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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시로바로앉는여자 Oct 29. 2021

젓가락 행진곡

셔츠를 들추어 배꼽을 확인했다 _싸우며 사랑하며 

정영민 작가는 그의 책<애틋한 사물>에서 작가는 젓가락질을 못한다고 고백했다비밀을 들킨  나역시  책에 묻어가 고백해버리고 싶다
 “
사실은 저도 젓가락질을  못해요.”
 
손가락 사용이 자유롭지 않은 작가의 젓가락질은 나와는 다른 이유로 잘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작가는 뇌변병장애로 손놀림이 자유롭지 못하다

어른이 되어 도전하는 젓가락질은 지금도 나에게도 어려운 숙제이다그러고 보니 지천명(知天命) 바라보면서도 풀지 못한 숙제가 너무 많이 쌓여있다.
 
 
뜬금없이 젓가락에 꽂힌 나는 책을 읽은  어디에나 있는 두개의 작대기를 수시로 보았다그것은 유용하고 유연하고 유약한 젓가락이었다불편함이 밀려왔다젓가락  짝을 보며 유년시절의 감정들이 올라왔다저만치 눌러둔 심연  이야기가 나올  같아 머뭇거렸지만 젓가락이 뾰족하게 나를 째려보았다.
 
 
결혼  시어머니께 들은 가장 처음의 잔소리는 젓가락질을 배우라는 것이었다당황스럽지 않았다자주 듣는 말이었다젓가락은  삶의 그다지 중요한 사물이 아니었다 못해도  요리를 좋아했고 숟가락만으로 충분히 세끼  먹고 다녔다  만에 먹는  시간에 젓가락질 연습하느라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아 차일 피리 미루었다젓가락질 못하는 어른을 인지한  순간부터젓가락질 못하는  작은 결핍잘하든 못하든 사는데 지장이 없는  아닌가별거 아닌거 아닌가.
 
합리화를 하자면 40여년을 미루어  숙제였다서툰 젓가락질 때문에 어른들 앞에서 젓가락 들기가 망설여질 때도 있었다젓가락은 인생에서 뒷전이었다젓가락질보다  필수적인 것들 먼저 익히고 해내느라미루고 미루다 젓가락질조차 못하는 45세가 되었다분명 엄마와 아빠가 계셨는데 일상의 ‘기술들을 모조리 스스로 터득한  같은 억울함이 밀려왔다.
 
나는  유년의 밥상머리에서 젓가락질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을까뒤늦게 알았다우리  자매 모두 젓가락질이 서툴다는 것을유년의 저녁 식사시간을 기억해내려 애썼지만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숱하게 먹고  먹었던 다섯명의 가족이 모여 앉은 밥상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우리가족은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하루 일과를 나누며 먹었던 따뜻한 저녁식탁은 없었을까?
 
 
 지치고 아픈 날이 많은 엄마가 애써 만들어주신 식사가 마냥 반갑고 행복하지만은 않았나보다 저보다 늦게 일어난 엄마가 아침밥을 먹겠냐고 나에게 물어보면 그렇게 화를 내곤 했었다엄마가 묻지 않고 먼저 일어나서 입시생을 위해 준비하신 따뜻한 아침밥을 먹고 싶었다신경이 예민해서 싸가지와 바가지를 구분하지 못한 때에는 아침부터 속상한 날이 많았다그저  때문이라고 하기엔 억울함이 컸다밥은 아무 잘못이 없다.
 
엄마는 나를 존중한다며 매번 확인하고 넘겨주셨던 많은 선택의 순간을 나는 넘겨받고 싶지 않았다나에게 엄마는 선택권을 주지 않았어야 했다.
 
밥을 먹겠냐 ( 먹는 아이한테 밥을 먹겠냐고 물어보면 안차려주고 싶으신 거겠죠?) 동생과 같이 가겠느냐 ( 동생이랑 함께였는데 새삼스럽지요.)
 
도시락 반찬이 이러한데 괜찮겠느냐 (편찮으신데 싸주시는 것만으로 감사한걸요)
 
학원을 가겠느냐 (언제나배우고싶은 욕심 많은 아이였는데 알아주시지 않았죠)
 
네가 하라는 대로 할게 (엄마 하라는 대로 하고 싶었어요)
 
너가 알아서 잘하니까 (억지로 하는 거였어요첫째가 안하면 동생들도 안할 테니까)
 
이런 선택권은 커다란 숙제 같아서 받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알아서  해주세요."
 
어린이 성혜는  이렇게 외쳤다마음속으로.

 
 
아픈 몸을 사는 사람은 여유가 많지 않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아침도 힘들고 밤은  힘들고 셋에 치매 걸린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건사하는 일이 어찌 아무렇지 않을  있을까밥상머리에서 딸들이 숟가락으로 생선을  발라 먹는지 밥을 남겼는지  먹었는지 확인할 겨를 없이 챙겨야  것이 많은 ‘엄마의 시간 이제야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리 첫째는 젓가락질을 매우 잘한다.  먹는 일이 행복한 일이라 먹고 싶은 음식은 혼자 해먹기도 한다어디 가서  굶지 않을  같아 아이와의 전쟁 속에서도 은근 자랑스러운 부분이기도 해서 신기했다첫째 아이는 미식가다 브랜드가 바뀐 것마저 알아내는 특별한 혀를 가졌다그런 아이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하던 때가 있었다아마  시간 동안 딸아이의 젓가락질을  봐주었던  같다천천히 너가 좋아하는 빵떡을 먹어 보렴엄마가  줄게
 
둘째 아이는 젓가락질을 못한다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너무 조금 먹길래 덩치 유지하려면 천지개벽 한번 일어나서 위를 개조하지 않음 안될  같다고 했다얼마나 먹는데 관심이 없냐면 밥은  번이나 먹는 일이 매우 놀랍고도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이렇게 먹어서 무얼 하냐며 알약으로  채우고 싶다고 했다 먹는데 관심 없는 극왼손잡이 아이는 젓가락질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 보인다배워야  것이 너무 많은 아홉 살을 지나가고 있다나에게는 아이의 젓가락질 끝까지 해내는 모습을 확인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젓가락이라는 사물로 망각의 강을 건넜다가 돌아왔다. 아홉  아이와 함께 젓가락으로 아몬드를 집는 연습을 한다아이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데 ‘오징어게임 가면 목표로  알씩 옮기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나는 요령으로 45 치의 밥을 먹어버려서 그런가 아몬드 집어 옮기기도 요령을 부린다저녁에는 엄마가 대부도에서 보내주신 꽃게를 넣고 라면을 끓여본다대부도의 냄새와 미각을 깨우는 MSG 향기가 어우러진 면발  줄을 젓가락으로 집어본다천천히 입안에 넣어 유년의 기억을 씹어 삼킨다.


 급하게 먹을 필요가 없다
 
급하게 해치  일이 없다.
 
나에게는 중년의 여유가 생겼다.
 
면발의 양을 늘려 젓가락질을 신중하고 섬세하게 해본다천천히 바르고 정확한 젓가락질로꽃게 정리하느라 손이 퉁퉁 부었다는 엄마를 생각하며 통통한 살점을 발라 먹고 국물에 밥도 말아 먹는다오늘의 저녁밥은 기억나는 식사시간이  것이다.
 
 


2023년 10월 10일 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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