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수업을 하기로 했는데 날이 심상치 않게 더웠다. 편안히 실내에 있는 게 내 스타일이긴 한데 지향점은 '자연으로' 니 아이들과의 약속은 꼭 지켜야만 한다. 갑자기 기온이 올라가서 그런지 아이들은 에어컨 켜고 누워있고 싶다고 아우성이었다. 우리에겐 이보다 더운 많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며 어르고 달래고... 우쭈쭈쭈.
마지막엔 아이스크림 아이템으로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켰다.
막상 나오니 그리 덥지 않았다. 안양천길은 커다랗고 우거진 푸른 잎들이 길마다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나오니까 좋다며 달리기를 하고 작은 연못의 무성하게 삐져나온 물풀들을 구경하고...
자연물을 하나씩 담아 가기로 했는데 나뭇잎과 돌멩이가 전부였어도 충분히 이야기는 풍성했다.
오손도손 앉아 이야기를 하려 했으나 땀으로 흠뻑 젖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미안해졌다. 잠깐 더운 건 길고 긴 시간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해주었지만 도통 알 수 없다는 표정들이다.
'편의점 아이스크림 털기! 시~작' 구호와 동시에 아이들은 다다다닥 달려가 신중히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이런 야외 산책을 하나씩 넣으면 아이들이 얼마나 건강한지 금방 드러난다. 보통 엄마손에 이끌려 나오는 우리 집 애들은 걷는 것도 힘들어하던데 친구들과 함께니 그 흔한 풀들도 예사롭지 않은 모양이다. 책방으로 가면서 애기똥풀 이야기로 한참을 떠들었다.
예성이는 풀이름을 꿰고 있어 내가 무척 부끄러웠다. 들풀과 계절마다 고유한 나무와 꽃들을 아는 게 없는 어른이라 요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비주얼 검색도 해보고.
다녀와서 자연물을 아주 자세히 관찰하여 설명글을 쓰게 했다. 자세히 관찰하기의 힘을 몸소 겪은 적이 있다. 모래알 관찰하기를 무려 2시간 동안 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실과, 사실의 나열 사이에 상상과 예측 등 이야기는 커다란 산이 되었다. 작지만 그 안에 풍성한 이야기가 숨어있다고 보이고 느끼고 만져지는 모든 것을 그대로 써보라고 했다. 역시나 감각이 예민한 친구들은 보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촉감과 후각도 활용했다.
사실의 나열 후 이들에게 재미난 상상 속의 이름을 새로 붙여주자고 했다.
'초록 도둑'
'연두색이 되지 못한 안타까운 누렁이'
'초록 청소부'
등 재미난 이름이 덧붙여졌다.
내가 더 커뮤니케이션 잘하고 꼼꼼하고 야무진 선생님이었다면 더 좋은 글들을 유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약간의 아쉬움도 밀려왔다. 아이들이 충분히 재미있었다는 표정으로 큰소리로 인사를 하고 나가니 기분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