 평소에 '나'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던 아이들의 표정을 잘 안다.

"선생님은 코뿔소야. 의외로 순한데 한번 화날 때 무섭다는 그 아이. 나도 순하다고 생각하는데 화낼 때 말이야. 111로 참다가 단계 10으로 돌변해서 선생님 딸이 엄마가 사탄 같데."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자기 엄마도 들쭉날쭉 감정이 요동친다며 똑같다고 한다. 그렇게 그림책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엄마의 나이, 아빠가 좋아하는 색깔, 나의 베이비 때 성격까지 소환하여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아직까지 메모나 그림으로 끄적이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다. 다양한 색의 재료를 꺼내 주니 그림 그리고 싶다고 했다.

출석도장 카드에 그림을 그려놓고 매주 거기에 노른자 도장을 찍어주겠노라고 했다. 무엇이든 발동이 걸리면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이다. 수업이 끝났는데 엄마를 밖에 세워두고 마지막까지 끝장을 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딸내미도 그러하더라. 발동 걸리면 그것만 보이는 아이.

수업시간에 1호 이야기가 자주 나왔나 보다.  '진진가' 게임할 때 딸과 아들이 있노라고 이야기하니 깜짝 놀란다.

"선생님 딸 이야기만 해서 외동딸만 있는 줄 알았어요"

나의 온 세포가 1호에게 집중된 것을 아이들에게 들켰다.

"얘들아 그런데 그 애만 몰라준다."

윤동주 <민들레 피리> 중 '반딧불'을 낭독하고 노래를 들려주었다. 한 번은 잘 듣고( 모여서 동요 듣는 것이 아무래도 어색한 거 같다) 나의 잔소리도 같이 듣더니 두 번째는 제법 따라 불렀다. 

"얘들아 두 번 들으면 집에 가서 계속 생각날걸. 게다가 외우지도 않았는데 네가   노래 부르고 있을 거야 "

다음 수업에는 책방 문을 열면  '반딧불' 노래가 무한 반복되고 있을 거다. 이 노래의 효과를 톡톡히 본 적이 있거든.

1호와 친구들의 수업 때 반딧불 시를 암기하게 하고 노래를 연달아 들려주었더니 너무나 좋아했다. 그리고는 한동안 아니 오랫동안 우리 아이들의  최애 노래가 '반딧불'이었으며 5살 때 부른 2호의  반딧불 노래는 나를 무장해제시키는 마법의 영상으로 저장되어 있다.

" 발 조각을 주우러, 수푸로 가자~ " 

코로나 시대라 더욱 애잔한 수업, 게다가 책방에 아이들이 오니 그냥 마냥  저냥 좋다.

다음엔 더 다정해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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