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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시로바로앉는여자 Sep 27. 2023

마음이 번잡할 땐 그림책을 읽어요

배꼽이 증명하는 사이_싸우며 사랑하며

책방에서 한 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그림책 모임을 진행한다. 정기적이라고 해놓고 나의 마음이 동할때마다 모객을 하고 있어 굉장히 불친절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나는 그림책을 읽는다는 것에 아주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모임을 고지하고는 일주일동안 많은 그림책을 소화하며 정갈한 일상을 꾸려가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림책을 집중적으로 읽는 동안에는 어린아이의 순한 마음을 닮고 싶고 실제로 나의 일상도 상처받지 않았으면 한다. 하지만 그림책을 읽으면 무얼하나 세상은 이지경인데, 때때로 허무한 마음에 사로잡힐 때면 다시 모임을 할 수 있을까 고뇌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긴 고뇌의 시간 후 [그림책 함께 읽어요] 간판을 내걸고 모객을 시작했다.  


'슬픈 세상에 한줄기 빛 찾기' 라는 부제를 가지고 ‘눈물흘린 그림책’ 한권씩 가져와 나누는 모임을 가졌다. 나의 서재에 꽂힌 슬픈 그림책을 가져와서 함께 읽고 나의 슬픔과 나의 아픔은 언제 어느 지점에서 몸 밖으로 나오는지 서로에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요즘엔 개인적인 슬픔보다 세상이 모두 어둠속에 빨려가고 있는 느낌으로 불완전하고 불안한 세상에 대한 회의와 슬픔이 나의 일상을 지배할때가 많다. 이런 거대담론으로 괴로워할 때면 또 내가 안쓰럽다. 어찌할 수 없는데, 사람들이 책 열심히 읽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느냐며 안타까워하다가도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우리들의 최선인 것 같으니 다시 돌아올 곳은 내 입장에선 늘 책이다. 불안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그림책을 읽어야 한다. 나는 그림책방지기 7년차니까.     

 

책방에 혼자 있을 땐 주로 ‘운영잡일‘ 처리하느라 그림책에 집중하기 쉽지 않다. 신간이나 들여온 그림책을 살펴보고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메일을 확인하거나 납품하고 있는 도서관에 수시로 연락을 해주고 인스타의 둥둥 떠가는 업계의 정보들을 수집한다. 

어쩌다 손님이 오실때면 오랫동안 책이야기와 일상의 어려움과 힘든 마음을 풀어놓으며 서로 공감하고 지지하는 일들을 한다. 그러다보면 정한 영업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오늘은 책 읽는 날’을 스스로 선언하고 손님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시간에 책방에 앉아 맘에 들어온 책들을 벽돌처럼 쌓아둔다. 나는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내리고 방석을 삼중으로 깔고 앉아 어떤 소리에도 방해받지 않도록 침묵을 지키고 그저 읽어 내려간다. 아주 잠깐 이 행복은 놓칠 수 없지 하는 마음도 들고 책방하기 잘했지 뭐야 싶다.    

 

[파랑오리 ]중에서

최근 ‘눈물흘린 그림책’모임에선 [파랑오리] [마음수영]을 읽으며 파란 슬픔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우리가 젊었을 때엔 그저 전전긍긍 조바심내는 아이였다면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어보니 인생은 둥둥 파도에 몸을 맡겨도 크게 잘못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소중한 사람이 내밀어주는 손을 다정하게 인지하고 있고 불안이 밀려올 때 덥석 그 손을 꽉 잡아버리면 나는 두려울 것이 없는 존재가 된다. 특히 그림책 [파랑오리]에서는 아이에서 청장년으로, 다시 노인으로 인생의 순환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리며 슬픈 세상의 구원은 가족뿐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나이가 들어 역할이 바뀌어도 유년시절 사랑의 경험으로 우리는 다시 베풀고 보듬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모임 서두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1인층 시점에서 보면 그런데로 잘 살아내고 감사한 하루를 보내고 있으나 전지적 시점에서 보면 디스토피아를 향해가는 듯한 지금이다 라고. 그림책을 읽다보니 내안의 허무와 우울이 조금씩 희석되는 느낌이다. 그림책의 힘을 설명할 길이 없다. 이렇게나 좋은데 말이다. 글을 낭독하고 그림을 감상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보니 다시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살아갈 힘을 얻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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