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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Mar 04. 2023

민음사 한국산문선 세트 구입 후기

삼국시대 원효에서 20세기 정인보까지 1300년간 각 시대 문장가들이 펼쳐 낸 찬란한 우리 옛글 600편    
 

이라는 출판사의 광고 문구만 보아도 대단히 양질의 선집이라는 게 예견되어 몹시 탐이 났다. 참지 못하고 덜컥 전권을 사버렸다.  

 


 세트 전용(?)으로 만들어진 상자만 봐도 고급스러움이 느껴진다. 각기 다른 색깔의 전권이 나란히 담겨있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  

   

 1권을 꺼내어 보았다. 하드커버의 견고함이 책의 가치를 더해준다. 그렇다, 이 정도의 내용을 담을 책이라면 무조건 하드커버를 써야 한다.      

        


 책을 펼쳐 내지를 살펴보자. 질 좋은 종이에 정갈한 표제 디자인이 돋보인다. 그리고 본문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꼴로 쓰여 있다! 역시 구매하길 잘했다. 책의 외형도 중요시하는 내게 이런 아름다운 책은 일종의 예술품과도 같다.         


 1권은 삼국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우리 고전 산문을 수록하고 있다. 읽어보았더니 고등학생 시절 문학 시간에 배운 친숙한 글도 몇 편 있지만 처음 보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특이한 것은 기문, 즉 절이나 정자 등의 건물을 짓고 남긴 글이 많다는 점인데, 이제까지 잘 접해보지 못했던 글들이어서 생소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글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아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생각보다 높은 듯 했다.     


 수록된 작품들은 대부분 격조 높고 품위 있는 글들이다. 글에서 풍겨 나오는 고색창연한 느낌이 너무 좋다. 고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품격이랄까. 한편 고전인 만큼 현대의 글처럼 줄줄이 읽어내리기는 어렵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2주간 빌려서는 제대로 문장을 음미하지 못할 듯하다. 빨리 읽어내려 욕심부리지 말고 천천히 단어와 문장을 곱씹으면서 읽어야 작품의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다행히 1권은 한 작품의 길이가 두세 장 정도로 그다지 길지 않지만, 조선 후기나 근현대로 가면 호흡이 긴 글을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어떤 작품이 있는지 미리 알기 싫어서 들춰보지 않았다).     


 글의 말미에는 역자 선생님들의 짧은(정말이다) 해설이 곁들여져 있어 독자의 이해를 도운다. 아무리 열심히 본문을 읽어도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다 싶은 글도 선생님들의 간결하지만 명쾌한 설명으로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1권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글의 저자는 이규보와 이제현이었다. 이규보는 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형식의 글을 썼고 이제현은 당대의 유학자이자 문장가로서 아주 고상한 글을 썼으므로,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다. 이규보의 작품은 창의성을, 이제현의 것은 유려함을 본받고 싶은 마음이 든다(항상 어떤 대척점에 서 있는 두 가지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이 여기서도 드러나는군).


 끝으로 이런 좋은 선집을 출판해주신 민음사와 몇 년에 걸쳐 번역에 힘써주신 교수님, 학자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훌륭한 우리 고전 산문을 이렇게 정결한 현대 우리말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독자의 큰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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