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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Jul 30. 2023

그룹 신화의 성공적인 셀프 리메이크

<All Your Dreams(2018)> 리뷰

대중가요계에서 리메이크란 대개 양날의 검과 같은 방식이다. 원곡의 유명세 덕분에 대중적인 인지도를 쉽게 획득할 수 있는 반면, 아무리 편곡에 심혈을 기울여도 원곡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보다는 팬덤을 위한, 처음부터 끝까지 팬덤의 기호에 맞춘 리메이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아티스트의 충성스러운 팬은 원곡을 충분히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변신하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신화의 <All Your Dreams> 리메이크는 성공적이다. 신화는 2018년, 데뷔 20주년을 맞아 2000년에 발표한 본인들의 노래 All Your Dreams를 리메이크했는데, 팬들이 좋아하는 곡이라서 골랐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리메이크가 호평받은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뮤직비디오가 18년 전의 그것과 ‘똑같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모든 씬이 2000년의 뮤비와 동일한 구도와 배경, 동작으로 촬영되었다. 달라진 곳은 화면의 색감과 세월이 흘러 변한 패션과 소품, 그리고 소년티가 완전히 사라진 멤버들의 외양 뿐이다.   

   

특히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밀크 출신의 김보미와, 그녀를 괴롭히는 조폭으로 등장한 블랙비트 출신의 장진영이라는 주요 배우(?)까지 흔쾌히 다시 출연해줌으로써 이 리메이크는 화룡점정을 이루었다. 심지어 둘 다 옛날과 비교해서 별로 나이 들어 보이지도 않는다.     


이 두 사람의 출연은 상당히 의리있는 행동으로,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소소한 화제가 되었다. 셋 다 한때 SM에 몸담았지만 지금은 다 소속사가 다르고, 신화는 심지어 SM과 꽤 좋지 않게 이별했던 팀이기 때문이다. 계약과 관련한 골치 아픈 분쟁에도 불구하고 개개인 사이의 감정은 여전히 나쁘지 않음을 알 수 있는 사건이었다.     


신화가 무려 20주년 리메이크로 선택한 곡이 SM 시절에 발표했던 All Your Dreams라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그들은 소속사를 바꾼 후에 낸 <Brand New>가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을 타자, SM을 나와서도 잘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 같아 가장 기뻤다고 말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럼 출시 비화는 이쯤에서 접어두고,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단적으로 말해서 2018년의 All Your Dreams는 내가 들었던 모든 아이돌 리메이크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원곡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 드문 사례다.     


일등공신은 무엇보다 일렉트릭 기타다. 원곡에도 기타 사운드가 등장하긴 하지만 주로 베이스 리듬만을 담당했다면, 리메이크 작에서는 시종일관 매우 중요한 라인을 맡아 마치 씬 스틸러 같은 존재감을 뽐낸다.


이 노래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클래식 선율, 즉 바흐의 인벤션을 샘플링했다는 점인데, 이 선율이 끝나고 바로 비트와 함께 기타 리프가 치고 들어온다. 평소에 악기 중에서 가장 ‘멋있는’ 소리를 가진 것이 일렉 기타라고 여긴 내 생각을 증명하는 듯한 소리다.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대체로 좀 둔중한 느낌이 들었던 원곡에 비해 한결 무게감이 덜해진 편곡도 좋다. 덜어낼 건 덜어내고 강조할 부분은 제대로 강조해서, 락적인 요소와 댄스곡으로서의 요소가 잘 어우러지는 것 같다.     


신혜성(이제는 더 이상 그의 신곡을 들을 일이 없을 것 같지만)과 김동완의 가창력 또한 여전히 훌륭하다. 시원한 신혜성의 고음과 그 아래로 에릭의 무심한 듯 시크한 랩이 깔리는 파트는 단연 이 노래의 키 포인트라 할 만하다.      


다른 멤버들 또한 옛날보다 진일보한 실력으로 서브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이민우와 전진은 퍼포먼스의 중심으로 여전히 화려한 춤을 보여준다. 김동완이 성대가 찢어질 듯 질러대는 SM 댄스곡 특유의 괴상한 샤우팅은 그 시절에 대한 추억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멋있는 노래에 심각한 줄거리임에도 뮤비를 볼 때 느껴지는 이 약간의 개그스러움은 무엇일까. 멤버들 모두 진지하게 연기에 임하고 있지만 그게 오히려 웃음 포인트라는 게 아이러니하다. 아마 워낙 세기말 감성이 진한 데다가 지나치게 비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에 나비잠 리뷰를 쓸 때 뮤비가 너무 웃기다고 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가 옛날식의 대결 구도 – 주인공과 사랑하는 여자, 그리고 둘을 방해하는 깡패들 – 가 차용되어서였다.      


신화의 뮤비 또한 이 전형적인 삼각관계가 등장하는 데다 깡패와의 결투, 거기서 피 터지게 얻어맞는 주인공, 그를 부여잡고 울부짖는 친구까지 클리셰의 모든 요소가 들어가 있다. 2023년에 그런 장면들을 보니 웃음이 나올 밖에.     


게다가 신화 멤버들이 워낙 예능감이 뛰어나고 재밌기로 유명한지라, 그런 이미지를 알고 비장한 연기를 보니 적응이 안 된다. 심지어 깡패 역의 장진영도 한 예능에서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엄청 웃었던 기억이 있어서 더 그렇다.     


어쩌면 원곡과 리메이크의 가장 큰 차이는 그것일지도 모르겠다. 멋있는 모습만 보여주려 하던 데뷔 초창기의 신화와, 온갖 개그를 서슴치 않던 최장수 아이돌로서의 신화 사이의 갭 말이다. 두 이미지에 다 익숙한 세대인 내게는 그 간극이 아주 크게 느껴진다.


이렇게 두 상반된 매력이 다 있는 것이 신화라는 그룹의 장점이기도 했다. 몇 개월 전의 그 치명적인 사건으로 인해 더 이상은 완전체인 그들을 보기 힘들 것이라는 사실이 참 씁쓸하다. 그가 팀에서 가장 노래를 잘하는 멤버였다는 것도 말이다.      


그러나 아이돌 역사에서 한 축을 담당했던 신화였기에, 그들의 음악을 때때로 추억하는 일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다. 나 자신이 열렬한 팬이었던 적은 없지만 주위에 신화창조가 정말 많았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대표곡을 즐겨 들었던 사람으로서 그리운 마음을 담아 이렇게 글로 또 음악으로 그들을 소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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