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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시로바로앉는여자 Oct 01. 2023

딸랩소디

셔츠를 들추어 배꼽을 확인했다_ 싸우며 사랑하며

첫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특별했다. '내가 세상에 나왔어요 여러분!' 마이크를 대고 알리려고 작정한 듯 계획과 예상을 빗나가며 내 곁으로 왔다. 힘주면 쑤욱 나올 줄 알았던 아기가 자궁길에 걸려 끼인 채로 8시간, 생각지도 않았던 긴급수술을 했고 2-3일이면 일어나서 모유 수유를 하며 새 생명의 경외감에 빠질 줄 알았는데 수술 부위가 자꾸 덧나 오랫동안 누워있었다.

100일이 되어갈 때 배앓이를 하는지 울다 깨다 하며 잠이 들면 새벽 3시에 또 자지러지게 한 달을 울었다.한여름 밤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주민들의 핀잔 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울음소리, 핀잔 소리, 종종 욕지거리까지 뒤섞여 자는 둥 마는 둥 그렇게 세상과 등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잠이 보약이며 사랑이고 비타민이었던 난 아이를 자궁에 도로 넣고 싶었다. 아이를 낳으면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감내해야 한다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 좋겠다, 좋은일이야, 축하해 " 한 세상 살며 들을 만한 덕담은 임신기간내에 다 들었다.

그리고 아이가진 엄마가 힘든 건 당연하다고만 했다. 

" 넌 왜 이렇게 힘든 거니. "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지배할 때쯤 거울 속에 퀭하고 사나운 얼굴이 보였다. 이렇게 사나운 얼굴은 평생에 본 적이 없어. 거울을 깨버리고 싶었다. 이 얼굴을 하고 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니.  

남편은 침대에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내동댕이치는 나를 보고 

"넌 엄마가 아니라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어"

또 울었다. 부끄러움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왠지 억울했다. 열심히 살았는데 그 열심으로는 아이와 마주하기가 어림도 없는것이다.  어른인 줄 알았는데 나는 이제 시작이었다.껍데기 나이만 먹었지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아이는 하나의 우주를 맞이하는 억 겹의 인연이라고 했다. 우주를 자궁에 도로 넣고 싶다니...


시간은 흘러 사춘기 아이와 사십춘기 엄마가 만났다

지지고 볶고 울고 웃고 아이는 쑥쑥 크는데 나는 세월을 몸에 아로 새기는 중이다.하느님이 인생 두번째 어려운 시험과 과제를 던져주셨네.

아이의 눈빛이 바뀌고 말도 거칠어졌다. 말투를 고쳐야 한다고 훈육하고. 바른 말을 쓰자고 잔소리를 하고, 책을 함께 읽고 동시 필사도 하고... 나름대로 노력을 해왔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서 낙심하다 사춘기의 생활을 책으로 다시 정리한 후 '이것은 오직 뇌의 문제다' 라는 결론을 냈다.


사춘기의 뇌의 오작동 기간, 전두엽이 자리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예정이라는 전초전일뿐 아직 절정이 이르지 않았으니 조심하라는 경고음일뿐. 3년후면 절정에 올라 지랄발광 우려 있으니 만발의 준비를 하고 대비하시길. 그러다가 17세쯤부터 차차 아주 조금씩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니.


아이의 언어에는 부모의 언어가 비친다고 했는데 동의 하지 못하겠다.

요즘 아이들은 초4학년때쯤부터 부모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웹툰을 보고,  카톡을 하고 게임을 하면서 온갖 비속어와 외계어 그리고 상대방을 조롱하는 말을 무섭게 습득하고 서슴없이 쓰는 아이. 핸드폰을 뺐기도 하고 어르고 달래보기도 하며 기분이 태도가 되면 왜 안되는지도 이야기 한다. 그래도 뭐 고쳐지지 않는 아이들이 태반이지. 엄마 고민 상담소를 차지 하는 대다수는 아이의 핸드폰 문제다. 거기에서 파생되는 각종 이슈는 손가락이 모자를 지경이다.

