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가 회복하지 못한 자신의 사업 때문인지, 정말 준서와 소연과의 비극 사이에서 괴로워서였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석훈은 서진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이유도 준서의 죽음에 대한 자책이 극에 달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고, 스스로 목숨까지 던진 이유가 어쩌면 준서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그리고 혼자 머물 준서가 외로울까 봐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마치 조금이라도 늦으면 준서가 가는 길을 따라갈 수 없을까봐 모든 것이 정리되는 대로 서진이 서둘러 길을 재촉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석훈은 그동안 자신이 아들 윤서를 사랑하고 윤서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가장 자신을 닮은 또 다른 자신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에게는 종족번식의 본능이 있다고 믿었기에 다른 이유가 없더라도 그런 본능만으로 자식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진이 준서에 대해 아무 감정도 남아있지 않다고 했을 때에도 석훈은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고, 역시 생부로서의 부성애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진의 죽음을 통해 석훈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자신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는 아이에 대한 본능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자식이 태어나서 성장하는 동안의 인생 전부에 대한 기억과 삶을 공유하는 것으로도 그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석훈은 준서의 납골함 앞에 놓여있던 사진 속 서진과 준서가 닮아 보이는 것을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부부나 연인이 서로 닮아가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것은 상대방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의 표정과 말투, 습관까지 닮아가기 때문에 서로 비슷해져 가는 것이다.
서진과 준서의 똑 닮은 웃는 모습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오랫동안 웃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 웃는 모습에 서로 행복감을 느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저렇게 닮을 수 있었다는 것도 말이다.
잉태의 순간부터 가장 손이 많이 필요할 유년기 때 시간을 함께 보낸 서진이 준서에 대한 죄책감을 이유로 죽음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도 석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준서의 실종과 죽음으로 인해 그가 느꼈을 슬픔이 자신이 느낀 그것에 비해 얼마나 컸을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아마도 준서의 실종을 안 석훈이 혼란스러워만 할 때, 서진은 준서를 찾기 위해 거리를 헤매고 다녔을 지도 모른다.
서진이 소연과 이혼 후 준서를 만나지 않은 것은 양육비도 줄 수 없는 자신의 초라한 상황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서진은 가정이 깨졌을 때부터 삶을 포기하려 했지만, 준서와의 재회를 기다리며 지금까지 삶을 버텨 왔는지도 모른다.
서진이 선택한 죽음이 그가 준서에 대해 가졌을 감정과 행동에 대한 상상에 개연성을 부여해주었다.
한참을 36번과 37번 자리 앞에서 머물면서 서진의 부정(父情)을 온몸으로 느낀 후에야 석훈은 그 자리를 뜰 수 있었다.
석훈은 추모공원을 떠나기 전에 관리사무실에 들러 직원에게 전후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아, 그분... 저희도 되게 황당했어요. 처음 저희 사무실에 오셔서 자기 아들이 머물 곳인데, 가장 좋은 구역이 어디냐고 물으셔서 E구역이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직접 가보시고 다시 오셔서는 두 자리를 계약하고 가셨습니다. 관리비도 20년 치 일시불로 한 번에 내셨고요. 아까 분명 죽은 사람이 아들 한 명이라고 그랬는데 왜 두 개를 계약하셨을까? 좀 의아스러웠어요.
그런데 얼마 후 그 아이가 그 자리로 들어오더니, 또 얼마 안 지나서 그분이 들어오셨더라고요. 어찌나 마음이 안 좋던지...”
석훈은 이곳에 올 때보다 더 무거운 마음으로 추모공원을 나왔다. 그리고 이곳에 다시 오지 않기로 했다. 서진이 원하는 대로 영원히 두 부자가 함께 했으면 했고, 자신이 어쩌면 그 둘 사이에 방해가 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준서를 생각하며 슬퍼하는 것이 준서와 서진에게 실례가 되는 것 같았다.
자신이 처음부터 잘못 만들어낸 인연의 실타래가 결국 자기 자식과 그의 진짜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 죄책감은 아주 오랫동안 석훈을 따라다닐 것 같았다.
그들에 대한 죄책감에 더해 진경과 윤서에 대한 미안함도 늦게나마 떠올랐다.
살아있는 두 사람에게 평생 숨겨야 할 죽어있는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 석훈과 네 사람 모두에게 비극으로 끝난 석훈이 만든 이야기의 결말이었다.
준서를 둘러싼 모든 감정을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석훈은 사무치게 윤서가 보고 싶었다.
아마도 윤서는 평생 석훈이 감당해야 할 괴로움에서 석훈을 끝까지 버티게 만들어줄 것이다.
서진이 준서의 옆에서 아버지로 영원히 자리한 것처럼, 석훈도 그렇게 다시 윤서의 곁으로 영원히 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