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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Sep 19. 2023

행복 터지는 콘서트 후기 첫번째

인천행 이야기

 브런치에 세 번째로 콘서트 후기를 올리게 되었다. 전에 엔시티127과 보아의 공연을 다녀와서 감상문을 썼고, 이번엔 지난 8월 말에 있었던 (또 다른) 엔시티의 콘서트를 보고 온 소감을 쓰려고 한다.

    

 지방러인 내게 콘서트 관람이란 장거리 여행을 필수적으로 동반하는 일이므로 다녀올 때마다 많은 얘깃거리가 생기는데, 이번 공연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에 콘서트 후기 겸 여행기를 3부작(어쩌면 4부작이 될지도...) 정도로 나누어 올려보겠다.

    

낯섦 그 잡채, 인천행

     

 콘서트 장소가 인천문학경기장 주경기장으로 정해지자 고민이 시작되었다. 울산에서 인천까지 어떻게 가고 어떻게 돌아올 것인가?

      

 우선 가는 길. KTX를 타고 광명역으로 가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광명에서 인천까지 어떻게 갈지가 문제였다.  네이버 지도에서 검색해보니 광명역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인천에서 시내버스로 갈아타라고 되어 있었다. 초행길이라 시간 안에 맞는 버스를 잘 골라 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서울역을 경유해서 인천에 가는 길은 그보다 더 멀었고, 직접 운전해서 가는 건 엄두가 안 났다.

      

 오는 길은 더 어려웠다. 공연이 완전히 끝나려면 밤 10시는 되어야 하는데 그 시각 이후에 있는 KTX는 단 하나, 그것도 10시 40분경의 열차뿐이었다. 대중교통으로 40분 만에 문학에서 광명까지 갈 수 없는 것은 자명했고, 남아있는 옵션은 택시뿐이었다. 그러나 콘서트가 끝난 경기장 앞에서 택시를 잡기란 불가능할 것이 뻔했다.

     

 아이 엄마로서 가능한 한 외박을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봤으나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앵콜을 포기하고 공연장을 미리 나와서 막차 시간에 맞추기로 했다. 앵콜 떄 멤버들의 진솔한 멘트가 이어지며(때로는 눈물도 흘리고) 축제 분위기가 된다는 것을 알기에, 많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직장에서 이 얘기를 꺼내자 동료가 무심하게 툭 한마디 던지는 것이었다.

“그냥 자고 와요.”

 그녀는 나와 같은 워킹맘이었다. 그 한마디를 듣고 나는 다시 갈등에 휩싸였다. 솔직히 앵콜을 놓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긴 했다. 이렇게 먼 길을 가서 멤버들이 퇴장하는 모습까지 보고 오지 않는다는 건 손해이기도 했다. 결국 콘서트 바로 전날, 극적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남은 일은 공연장 근처의 괜찮은 숙박업소를 찾아 예약하는 것이었다.

     

 콘서트 다음날은 일요일, 어차피 남편이 아이를 전담해주기로 한 이상 집에 복귀하는 시기를 여유롭게 잡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날엔 또 다른 중요 스케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시아버님의 생신 잔치였다.

     

 여러 사정상 식당 예약을 11시 30분이라는 이른 시각에 해두었으므로, 나는 전날 인천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최소한 9시 30분까지는 집에 도착해야 했다. 그래야 다시 여러 준비를 한 후 해운대에 있는 식당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 거였다.

    

 그렇다면 콘서트 다음날 아침 무엇을 타야 이 일정에 맞출 수 있을 것인가. 계산한 끝에 인천에서 광명까지 택시를 타고, 광명에서 울산까지 새벽 기차를 타기로 정했다. 아마 택시비가 3만원 가까이 나올 것이 틀림없었다.

     

 장소가 인천이니만큼 차라리 비행기를 타고 내려올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럼 난 콘서트 보러 비행기까지 탄 여자라며 어디 가서 자랑은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표 값이 훨씬 비싼데다 복잡한 탑승 절차를 밟기가 번거로워 그 방법은 포기했다.


KTX 빌런

         

 교통수단을 정한 후에는 짐을 꾸렸다. 가장 중요한 믐뭔봄(엔시티의 응원봉)을 가장 먼저 가방에 넣고, 망원경을 챙겼다. 거기에 보조배터리와 휴대용 선풍기, 기차에서 읽을 책 한 권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당일 예상외로 준비가 늦어지는 바람에 미처 보조배터리와 손선풍기를 충전하지 못한 채로 열차에 타야 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열차의 내 좌석 바로 옆에 충전 단자가 무려 3개나 있었다. 그것도 유에스비용 2개, 콘센트 1개라는 안성맞춤의 구성이었다. 남편과 아이에게 걸려 올 전화와 야외 경기장의 떙볕이 걱정되었던 나는 속으로 환성을 질렀다.

     

 그런데 세 군데에다 모두 내 기기를 연결해두고 보니 뭔가 좀 부끄러웠다. 인터넷에 KTX 진상이라며 올라올 듯한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좀 너무한가 싶었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게 먼저였으므로 이번만은 눈을 질끈 감고 얼굴에 철판을 깔아보기로 했다. 대신 완충이 되자마자 바로 선을 모조리 뽑았다. 그날 한국철도공사에 부과될 전기요금의 백만 분의 일 정도는 내 사용량일 것 같아서 머쓱했다.

