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쉼 추모공원, E구역

IV. 2020년 8월 12일

by 제이케이

석훈은 서진의 연락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서진으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준서에 대한 수사 마무리가 오래 걸려 연락이 늦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석훈은 그가 가질 수 있는 부담에 반드시 연락을 하리라고 믿었고,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인근에 있는 좋은 납골당을 알아보며 준서를 맞이할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아내 진경에게는 평생 말할 수 없겠지만, 기일이나 생각날 때면 찾아가기 편한 인근 지역으로 준서가 쉴 곳을 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위치와 시설이 적당한 납골당을 골라 일일이 전화를 해가며 비용과 절차 등 이것저것을 알아보던 차에, 자신이 준서를 위해 결정한 사항들을 서진에게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준서를 머물게 할 겁니다.’ 정도의 내용을 메일에 담아 서진에게 보낼 계획이었지만, 사실 답이 올 때가 된 것 같은데도 오지 않아 한 번 더 자신에게 준서를 보낼 기회를 달라고 독촉하려는 의도였다.


서진을 만난 지 몇 주 정도가 지난 무렵이었다.


석훈은 서진에게 메일을 보내기 위해 서진과 주고받던 메일 계정으로 다시 로그인을 했다.


‘안 읽은 메일 139통’


메일 보내는 게 급한 것도 아닌지라 먼저 가득 쌓인 스팸메일들을 지우려고 메일 수신함을 열었더니, 발신자 ‘이서진’이 보낸 '위치'라는 제목의 메일이 보였다.


‘이건 뭐야, 언제 보냈지?’


석훈은 제목에서부터 자신에게 어떠한 기회도 오지 않을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고, 메일 내용에는 석훈이 그동안 알아보고 찾았던 납골당 중 하나의 이름과 주소, 그리고 구역번호가 적혀있었다.


'쉼 추모공원, 경기도 성남시, E구역 36번'


메일의 내용은 겨우 저 한 줄이었다.


석훈은 저 위치가 준서가 머무는 곳임을 예상할 수 있었고, 발신 날짜가 2주 전인 것을 보며 자신에게 마지막 기회조차 주지 않은 서진이 원망스러웠다. 준서에 대한 일말의 미련이나 미안함도 없으면서 그저 석훈을 원망하는 마음에 준서에 대한 미안함을 풀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작정 그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준서가 있는 장소라도 알려준 것에 감사해야 할 따름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석훈은 연차를 내고 그곳으로 향했다.


여덟 살 아이가 좋아할 만한 간식을 사고 준서를 마주한다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추모공원을 향했다.


막상 마주한다면 어떤 마음일지, 뭘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지만, 만약 준서에게 몇 마디 입 밖으로 말을 꺼낸다면 자신을 아빠라고 지칭해야 할지, 아니면 아저씨라고 해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하지만 죽은 영혼이라도 출생의 비밀을 안다면 슬퍼할 것 같았다는 생각을 끝으로 추모공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메일에 적혀있던 E구역으로 들어가자 자신이 납골당을 알아봤을 때 홈페이지에서 본 장면이 펼쳐졌다. E구역은 이 추모공원에서 가장 비용이 비싼 곳이었고 가장 명당 자리였다.


석훈이 예상한 대로 이곳에 준서가 잠들어 있었다. 36번, 햇볕이 가장 잘 드는 높이로 준서에게 가장 평화로울 수 있는 좋은 곳 같았다.


그곳에 잠든 다른 이들과 같이 준서의 공간에는 준서를 담은 납골함과 준서의 생전 사진, 그리고 서진이 남긴 것 같은 짧은 메시지가 있었다.


석훈은 이곳에 오면서 혹시 준서의 공간만 다른 공간과 다르게 허전 하거나 초라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서진이 꽤 노력을 한 것 같았다.


사진 속에는 서진과 함께 웃고 있는 네 살 정도 되는 준서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서진의 모습도 석훈이 기억하던 그 세련된 아빠의 모습이었고, 준서도 석훈의 아이 윤서와 같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가진 행복한 아이의 모습이었다.


