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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Mar 04. 2023

이제 카르멘을 비교할 시간입니다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금메달 연기 (1)

‘이제 카르멘을 비교할 시간입니다. It’s time to compare Carmen.’
(데비 토마스의 경기가 시작되기 전, 해설자의 멘트)    


88년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싱글의 우승 후보는 단연 독일(구 동독)의 카타리나 비트였고, 그의 가장 큰 라이벌 미국의 데비 토마스가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 모두 가장 중요한 올림픽 프리스케이팅의 음악으로 같은 작품을 선정했으니, 그것이 바로 오페라 카르멘이다.     

 



카타리나 비트 <카르멘> 


 

 카르멘은 그 드라마틱함으로 인해 무수한 선수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그중 카타리나 비트의 이 카르멘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은 찾기 힘들다. 비트는 그 누구보다도 카르멘의 팜므파탈적인 이미지를 완벽하게 구현했다. 종소리와 함께 음악이 시작되자 천천히 뒤를 돌아볼 때의 저 카리스마와 관능이 넘치는 눈빛을 보라. 

 그리고 프로그램 중반, 저 유명한 하바네라가 등장하면서 펼쳐지는 안무는 카르멘의 춤을 실제로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아름답다. 누가 뭐래도 피겨스케이팅은 예술적인 스포츠다. 음악과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비트의 춤은 왜 그가 그날의 주인공인지, 나아가 왜 여태까지도 회자되는 전설적인 선수인지 깨닫게 해 준다. 빙판에 쓰러지는 안무로 끝나는 결말도 신선하다. 관객들은 은반 위에 쓰러진 선수를 보며 호세의 칼에 찔려 죽은 카르멘을 연상했을 것이다. 

 심판들의 점수를 보자면, 6.0 만점 체제에서 역시나 기술점수는 5.7과 5.8을 오가는 데 비해 예술점수는 만점에 가까운 5.9 일색인 것을 알 수 있다. 그 와중에 경쟁자인 데비 토마스와 같이 미국인인 심판은 5.8을 준 것도 눈에 띈다.     


데비 토마스 <카르멘>



 초반부의 음악 편집이 카타리나 비트의 것과 동일하다는 것이 흥미롭다. 데비 토마스는 비트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강점인 기술적인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내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클린(피겨스케이팅에서 실수가 전혀 없는 완벽한 연기를 이르는 말)에 가까운 경기를 해야 했다.

영상을 보면 첫 점프에서부터 비트보다 스피드와 높이가 우월하다는 사실이 느껴진다. 그리고 후반부의 힘이 넘치는 스트레이트 스텝은 관객들의 박수가 절로 터져나올 정도로 멋지다. 그러나 아쉽게도 후속 점프에서 너무 잔실수가 많다. 결국 원래 5.8은 되어야 할 기술점수가 5.7 이하를 밑돌았다.

 그의 프리스케이팅을 잘 보면, 중반의 연기에 치중한 부분은 비트와 달리 강렬하기보다는 서정적인 음악을 채택했는데, 토마스의 연기가 결코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비트의 것에 비교하면 더욱 유연하고 부드러울 필요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로써 카르멘의 전쟁은 카타리나 비트의 승리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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