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통과하며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왔다. 일단 할 이야기가 많은데 털어낼 곳을 찾다가 (구독자가) 있지만 (나를 아는 분이) 없는 곳 브런치 가 생각났다. 블로그와 인스타는 가족이 점령하여 내밀함을 털어낼 안전한 장소가 아니다. 요즘 한창 빠져있는 텀블벅>스테디오 는 미션을 하고 책방이야기를 하는 곳이라 개인사를 털기가 민망하다.
브런치의 글은 어느새부턴가 일기가 된 거 같은데, 이렇게라도 정리할 곳이 있어 감사하다. 답답하면 글을 쓰고 싶어지는 걸 보니 뭐라도 쓰는 인간이 다 된거 같다.
비가 내려 나무에 붙은 여린것들이 다 떨어졌다 하늘하늘 연분홍 벚꽃은 막을 내렸고 나무에 붙은 연둣빛 이파리들은 빗물에 둥둥 떠서 하수구로 흘러갔다. 어제는 30도에 육박해서 지구 걱정하느라 하루 다보냈는데 오늘은 최고가 겨우 20도래서 두꺼은 외투를 꺼내입고 일찍 나왔다. 뒤죽박죽인 기후가 말해주듯 이제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지구의 폭주를 막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에너지가 있을 때 빡빡한 하루를 보내고자 운동-책방회의-점심약속- 글쓰기 작업 의 스케줄을 잡았다. 아침에 북클럽 인증을 올리고 일주일의 스케줄링을 하고 뿌듯해한다. 지난 주 내내 있었던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로 뒷목이 너무 뻐근하다.
119를 불러 친정엄마가 응급실로 가신지 3일만에 내 눈앞에서 시어머니가 또 쓰러지셨다. 나는 3일동안 119 구급차를 두번이나 탄 것이다. 처음도 공포였고 두번째는 더 공포였다. 다행히 두분다 금방 쾌차하셨는데 나이를 들어간다는 것은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닌 것이다. 반려자가 있고 정정하셔도 젊은 세대의 돌봄이 있어야 병원도 가고 약도 탈 수 있는 시대다. 나이든 사람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다. 대기 바코드가 뭐고, 키오스크 사용이 뭣이며, 응급실 접수를 하나 하려도 신상명세를 명확히 기억하고 있어야 하고 보호자 서명도 있어야 가능하다.독거노인은 더더욱이 응급실로 갈 수 없는 형국이다.
의사파업으로 2-3곳을 둘러 응급실에 들어간 시간은 어머니가 쓰러지고 정확히 한시간 후다. 시어머니 같은 경우는 호흡이 끊겨 실신했는데 이런 위급환자는 제때 병원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인것이다.
뭐 할말은 많지만 (의료사태에 대하여) 윤정권과 의사협(그들이야 개인이 잘 나서, 또 능력이 있어서 의사가 된 것이고 특권이라면 특권일 수 있고 의사만이 가질 수 수있는 고유 권한일 수 있는 부분에 대하여 놓지 않는 것은 이 시대에 너무나 당연한 것) 의 지금 사태는 서로 한발자욱 양보와 배려 그 이상은 없어보인다. 죽어나는 것은 아프고 약한 사람들 뿐.
tv나 인스타짤을 보면 길가다가 쓰러지신 분 옆에 마침 지나가신 분이 도와주셨는데 그분은 간호사 였다던지 식당에서 급체로 쓰러진 분의 cpr을 도운분이 알고보니 의료시설 종사자라든지 이런뉴스 볼때마다 저분은 얼마나 큰 운을 타고 나셨는지 죽지말라고 하느님이 천사를 보내주셨네 생각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쓰러지신 곳 옆에 의사 선생님이 계셨던 것.그분이 달려와 말려들어간 혀를 꺼내서 호흡을 돕고 cpr을 해주셨다. 10여초 후 어머니는 의식을 되찾으셨다 그분의 검지 손가락에 피가 올라왔다. 경황이 없어 굽신거리며 인사만 하고 연락처를 묻지 못했다. 순식간에 생명이 왔다갔다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천사가 도처에 있다는 것을. 나는 한번 더 눈으로 확인했다. 쓰나미처럼 사건사고들이 왔다가 정리된 오늘 아침 조금 특별하게 눈을 떴다. 하루를 더 잘살아보겠다고.
간밤에 잔뜩 찌푸린 미간을 아침에 쭉쭉 펴보지만 의술의 힘을 빌려야 가능한 일이 되었다
일주일도 복짓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