준서와 서준의 웃는 모습에 행복함이 묻어났다.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둘이 웃는 모습이 너무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준서의 삶에서 그래도 행복한 순간이 있었음에 석훈은 감사했다.


석훈은 이곳에 오기 전부터 준서를 마주하게 된다면 많이 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미안함과 허망함, 죄책감 등이 한꺼번에 몰아쳐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서진 덕분에 다행인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앞서서 그런지 그렇게까지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한참을 서서 준서에 대해 생각하고 추모한 후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다른 것들이 보였다.


서진이 준서에게 남긴 메시지를 읽어봤다.


'사랑하는 나의 하나뿐인 아들 준서야. 언제나 사랑스러웠던 내 아들, 아빠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이제는 편히 쉬렴. 아빠가 늘 옆에서 지켜줄게'


석훈의 마음이 메시지 내용에 동화되어 마음이 찡해졌다.


'하나도 감정이 남지 않았다더니, 애절하게도 써놨네... 이렇게 장례도 다 자기가 치를 거면서 괜히 마음에도 없는 말이나 하구...'


석훈은 서진의 메시지를 읽으면서 준서에 대한 애틋함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서진이 준서에 대해 했던 이야기는 다 마음에 없는 말이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늘 아이에게 화내고 자책하고 그리고 또 열심히 사랑하는 것의 반복인 자신의 모습과 비교해보며 서진의 모습도 자신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을 것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서진은 준서를 키우며 어떨 땐 마음에도 없이 행동했을 것이고, 또 후회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어떨 땐 한 없이, 아낌없이 사랑해주었을 것이다.


준서가 마지막에는 따뜻한 아빠의 품에서 떠날 수 있었다는 생각과 준서에게 짧게나마 좋은 아빠가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덕분에 석훈도 이제 죄책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저씨가 준서 이웃이 누군지 좀 봐야겠다!"


추모공원에 오면서 준비한 말들을 예상하지 못한 전개로 하지 못한 석훈이 괜히 한 번 소리 내어 준서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준서의 공간 주변을 살폈다.


아랫집에는 열 다섯 살 미소가 예쁜 소녀가 잠들어 있었고, 4년 전쯤에 이곳에 온 것 같았다.


"아이고 이 누나는 왜 이리 일찍 갔니... 주연이 누나야, 우리 준서랑 친하게 지내줘!"


윗집에는 천수를 누리신 인자하신 할아버지였다. 10년 전쯤 돌아가셨고, 생전에 다복하셨는지, 자식들이 쓴 메시지가 여러 개 붙어있었다.


'아버지 그동안 사랑했고, 존경했습니다.'


"아이고 김만수 할아버지 자녀들 참 잘 두셨어요. 우리 준서 잘 부탁드립니다."


석훈은 계속해서 주변을 살폈다. 준서의 영혼이 머물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더 준서를 느끼고 싶었다.


준서의 왼쪽 공간은 비어있었고, 오른쪽에는 일주일 전쯤 돌아가신 분이 계셨다.


‘2020년 8월 10일 卒’


외롭게 살다가 혼자 가셨는지, 다른 망자처럼 사진이나 메시지 등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랬기에 돌아가신 날짜가 더 선명하게 읽혔다.


"아이고 준서야, 너보다 조금 늦게 오신 분이네. 이 정도면 거의 동기다 동기. 같이 잘 지내면 되겠다. 그런데 나이가... 마흔 네 살이시네. 아이고 젊으시다. 한창 나이인데...”


인생에서 가장 밝게 빛날 40대 나이로 준서와 비슷한 시기에 돌아가신 그분에 대한 안타까움을 석훈이 느낄 무렵, 시선은 망자의 이름에 머물렀고 석훈은 더 이상 준서에게 그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없었다.


‘1977년 2 월 8일 生, 2020년 8월 10일 卒, 이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