    

아마도 인천


 광명과 인천 모두 난생처음 가는 곳이어서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마음이 설렜다. 지난번의 두 콘서트는 모두 서울이었으므로 이번 원정은 완전히 새로운 길이었다. 너무 들떠서인지 가져간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과 기대감에 싸여 두 시간을 보내고 나니 열차가 곧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광명역은 이제까지 가 본 어떤 기차역과도 달랐다. 승강장은 크고 넓고 쾌적했으며, 역사는 청결하고 세련돼 보였고 로비는 세로로 길쭉하게 뻗어 있었다. 나는 이 생경한 모습을 최대한 눈에 담는 동시에 인천행 광역버스를 타기 위해 바삐 걸음을 옮겼다.

    

 역 바깥으로 나가니 바로 앞에 버스정류장이 연이어 있었고 그중 한 정류장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여기가 바로 내가 탈 버스가 오는 곳이라는 직감이 들어 얼른 줄의 맨 끝에 자리를 잡고 섰다.

      

 정류장 표지판에도 버스 번호가 쓰여있긴 했지만 그래도 처음 와보는 곳이고 방향이 맞는 쪽에 섰는지도 확실치 않아서, 나는 바로 앞에 있는 분에게 물어 확인하기로 마음먹었다.      

“저기요, 여기가 3001번 오는 데 맞아요?”

내 물음에 앞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가씨였다.

“아마도요.”

그녀는 아주 애매한 태도로 애매하게 대답했다. 거기에 만족할 수 없었던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럼 그걸 타면 인천에 갈 수 있죠?”

아가씨는 아까와 같은 두루뭉술한 어조로 말했다.

“아마도요.”

아무래도 그녀도 나처럼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원하던 3001번 버스가 무사히 도착해 승객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약간 긴장한 상태로 버스에 올라타며 카드를 기계에 갖다 대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카드가 인식되지 않았다. 뒤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줄줄이 서 있었고 나는 뒤통수가 급격히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몹시 당황해서 말도 더듬었다.

“엇, 왜, 왜 안 되지.. 잠시만요, 죄송해요..”

 잠깐 자리를 비켜 다시 카드를 찍으니, 다행히 삑 소리가 나며 기계에 불이 들어왔다. 찰나가 영원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무사히 버스를 탔다는 안도감에 휩싸여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곧 버스는 승객들로 가득 찼다. 둘러보니 대부분 인천으로 가는 대학생들 같았다. 처음 방문한 도시의 풍경을 보고 싶어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유리창의 반 이상이 진하게 선팅되어 있어 밖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오십 분 정도를 달리니 인천의 한 버스정류장에 내릴 시간이 되었다. 거기서 꽤 걸어서 또 다른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로 갈아탄 후, 두 정거장을 지나니 드디어 문학경기장 입구가 보였다. 도로는 이미 승용차와 택시들로 포화상태였고, 교통경찰까지 동원되어 연신 호루라기를 불며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버스 기사님은 그 난리통을 뚫고 솜씨 좋게 정류장에 정차했다.

    

문학 입성


 경기장 입구를 지나자, 보이는 모든 곳이 사람이었다. 여기도 시즈니(팬클럽 이름), 저기도 시즈니였다. 공연장으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각양각색의 아이템으로 꾸민 가지각색의 팬들 사이로 형광연두색 믐뭔봄이 화려한 자태를 뽐냈다.

      

 작년 콘서트와 다른 점이라면 외국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중국어와 영어가 들렸고 거의 모든 인종과 민족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공연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든 선봉장 뒤로 수십 명의 외국인이 일사불란하게 줄을 서서 지나갔는데, 엔시티 콘서트를 목표로 한 투어 상품으로 보였다. 나는 이 모든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인파를 뚫고 공연장 입구로 향했다.

     

 내 자리는 3층 10열이었다. 이 거대한 경기장에서 3층이라니, 2층도 아니고 3층이라니. 망원경을 쓴다 해도 애들이 보이기나 할 지 의문이었다. 나는 스스로의 형편없는 티켓팅 실력을 탓하며 위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3층은 어쩜 그리 높은지 올라도올라도 끝이 없었다.

    

 등산 도중 바깥을 바라보니 야구장, 즉 SSG랜더스필드가 꽤 가깝게 눈에 들어왔다. 2만이 넘는 좌석의 대형경기장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자니 문득 야구 경기 직관을 가고 싶어졌다. 야구팬인 내가 다른 목적으로 먼저 문학에 발을 들이다니. 역시 세상 일은 모를 일이었다.

     

 한참을 등반한 끝에 드디어 주경기장 내부에 입성해 자리를 찾았지만, 날 반긴 것은 상상 이상으로 좁은 통로와 불편한 의자였다. 잠실보다 더 좁을 줄은 정말 몰랐다. 앉아서 무릎도 펴지 못할 정도였다. 경사는 어찌나 급한지 발을 조금만 뻗어도 앞사람 뒤통수를 가격할 것 같았고, 두려움이 일 정도의 높이 때문에 아무도 서서 관람할 시도 같은 건 하지 않을 듯했다.

     

 거기다 가방을 내려놓지도 못할 만큼 바닥에는 모래와 먼지가 수북했다. 실수로 한 번만 발을 탕 굴러도 옆자리 앞자리까지 모래바람이 일 정도였다. 나는 커다란 가방을 무릎 위에 얹으면서, 이래서야 4시간 내내 앉아서 콘서트를 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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