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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시로바로앉는여자 Oct 18. 2023

그림책 읽어주는 어른

셔츠를 들추어 배꼽을 확인했다_싸우고 사랑하고


작년까지 2년동안 일주일에 한번 초등학교 아이들을 만나왔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그림책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요즘 유행하는, 일종의 문해력 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 40분씩 4교시를 연강하는 대혼란 상황속에서 나를 멈추게 하는 질문들을 만날 때가 있다. 수업후 몸은 힘들지만 기분과 텐션이 올라간채로 집에 온다. 


세상에 나와 겨우 8년을 채 살지도 않았는데 그림책 활동시간에 툭툭 삐져나오는 말이 예사롭지가 않다. 사는 게 지겹다거나(아니, 벌써)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화가 먼저 난다는 친구가 있고 선생님의 작은 관심에도 몸 둘 바를 모르고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90도로 숙이는 친구가 있다. 작은 관심은. **아 오늘은 글씨가 특별히 더 예쁘다 하는 소소한 문장이다.  받는 것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과 다른 반응을 나타내서 그러한 경우에 나는 많이 당황한다. 

그림책을 읽고 (아직 현실과 이야기의 경계에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이 소실되지 않은 나이다) 주인공에게 강하게 감정 이입되어 ‘주인공이랑 나랑 똑같네요!. 오늘 아침에도 욕 먹었는데... 우리형은 나한테 맨날 쌍욕을 해서 머리박치기를 해버리고 싶어요’ 마음이 툭 튀어나온다.(수업시간인데 마치 현장에 있는 듯 아주 크고 격앙된 목소리로;;) 

수업이 조금만 느슨해지면 본인들 이야기하느라 바쁘다. 서로 자신의 내밀한 사정을 꺼내는데 스스럼이 없다. 그런 상황에도 고개를 책상이랑 뽀뽀할 정도로 떨구고 있거나 불안하게 손톱의 거스르미를 잡아떼는 몇몇 친구가 있다. 나는, 귀로 아이들의 말을 쫒으면서도 눈으로는 거스르미를 어디까지 떼고 있나 살피기도 했다. 그러고는 시간이 될 때 저 친구의 말을 조용히 들어줘야지 다짐해보았다.  어느날,  쉬는 시간 다른 반으로 넘어가지 않고 작정하고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습관이고 자신도 그 습관이 싫다고 했으나 고쳐지지 않는다고 했다. 의외로 담담하게 그저 나의 습관이라고 하니 수업에 집중해야 되니 고로 나는 더욱 재밌고 흥미진진한 이야기 수업을 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느 날은 피가 철철 흐를 정도로 손을 난장판으로 만들어서 수업을 중단했다. 수업이 심한자극을 주나 싶었다. 모두 큰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척척 발표하는데 그 친구는 그러질 못해 불안한 건가 싶었다. 아이들이  ‘제는 원래 그래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의 경험으로 '원래 그런 애' 는 없다. 피를 보며 작은 자해를 하는 행위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자기방어다. 방학직전 수업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그 애가 안쓰러워 손을 꼭 잡아주고 귓속말로 “선생님이 너의 그림좀 보고 싶어. 방학되기전에말야. 사실은 초코렛 선물 주고 싶어서 그래. **이 한테만 몰래 줄거야 하나뿐이 없거든” 그러자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그림하나가 우리 앞에 빛의 속도로 남겨져 있더라. 그동안 한번도 보지 못했던 작은 미소로 초코렛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웃을 줄 아는 아이가 웃지 않고 무기력하고 거스르미랑 씨름만 하고 있던 것이었구나. 친구의 마음이 아픈 건 알겠는데 강사선생님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그동안 그반에 들어가는 것이 내내 불편하기도 했다. 하는수없이 그림책 선정으로 나의 최선을 대신해왔다. 

이 문해력 수업이라는 건 결국엔 공감하는 법을 배우는 수업이다. ‘공감하는 법’은 노력없이 저절로 익히거나 머리 어딘가에 장착하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 시기에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책을 읽고 그림책을 만나는게 아니라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법을 익히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 더군다나 그림책은 딱 지금이 아니면 만나기 힘든 매체이기도 하다.

사는게 지겹다는 아이에게는 세상의 작고 하찮은 것들이 모두 그림속에 전면으로 등장해 그들에게 귀엽다를 연발하는 노석미 작가 그림책 <귀여워>를. 형한테 맨날 맞는 친구에게는 제대로 싸움해도 절대 형 한테 지지않는 <내일 또 싸우자>를. 아침에 눈뜨면 이유없이 화나는 친구에게는 <살아있다는 건>을 읽어주고 싶다. 

한명씩 한명씩 친구들에게 그림책을 처방해주고픈 국어강사는 돈을 좀 많이 모아야했다. 매일 간식 챙겨가기도 버거운 주머니 속사정이 있었다. (학교 그림책 수업에 재료비도 없고 수업료는 너무 열악했다) 그러나 마음이 더 아픈 친구들을 모른척 하기엔 아이들이 너무 예뻤다. 예쁜 아이들을 보고 돌아온 날은 ‘화 안나게 하는 비타민’을 먹은 듯 우리집 아이들에게 너그러워지는 마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나는 이 수업이 나에게 주어진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친절해질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는 자아성찰의 시간이기에.


아이들이 말을 하면 그것에 반응하느라 선생님이라는 사람은 아이의 행동이 안보일줄 알았는데 웬걸 절대 아니었다. 내가 앞에 서보니 당황스럽게도 모든 것이 한눈에 다 들어왔다. 학창시절 나만의 세상에 빠져 교과서 한쪽에 만화를 그리는 것도,( 졸라맨으로 교과서 아래쪽에 서서히 움직임을 달리해서 그리면 책장을 빠르게 넘기면 나만의 영화가 탄생되는)  책을 세워두고 한껏 숙여 편지를 쓰는 것도, 고개를 떨구며 졸고 있는 것도 모두 선생님은 알고 있었다. oo 초 수업첫날은 나의 수많은 학창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더랬다. 선생님들에게 죄송한 시간들은 이미 아득히 멀어진 후지만. 

선생님은 모두 알고 계셨구나!!


수업을 하면서 나를 돌아본다. 부모의 양육태도가 아이의 표정을 좌우까진 아니더라도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자기를 어떻게 포장할지의 선택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한없이 천진한 아이들의 반응을 보니 어른의 세계와 아이의 세계는 다른 것이 분명해 보인다. 내가 한 무심하고 무표정한 말들과 태도가 아이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었나. 확인해본다. 

다음에는 거스르미 친구, 욕먹어 억울한 친구, 소리를 듣지 못하는 친구, 영유출신 자랑쟁이 친구 모두 성장해있겠지? 올해는 예산이 없어 나는 oo초등학교에서 냉정하게 짤린 선생님이다. 그림책수업 예산이란것은, 내 강사비를 놓고 계산해보니 사실 큰 예산이 아닌데... 아이들이 아주 좋아했다고 생각하는데... 학교에게 아니 서울시 교육청에게 고하느니 그림책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과 예술성그리고 정서적 교육가치를 꼭 공감해주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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