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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Mar 05. 2023

트리플 악셀과 토털 패키지의 대결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금메달 연기 (2)

크리스티 야마구치

 야마구치(미국)의 프로그램은 지금 봐도 굉장히 화려하다. 음악은 쿠바의 음악가 에르네스토 레쿠오나의 Malagueña(말라게냐). 1편에서 소개된 카르멘만큼은 아니지만 이 곡 역시 피겨스케이팅 경기에서 자주 들을 수 있다.


 이 정열적인 음악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마다 가장 멋있는 기술을 배치한 안무가 인상적이다. 특히나 영상에서 1분 40초부터 2분 사이에 등장하는, 금관의 포효를 배경으로 한 스파이럴과 플라잉 싯스핀은 대단히 멋지다. 선수는 경기 내내 엄청난 힘과 스피드를 자랑한다.


 야마구치의 최대 라이벌은 트리플 악셀을 내세운 일본의 이토 미도리였다. 여자 선수가 트리플 악셀을 뛴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일인데, 이토의 것은 남자선수의 그것과 비견될 만큼 압도적인 파워와 높이를 자랑했다. 이토가 트리플 악셀을 실수 없이 해낸다면 기술점에서 그를 이기기는 힘들 것이었다.


 대신 야마구치는 항상 이토보다 예술점에서 우위에 있었고 기술적 측면에서도 매우 뛰어난 선수였다. 트리플 악셀에 대항하는 그의 최고 점프는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 (김연아 선수의 특기이기도 했던 점프)이었다. 그 시절에 3-3 콤보를 뛸 수 있는 여자선수가 거의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야마구치 역시 대단한 테크니션이었다.


 하지만 그는 영상에서도 볼 수 있듯 가장 중요한 올림픽에서 점프 착지를 하다 손을 짚는 꽤 큰 실수를 범한다. 후속 점프도 트리플이 아닌 더블로 처리해버린다. 그런데 의외로 연기를 마친 그의 표정은 아주 밝다. 어쩌면 올림픽이 드디어 끝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순수하게 기뻤던 것이 아닐까?         



이토 미도리

 라흐마니노프다. 역시 수없이 많은 선수가 택했던 그 마성의 곡이다. 음악처럼 미도리의 프로그램도 무척 화려하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부분을 잘라서 이어붙인 건 알겠는데, 편집이 그다지 자연스럽지 못하단 느낌이다.


 이토는 커리어 내내 압도적인 기술과 달리 표현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알베르빌은 그의 두 번째 올림픽이었고 이번에도 그는 경쟁자인 야마구치에 비해 예술점수에서 뒤질 가능성이 높았다. 이기기 위해서 그는 자신을 상징하는 기술인 트리플 악셀을 완벽하게 해내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이 경기는 연기 도중에 선수의 감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다. 초반에 트리플 악셀을 뛰다가 크게 넘어지는데, 다행히 후반부에 다다라 다시 시도한 트리플 악셀은 완벽하게 성공한다. 체력이 떨어진 프로그램 후반에 이렇게 큰 기술에 성공하는 건 매우 대단한 일이다. 선수 본인도 착지하자마자 기쁨을 감추지 못해 커다랗게 웃음 짓더니, 그 후로는 마치 날아다니는 듯이 가벼운 스텝으로 빙판을 누빈다.


 결과는 야마구치의 승리였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토보다는 야마구치가 점프를 제외한 요소에서도 골고루 완성도가 높은, 흔히들 얘기하는 토털 패키지였다고 생각하는데, 심판들도 비슷한 평가를 했던 게 아닐까 한다. 그러나 이토의 트리플 악셀이 여자 싱글 역사상 최고라는 사실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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