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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시로바로앉는여자 Oct 22. 2023

이야기의 종결

셔츠를 들추어 배꼽을 확인했다_싸우고 사랑하고 

"아이고 이것 좀 봐라 ***아." "엄마 왜 그래,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지?"


누우면 엄마 다리가 붕붕 뜬다. 기이한 현상이다. 가끔 있다가 최근에 이렇게 눕기만 하면 다리가 이렇게 둥둥 뜨며 움직인다고 하셨다. 유체이탈직전의 상황까지 간 후 엄마와 나는 병원을 찾아다녔다.

엄마가 정기적으로 다니시는 s병원주치의는 매우 놀라며 다른 병원을 추천해 주셨고 서울로 이동하여 유명한 Y대학병원을 갔는데 '정신과나 가보세요' 이런 말을 들었다. 엄마는 그 의사에게 자존심이 단단히 상해서 톡 쏘아주고 나왔다 

"여태껏 이렇게 진료 보셨어요? 어디 정신병자 취급을 하고 그래. 당신 진료 똑바로 보세요" 

그러고는 터벅터벅 나오는 길 대학생들 틈에 끼여 우리는 포장마차 풀빵을 먹었다. 오랜만에 먹으니 너무 맛있다며 환하게 웃었고 사실은 의사 뺨을 한 대 갈기고 나오려 했다며, 풀빵을 한 움큼 베어 물고 말씀하셨다.

"엄마 참길 잘했네. 의사를 싸우면 환자는 모두 져"


다시 YY대 병원에 검사를 마치고  어렵게 알아낸 병명은 간질이라고 했다. 검색을 해보았다. 간질이라니? 정확히 '뇌전증' 스트레스 요인이 생기면 의지와 무관하게 몸이 움직이는 증상이다. 대뇌의 신경세포가 과흥분하는 현상이다라고 네이버는 알려주었다(이 결과를 알기 위해 지난한 검사 과정에서 의사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우리나라 의사에 대해 너무 할 말이 많아  A410장도는 거뜬하게 채울 수 있을 정도다 ) 

엄마를 위해서 아빠를 설득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과정으로 아빠가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다. (자신이 요양병원에 들어가야만 이 상황이 호전되리라는 것을 수긍하시지 못한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 일단, 들어가면 나오기 기힘든 곳. 쉽지 않은 설득과정은 6개월이 넘게 걸렸다) 함께 사는 엄마만 잘 아는 병, 바로 아빠의 치매가 진전되고 있었고 그 사이에 엄마도 병들어 가고 있던 것이었다.  

엄마를 정기적으로 인터뷰한 후 글로 정리하기도 전에 바로 아빠, 그리고 엄마의 병세가 심해졌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시간이 구멍 난 호스에 물처럼 흘러 나갔다. 그리고 하얀 백지위에 이야기를 복기하고 옮겨적으며 순서 없이 일을 진행했고(일이란 것은 위에서 말한 아빠의 요양병원 입원과 엄마의 치료) 그 사이에 사춘기 아이의 마음도 다치고 베이고 아주 제대로 요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맞닿들이기 가장 힘든 순간을 한꺼번에 마주하고 나니 다른 사람들을 어떨까, 나 빼고 모두 행복해 보이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아이들은 모두 말 잘 듣고 영재처럼 보이고 남의 어르신들은 모두 자기 관리 잘하고 아들딸들에게 많은 부담 안주는 것 같고 뭐 그렇게 보이더라. 

위험한 순간이 덜컥 찾아오기 전에 나를 붙잡아야 했다. 브런치에도, 책방 글쓰기 모임에서도, 책모임에서도 행여 판단력이 흐려질까 봐 메모하고 또 기록하고 글을 쓰고... 그렇게 정신줄을 붙들어 메니 아이들에게도 중요한 순간이 동시에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 우리의 시간은 소중하지. 


어느 날 문득 아이의 티셔츠를 벗겨주며 배꼽을 보았다. 우리는 탯줄로 연결되었던 사이, 싸우지만 사랑하고 사랑해서 또 싸우게 되는 지독하게 사랑에 목마른 사이구나 싶었다. 

쓰고 엮고 때로는 조각을 기어서 다시 연결을 희망하며 쓴 이 글은 삶을 사랑하고자 다짐하는 이야기다. 

엄마가 된 중년의 딸이 그의 엄마의 입을 빌려 내뱉어진 엄마의 역사를 주어 담는 인터뷰를 하였다.  언젠가는 꼭 물어보고 싶었다. 원가족을 원망하는 딸이 45세가 넘어가면서 폭풍같이 질문이 쏟아져 이걸 해결하지 않으면 온전히 살기 힘들겠구나 생각한 순간. 이 질문들을 일정한 간격으로 엄마에게 키워드를 던져 꼭 이야기를 받아내겠노라고.  요양병원에 가신 아빠는 맘속으로 단념한 체 마지막 남은 원가족 엄마에게 바짓가랑이 붙들어 사랑해라고 듣고 싶었나 보다. 

엄마의 역사를 이해하고 나의 유년을 정리하며 원망이 희망과 강력한 사랑으로 변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직도 엄마를 만나면 괜히 심술을 부리고 못마땅한 것이 있으면 여전히 직설적으로 말해버린다. 배려있고 다정한 딸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으니 엄마도 어느 정도 체념하셨겠지.

우리나라에선 딸이 친정엄마의 감정배설 쓰레기통이라고 그 유명한 책도 있다는데  나를 쓰레기통쯤으로 전락시키지 않은 엄마. 월마다 약소한 용돈을 드리는데 그 용돈을 꼭 챙겨 나의 아이들에게 다시 주는 엄마. 이제는 늙고 영험함이 떨어졌다는데도 좋은 꿈을 꾸어 주려 노력하는 엄마. 예쁜 것을 보면 함박웃음으로 백번을 예쁘다고 말하는 엄마. 


이제 엄마는 인생의 메이트가 되었다. 어느 한쪽이 더 사랑하거나 덜 사랑하다는 이유로, 혹은 경제적으로 앞서가거나 육신이 더 건강하는 이유로 내가 그를 끌고 가는 사람, 이제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다. 내 딸내미가 내 어릴 적 지랄 맞은 짓을 똑같이 했을 때 푸념하는 사이. 서로의 건강을 챙기며 시즌마다 영양제를 핑퐁으로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지금 이 시간, 돕고 도우며 살아가야 하는 인생동료로 엄마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니 나는 엄마에게 더 받아야 할 게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못 받은 애정과 관심과 사랑은 내 아이에게 줄 테니 엄마는 내 옆에 그저 전화하면 얼른 받는 존재가 남아주시길. 

나의 아이들이 나와 인생메이트의 반열에 오르게 되면 난 또 엄마를 생각하겠지. 아름다운 모녀의 롤모델은 지금부터 만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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