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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시로바로앉는여자 Sep 24. 2023

고쳐 쓰는 몸

 배꼽이 증명하는 사이_싸우며 사랑하며

미루고 미루다 치과에 갔다. 3개월 전부터 통증 있는 아침마다 생각을 했다. 늙으면 치아도 아픈 걸까(충치 없어도?) , 늙기 시작하면 잇몸도 아픈 걸까.  임플란트 광고 나올 때마다 나와는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남편은 내 나이 때 임플란트를 했었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곳이라면 치과와 산부인과다.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나의 은밀한 곳을 세상 거리낌 없이 들여다보는 산부인과 의사와의 대면은 정말 유쾌하지 않다. 잇몸은 또 어떻고. 나의 섭식에 지대한 지분이 있는 잇몸 구석구석을 보여주는 치과의사와의 대면 또한  부끄럽기 그지없다.  

한 달을 주저하다 찾은 치과에서 의사 선생님이 잇몸이 노화되는 과정에 있다며 전체를 아주 오랫동안 치료해야겠다고 했다. 지금 임플란트냐 아니냐의 기로에 선 몇 개의 치아를 보존하고 고쳐 쓰는 마지막 기회라고. 

'신체의 보존'과 '고쳐 쓴다'는 접근은 살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인간의 몸에서 눈은 가장 먼저 노화를 맞이한다고 한다. 코앞에 물건이 여러 개로 보이고 초점이 맞지 않는 것은 45세의 일이었는데  이 정도는 감내할 수 있지. 내 몸이 노화하는 첫 번째 신호는 그저 잘 받아들이려고 했다. 

남편은 40세까지 눈 양쪽 1.5를 유지한 산 슈퍼아이(eye)였다. 43세가 되는 날 '내 눈... '을 외치며 눈압이 증가해 큰 통증으로 안과에 갔더니 갑자기 찾아온 노화로 눈이 1.5에서 0.3으로 뚝 떨어진 것이었다. 

아니 40년 넘게 유지해 온 시력이 갑자기갈 수가 있는 거야? 

너무 의아해서 캐묻는 내게 남편은 '이제부터 시작이야.'비장하게 말했다. 

'늙음의 시작이라고? 아저씨, 난 아직 아닐세'

그로부터 6년 후 나의 차례가 되었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진다고 해서 좋아할 일인가 어떻게 늙어가느냐가 관건이지. 결과값이 좋다고 행복에 다다른 것은 아닐 테다. 지금까지는 어린 자식의 공부와 성장을 고민했다면 이젠 나의 노화도 준비해야 될 때란 말이지.

치아 통증으로 시작된 노화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갑자기 진지해지며 해야 될게 또 하나 늘어나버린 숙제 많은 아이처럼 스케줄러를 꺼냈다. 어떻게 늙을 것인가를 적어보았다. 일종의 내가 선망하는 바람직한 노후일상을 예상하며 적어보는 것이다.


덜 쓰고 덜 먹기를 실천하는 사람이 될 테다


세상에 물건이 너무 많고 나는 소비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아이들이 좀 크면 하나씩 내가 가진 물건을 없애가야지. 이건 내가 진작에 결심한 것인   추가 하여 물건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덜 쓰는 것, 꼭 필요한 것만 쓸 것, 그리고 먹는 것에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다. 고기는 지금도 많이 먹지 않는 편인데 훗날 비건에 최고로 가까이에 준하는 식생활을 실천하고 싶은 소망이다. 


아이들에게 책 읽는 어른으로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책이 없었으면 큰일 날뻔했지 뭐야. 마음 줄 곳을 찾으러 어쩌면 지금도 방황하고 있었을 것이다. 훗날 양육의 부담이 가라앉고 일상이 조금 더  단조로워진다면  책을 쌓아두고 책과 벗하며 지내고 싶다.  사람들과 얽히는 것도 마음이 힘들 것이고 좀 더 벌고자 안간힘을 쓰지 않아도 될 나이가 된다면  아무 조급함과 죄책감 없이 책에 기대어 시간을 보내도 되지 않을까 한다.   


사회에 어떤 보탬이 될 것인가를 고민할 것

 아빠에 대한 원망이 크다. 유년시절에 사랑하는 법과 배려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라 이해를 하였지만 그런 아버지에게 난 무얼 배웠나 생각하면 조금 기운이 빠진다. 분명, 깊이 기억을 더듬다 보면 좋은 점도 있을 텐데 말이다.  사회적으로 무기력하게 자그마한 존재로 먼지처럼 있다가 사라지고 싶지 않다. 요즘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노년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지  정리가 된다. 아빠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아빠를 이해해야만 일상이 유지되는 상황이 싫다. 아빠는 왜 자신을 이토록 방치한 것일까


참견하지 않지만 조언할 수 있고, 주변정리를 잘해나가 사람들이 나를 멀리하지 않게, 나를 가꾸는 모습 만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길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정신도 마음도 몸의 문제다.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 내가 아닌 사람으로 변한다. 나이 들어감은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를 덮칠 테지만 아프고 고장 나서 슬퍼하기보다는 지금부터 고쳐 쓰는 생활에 익숙해지려 한다 

47년 동안 딱 한번 해 본 건강검진도 이제 거르지 않고, 이빨수리가 끝나면 안경을 맞춰야겠다. 

가족을 위해 비타민도 골라봐야지. 밥대신 비타민을 한 움큼 먹는 사람도 있던데 나는 내 가족들의 비타민을 

챙겨준 적이 없었다. 치과에 간 날 이토록 많은 생각이 들다니. 가을 타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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