집에서 하는 모든 어른의 말과 행동이 아이에게 긍정의 영향을 주겠지, 분명 달라질꺼야 하는 생각은 순수한 생각이며 최대한의 긍정이다. 아이의 사회생활은 온라인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이렇게 휘둘리기 시작하다가 사춘기에 아주 악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얼마전 반에서 가장 친한 친구마저 미국으로 가고 난 후 아이의 감정은 더욱 격해졌다. 속상한 일이 생기거나 화가나면 머리카락을 마구 뜯어냈다.  불안할때마다 손톱을 뜯는 습관은 어느덧 6년째, 손톱을 깎아준적이 까마득하다.

자신이 미워질때마다 그걸 굳이 말로 하며 폭식을 한다.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걸 달리 풀 방법이 없어 말로 뱉어내고 뱉어낸 말과 함께 음식으로 같이 섭취하는 아이를 볼때마다 두려워진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볼때가 많은 요즘이다.

나는 최대한 무생물이 되어 본다.  

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몸짓으로 나의 의견을 덧붙이지도 말고 옆에서 지켜보다가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살짝 다가가본다. 어떤날 보면 덩치가 아주 큰 사람옆에 아직 한참 어리고 여린 어린이가 붙어 있다.  

엄마가 팔짱껴주고 엄마와 데이트 하는 걸 좋아하는 소녀

나쁜말을 해도 뒤에서 꼭 안아주면 몇분뒤에 기분좋게 동생이랑 놀아주는 소녀

먹는게 너무 좋아서 매일 급식을 찾아보고 내일 아침 먹을 것을 생각하며 잠이 드는 아이.

엄마가 잔소리할까봐 수학점수 70점에서 5점 올려 얘기하는 아이


작은 몸짓으로 아이를 바라보려고 한다.   

아이가 사춘기를 맞이하고나서부터 나는 아주 무서운 얼굴로 이해할 수 없는 아이를 자주 노려보았다. 그렇게 또 내 얼굴은 사나운 얼굴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거울 속 아주 커다란 덩어리로 변해버린 중년의 라인과 못마땅하고 어두운 내 얼굴이 눈에 띄었다. 흘러내린 입술꼬리를 손가락으로 억지로 끌어올려본다. 


'어른이 되려면 한없이 깊어져 바닥에 무엇 이 있는지 확인하고 올라와야 될 거야.'


오늘도 거울을 보며 생각했다.나로부터 태어나 나 아닌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까. 그것 또한 내가 평생 배우고 경험해야하는 인생의 과제라는 것을 아이는 그러한 존재라는 것을 오늘도 또 배운다. 


우리가 차가운 돌 위에 올리는 꽃을, 사실 우리 자신에게도 주어야 한다. 

꽃에서 서서히 물기가 마르고, 꽃잎이 열 장에서 두 장, 한 장이 될 때까지 

바라보는 일을 우울하거나 쓸데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이것은 평화로운 저녁 인사로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시와 산책> 163p



오늘은 너에게 내일은나에게 꽃을 주는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사춘기 아이의 배설하는 감정을 들어주다 나의 감정까지 백지위에 배설해보며 오늘 하루는 이것으로 충분히 시원해졌으니 내일부터는 또 좋은 어른의 모습으로, 온전히 사랑하는 엄마의 모습으로 아이를 만날 것을 다짐하며. 


랩소디라는 단어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퀸을 떠올리게 하므로 이미지 올려두며 피식 웃음지어봅니다

랩소디: rhapsody

명사 관능적이면서 내용이나 형식이 비교적 자유로운 환상적인 기악곡 - 네이버 국어사전- 

딸랩소디

방종에 가까운 느낌으로 감정의 자유를 즐기는 딸내미의 배설에 한겨울 살기를 스스로 느낀 엄마가 마음을 풀길 없어 마구 백지위에 응대한 재즈  - 박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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