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으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준서에 대한 수사 마무리가 오래 걸려 연락이 늦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석훈은 그가 가질 수 있는 부담에 반드시 연락을 하리라고 믿었고,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인근에 있는 좋은 납골당을 알아보며 준서를 맞이할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아내 진경에게는 평생 말할 수 없겠지만, 기일이나 생각날 때면 찾아가기 편한 인근 지역으로 준서가 쉴 곳을 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위치와 시설이 적당한 납골당을 골라 일일이 전화를 해가며 비용과 절차 등 이것저것을 알아보던 차에, 자신이 준서를 위해 결정한 사항들을 서진에게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준서를 머물게 할 겁니다.’ 정도의 내용을 메일에 담아 서진에게 보낼 계획이었지만, 사실 답이 올 때가 된 것 같은데도 오지 않아 한 번 더 자신에게 준서를 보낼 기회를 달라고 독촉하려는 의도였다.
서진을 만난 지 몇 주 정도가 지난 무렵이었다.
석훈은 서진에게 메일을 보내기 위해 서진과 주고받던 메일 계정으로 다시 로그인을 했다.
‘안 읽은 메일 139통’
메일 보내는 게 급한 것도 아닌지라 먼저 가득 쌓인 스팸메일들을 지우려고 메일 수신함을 열었더니, 발신자 ‘이서진’이 보낸 '위치'라는 제목의 메일이 보였다.
‘이건 뭐야, 언제 보냈지?’
석훈은 제목에서부터 자신에게 어떠한 기회도 오지 않을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고, 메일 내용에는 석훈이 그동안 알아보고 찾았던 납골당 중 하나의 이름과 주소, 그리고 구역번호가 적혀있었다.
'쉼 추모공원, 경기도 성남시, E구역 36번'
메일의 내용은 겨우 저 한 줄이었다.
석훈은 저 위치가 준서가 머무는 곳임을 예상할 수 있었고, 발신 날짜가 2주 전인 것을 보며 자신에게 마지막 기회조차 주지 않은 서진이 원망스러웠다. 준서에 대한 일말의 미련이나 미안함도 없으면서 그저 석훈을 원망하는 마음에 준서에 대한 미안함을 풀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작정 그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준서가 있는 장소라도 알려준 것에 감사해야 할 따름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석훈은 연차를 내고 그곳으로 향했다.
여덟 살 아이가 좋아할 만한 간식을 사고 준서를 마주한다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추모공원을 향했다.
막상 마주한다면 어떤 마음일지, 뭘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지만, 만약 준서에게 몇 마디 입 밖으로 말을 꺼낸다면 자신을 아빠라고 지칭해야 할지, 아니면 아저씨라고 해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하지만 죽은 영혼이라도 출생의 비밀을 안다면 슬퍼할 것 같았다는 생각을 끝으로 추모공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메일에 적혀있던 E구역으로 들어가자 자신이 납골당을 알아봤을 때 홈페이지에서 본 장면이 펼쳐졌다. E구역은 이 추모공원에서 가장 비용이 비싼 곳이었고 가장 명당 자리였다.
석훈이 예상한 대로 이곳에 준서가 잠들어 있었다. 36번, 햇볕이 가장 잘 드는 높이로 준서에게 가장 평화로울 수 있는 좋은 곳 같았다.
그곳에 잠든 다른 이들과 같이 준서의 공간에는 준서를 담은 납골함과 준서의 생전 사진, 그리고 서진이 남긴 것 같은 짧은 메시지가 있었다.
석훈은 이곳에 오면서 혹시 준서의 공간만 다른 공간과 다르게 허전 하거나 초라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서진이 꽤 노력을 한 것 같았다.
사진 속에는 서진과 함께 웃고 있는 네 살 정도 되는 준서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서진의 모습도 석훈이 기억하던 그 세련된 아빠의 모습이었고, 준서도 석훈의 아이 윤서와 같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가진 행복한 아이의 모습이었다.
준서와 서준의 웃는 모습에 행복함이 묻어났다.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둘이 웃는 모습이 너무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준서의 삶에서 그래도 행복한 순간이 있었음에 석훈은 감사했다.
석훈은 이곳에 오기 전부터 준서를 마주하게 된다면 많이 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미안함과 허망함, 죄책감 등이 한꺼번에 몰아쳐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서진 덕분에 다행인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앞서서 그런지 그렇게까지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한참을 서서 준서에 대해 생각하고 추모한 후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다른 것들이 보였다.
서진이 준서에게 남긴 메시지를 읽어봤다.
'사랑하는 나의 하나뿐인 아들 준서야. 언제나 사랑스러웠던 내 아들, 아빠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이제는 편히 쉬렴. 아빠가 늘 옆에서 지켜줄게'
석훈의 마음이 메시지 내용에 동화되어 마음이 찡해졌다.
'하나도 감정이 남지 않았다더니, 애절하게도 써놨네... 이렇게 장례도 다 자기가 치를 거면서 괜히 마음에도 없는 말이나 하구...'
석훈은 서진의 메시지를 읽으면서 준서에 대한 애틋함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서진이 준서에 대해 했던 이야기는 다 마음에 없는 말이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늘 아이에게 화내고 자책하고 그리고 또 열심히 사랑하는 것의 반복인 자신의 모습과 비교해보며 서진의 모습도 자신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을 것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서진은 준서를 키우며 어떨 땐 마음에도 없이 행동했을 것이고, 또 후회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어떨 땐 한 없이, 아낌없이 사랑해주었을 것이다.
준서가 마지막에는 따뜻한 아빠의 품에서 떠날 수 있었다는 생각과 준서에게 짧게나마 좋은 아빠가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덕분에 석훈도 이제 죄책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저씨가 준서 이웃이 누군지 좀 봐야겠다!"
추모공원에 오면서 준비한 말들을 예상하지 못한 전개로 하지 못한 석훈이 괜히 한 번 소리 내어 준서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준서의 공간 주변을 살폈다.
아랫집에는 열 다섯 살 미소가 예쁜 소녀가 잠들어 있었고, 4년 전쯤에 이곳에 온 것 같았다.
"아이고 이 누나는 왜 이리 일찍 갔니... 주연이 누나야, 우리 준서랑 친하게 지내줘!"
윗집에는 천수를 누리신 인자하신 할아버지였다. 10년 전쯤 돌아가셨고, 생전에 다복하셨는지, 자식들이 쓴 메시지가 여러 개 붙어있었다.
'아버지 그동안 사랑했고, 존경했습니다.'
"아이고 김만수 할아버지 자녀들 참 잘 두셨어요. 우리 준서 잘 부탁드립니다."
석훈은 계속해서 주변을 살폈다. 준서의 영혼이 머물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더 준서를 느끼고 싶었다.
준서의 왼쪽 공간은 비어있었고, 오른쪽에는 일주일 전쯤 돌아가신 분이 계셨다.
‘2020년 8월 10일 卒’
외롭게 살다가 혼자 가셨는지, 다른 망자처럼 사진이나 메시지 등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랬기에 돌아가신 날짜가 더 선명하게 읽혔다.
"아이고 준서야, 너보다 조금 늦게 오신 분이네. 이 정도면 거의 동기다 동기. 같이 잘 지내면 되겠다. 그런데 나이가... 마흔 네 살이시네. 아이고 젊으시다. 한창 나이인데...”
인생에서 가장 밝게 빛날 40대 나이로 준서와 비슷한 시기에 돌아가신 그분에 대한 안타까움을 석훈이 느낄 무렵, 시선은 망자의 이름에 머물렀고 석훈은 더 이상 준서에게 그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