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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시로바로앉는여자 Oct 13. 2023

산소호흡기 쓴 어른으로

셔츠를 들추어 배꿉을 확인했다_ 싸우고 사랑하고 

작년일이다. 

아니, 현재 진행형이다. 

작년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오늘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내일도 계속 될 이야기, 또 다시 아플 이야기 이기 때문이다. 


책방일은 3일, 학교출근 2일. 이렇게 균형점을 찾은 나의 일은 작년 일년동안 생각보다 바쁘게 굴러갔다. 중간에 달콤한 방학이 있는 기간에는 우리 아이들에게 집중하여 책방수업을 따로 해주거나 여행을 가기도 하면서 한해도 코로나와 상관없이 책방은 잘 버텨냈다. 학교 수업에도 욕심이 생기면서 10여년동안에도 오르지 않았다는 쥐꼬리만한 강사비를 재료비로 쓰거나 아이들의 책을 만들기도 하였다. 원래 초보는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법이니까.  

아이들 이름을 외울 만도 한데 매번 수업시간마다 "친구들아~"라고 뭉뚱그려 호칭하는 내가 원망 스러울 때가 있다. 일단 이름을 잘 못 외우는 편이기도 하고 마스크를 쓰니까 이상하게도 이름과 얼굴을 매칭하여 외우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은 이름을 불러주면 참 좋아한다. 나 어렸을 때도 그랬고 지금 우리 아이들을 봐도 그렇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먼 곳에서도 "땡땡아" 하고 이름을 불러주면 좋으련만 "독서 선생님~~"하고 나를 부르는 아이들에게 손만 흔들어준다. 

나는 긴 호흡으로 수업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학교 수업시간은 아이들 정리 시키고 책 2권 읽고 이야기 나누다 보면 정신없이 1교시가 지나간다. 애정을 가지고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외우고 싶지만 연달아 4시간의 수업을 하고 나면 정신머리는 늘 안드로메다에 가 있다. 담임선생님도 그러신 걸까? 일년 동안 아이들의 이름표가 자리마다 딱 붙어 있다. 마스크 시대에는 아이도 어른도 서로를 기억하고 이름을 불러주는게 쉬운 일이 아닌 게 되었다. 보통 아이들과의 그림책 수업은 기본 스케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일년 전에 미리 학년 선생님께 확인을 받은 수업자료라 바꾸면 수업에 지장을 줄 것 같았다.(저학년은 보통 그림책을 수업의 교재로 많이 쓰신다고 하신다)  

김고은 작가의 <끼인날>을 준비하면서 이 책은 기본은 할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여기서 '기본'이란 주인공으로 빙의 되어 감탄사가 나온다거나 자기 이야기를 멈추고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놀라운 집중력이 발휘되는 것을 말한다. 아이들은 팔고 사고 끼고 빼고 뀌고 소리 나는 이야기를 참 좋아하니까.

<끼인날>은 개성있게 생긴 한 아이가 하늘에 끼인 강아지, 할머니 주름에 끼인 모기, 멘홀 구멍에 끼인 펭귄 등 끼인 것들을 빼주고 집에 왔는데 엄마 아빠가 싸우고 있었고 엄마와 아빠 사이에 낀 '싸움 요정'을 빼내고서야 그 사이에 내가 낄 수 있었다 로 마무리되는 이야기다. 한 아저씨의 엉덩이에 낀 스컹크 장면에선 흥미도가 최고조에 이르고 엄마 아빠 싸움하는 장면에선 작은 탄식이 나온다. 1학년 친구들은 이야기속으로 금방 빠져들어 자기와 주인공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엄마 아빠도 맨날 싸워요.. 저렇게요.. 이런 말이 수업시간마다 두 번 이상은 들린다. 수업중 끼인 경험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선생님 기분이 안좋아서 듣기 싫어요" 1학년 교실에서 이런 반응이 계속 나왔다. 

“ 아, 우리 현정이는 끼인 적이 있었어? 넘 아팠지? “

뒤쪽에서 한 아이가 소리쳤다.

"이태원참사도 사람들이 끼어서 죽은거잖아요"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 아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소리를 높여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분위기를 전환하려했다. 

" 아, 얘들아 그 사건에 대해서는 좀더 시간이 지나고 이야기 나누어야 할 것 같아

 이 그림책과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데 얘들아. 선생님이 다른 책을 좀 소개해줄께 "

아이들은 그림책 끼인 날을 이태원과 연결시키고 있었고 나는 섬세하지 못한 책 선택으로 아이들을 힘들게 했다는 생각에 당황스러웠다. 눈을 질끈 감고, 정확한 이유를 말할 수 없지만 기분이 너무 안좋다고 소리치는 아이에게 겨우 이 정도뿐이 대응하지 못했다는 생각. 학교를 그만두면서도 그날의 대처가 엉망이었음을 내내 후회했다. 아이들에게 상세하게 이야기 했어야 했다. 감정을 토해내고 잘못된 부분이 어떤 것인지 어린 아이들도 알아야 했는데. 안전하지 못한 상황에 책임질 사람이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잘못을 회피하느라 소중한 시간을 다 쓰고 억울하고 슬픔에 빠진 국민들을 제대로 위로하지 못한,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사고였다고. 

'이런 세상에서 우리를 살게 할 건가요? 왜 길가다가 사람이 저렇게나 많이 죽었는데 아무도 미안하다고 하지 않아요? '

마치 나에게 말을 하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을까 후회와 죄책감으로 몸서리치는 시간이 지났다. 그림책 <끼인날>을 다시는 들여다볼 수 없었다. 


‘울지 않으면 매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는 것이다’ 안도현의  <사랑> 이라는 시 마지막 구절이 있다.  이제, 누군가 울어야만 고개를 돌리는 세상이 되었다. 나 여기 있어요 부르짖어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매미가 있다, 거기 사람이 있다.  우리 곁에 수없이 많은 '우는 사람'을 보며... 무뎌진 게 아닐까. 아직 사과도, 이해도, 공감도 하지 못했는데 지난 시간은 '과거' 라는 이름으로 희미해지고 있다. 소리를 내야하는데... 소리가 자꾸 묻힌다. 억울한 죽음과 끝나지 않은 울음소리, 그리고 더욱 뻔뻔해지는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들, 반복되는 아픔을 보고 또 듣고 그렇게 계절은 흘러 다시 그 가을이 왔다.


비행기 안에서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어른부터 산소호흡기를 한다. 그 이후 아이를 도와주어야 한다. 젊을 때엔 몰랐다. 안내문을 보고도 아주 약간 의아해 할 뿐, 큰 질문을 품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어른이 먼저 호흡하여야 약자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어른들이 오롯이 서야 '돕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좀더 그릇이 커져야 하며 깊어져야 하겠다. 적어도 우리 아이들의 입을 서둘러 막는 어른이 되지는 말아야지. 산소호흡기를 쓴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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