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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Sep 21. 2023

행복 터지는 콘서트 후기, 세 번째

본공연의 열기

(이전 편에서 이어짐)

     

대통합의 장

     

 수 달을 기다려 온 콘서트, 그 대망의 첫 곡은 <일곱 번째 감각>이었다. 노래와 랩, 춤 모두 아주 어렵기로 유명하지만 그 난해함으로 인해 오히려 많은 팬에게 사랑받는 곡이다.

     

 일곱 번째 감각을 두 눈으로 직접 보다니. 나는 감격에 겨워 얼른 망원경을 눈에 갖다 댔다. 메인 스테이지는 너무 멀어서 아쉽게도 표정까지 보이진 않았지만, 안무는 생생하게 보였다. 렌즈 안에서 춤추는 저 청년들이 정말 내가 좋아하는 그 엔시티란 말인가? 여전히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던 나는 맨눈으로 무대를 쳐다봤다가, 다시 망원경을 들어 올렸다가를 반복했다.

      

 보면 볼수록 신기했다. 저들이 스마트폰으로만 볼 수 있는 가상의 존재가 아니라 정말로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구나. 나처럼 팔도 있고 다리도 있고 땀도 흘리는구나. 지방에 살아 연예인의 실물을 거의 본 적이 없는 나는 그들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첫 곡이 끝난 후엔 각 유닛의 무대가 차례로 이어졌다. 제일 먼저 엔시티127이 메인 유닛의 위엄을 뽐냈고, 웨이브이와 드림의 무대가 쉬지 않고 이어졌다. 관중석 분위기는 축제 그 자체였다.

     

 엔시티는 평소에는 세 유닛이 아예 다른 팀으로 별개의 음반을 내고 활동도 따로 하기 때문에, 팬덤도 엄격하게 나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번 콘서트에서만큼은 유닛을 가리지 않고 열렬히 응원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평소엔 자기 팀만 좋아하던 열혈 팬들도 그날만큼은 모든 곡에 함성을 지르며 떼창을 했다. 나는 내 뒤에 있던 한 무리의 드림 팬들이 127의 노래에 단 한 번도 틀리지 않고 응원법을 외치는 걸 듣고 깜짝 놀랐다. 그야말로 엔시티 대통합의 현장이었다.

     

 콘서트가 끝난 후 커뮤니티에 올라온 소감에도 같은 그룹의 팬으로서 일체감과 소속감을 느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어떤 이는 ‘거대 엔시티’ 한 명 한 명을 모두 좋아하게 되었다고 고백했고, 또 어떤 이는 단체 활동을 명절에 비유하기도 했다.

     

 팬들이 단합한 모습은 고된 여정을 감수하고 콘서트를 보러 가기로 한 내 선택을 신의 한 수로 만들어준, 즐겁고도 귀한 장면이었다. 통일된 팬덤의 일원으로서 한마음 한뜻으로 엔시티 모두를 빠짐없이 응원했던 시간이 너무나 기쁘고 즐거웠다.

         

망원경의 배신

     

 엔시티의 대표곡은 대부분 강렬한 스타일이지만 수록곡 중에는 말랑말랑하고 귀여운 댄스곡도 많다. 그런 곡들은 콘서트가 아니고서는 무대를 보기 힘들기 때문에, 기대하지 않았던 노래들이 들렸을 때 매우 반가웠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는 멤버들의 목소리는 들리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안구가 눌리도록 망원경을 눈에 붙이고 한참 동안 그들을 찾았지만 메인 무대는 한두 명을 제외하고 계속 비어 있었다. 뭔가 이상한 느낌에 망원경을 얼굴에서 떼고 두리번거려 보았더니, 글쎄 애들이 우리 구역 바로 앞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지난 글에서 언급한 바로 그 서브 스테이지, 팬들 용어로는 ‘둥둥섬’이라고 하는 작은 무대에 마크와 도영이 서 있었다. 오 마이 가쉬....너네 진짜 이리로 왔구나?!

      

 뒤늦게 그들을 발견한 나는 혼비백산해서 그쪽을 향해 렌즈를 들이댔다. 이미 근처의 모든 팬들은 시선을 온통 아래로 내리꽂고 있었고 심지어 중앙 그라운드의 사람들조차 있는 힘껏 몸을 뒤틀어 두 명을 쳐다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불과 십몇 미터 아래에 있을 뿐인데, 렌즈에 이목구비가 잡히지 않았다. 나는 탄식을 내뱉었다. 그들은 역시 아이돌이었던 것이다. 일반인보다 압도적으로 얼굴이 작았다.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키도 크고 체격이 좋은 건 알겠는데 정작 중요한 얼굴이 안 보였다. 이래서야 실물을 봤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내가 주목한 이후부터 마크는 계속 뒷모습만 보이고 있었다. 마크 너... 거기는 1층을 잡는 데 실패해 2,3층에 앉을 수밖에 없었던 중생들을 위해 만들어진 섬 아니더냐! 속으로 애타게 외쳤지만 마크는 야속하게도 뒤통수만 내리 보여줄 뿐이었다. 나는 망원경으로 메인 무대만 쳐다보느라 공연장을 두루 둘러보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 작은 물건의 배신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둥둥섬에서 멤버 해찬이 보여준 무대의 직캠이 트위터의 실시간 트렌드 란을 그야말로 도배해버린 것이다. 일명 ‘파도 해찬’이라는 제목의 영상이었다. 이런 현상을 전문용어로는 ‘실트 점령’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레전드 무대를 정작 현장에 있었던 나는 어이없이 놓쳐버렸다.

     

 공연이 끝난 후 찾아본 직캠 속에서 해찬은 독특한 음색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노래를 리드하는 동시에 신들린 듯 춤을 추고 있었다. 안무는 해찬의 스타일리시한 춤선에 찰떡같이 어울렸고, 평론가들이 이번 앨범의 순위권으로 뽑은 <PADO>의 리듬은 그의 댄싱과 혼연일체가 되어 넘실거렸다.

     

 영상을 보니 실수가 더욱 뼈아팠다. 같은 콘서트를 보고 온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그 멋진 장면을 모조리 놓친 것이다. 아오... 노래도 춤도 기가 막히게 잘하는 해찬의 무대를 직접 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얼마나 아쉬웠는지 나는 그 레전드 직캠을 두 번은 보지 못하고 닫아버렸다.

           

원치 않은 인터미션

     

 그날 엔시티는 무려 41개에 달하는 곡을 선보였는데, 그래서인지 공연이 시작된 후에도 주야장천 노래만 하다가 두 시간이 지났을 때쯤에야 멘트 타임을 가졌다.

     

 웨이브이 멤버들 모두가 팬들과 충분히 대화를 나눴으나, 이상하게도 다음 노래를 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멤버들도 갑자기 시키지도 않은 애교를 자발적으로 행하는 등(물론 팬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뭔가 시간을 때우려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관중석이 술렁였다.

      

 그때 리더 쿤이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이 소요의 원인을 밝혔다.

“여러분, 우리도 내려가고 싶은데 감독님이 무대가 고장 났으니 시간을 좀 끌어달래요.”

그의 솔직한 발언에 기겁한 동료들이 “감독님 말씀 그대로 전하면 안 돼!”라며 황급히 수습에 나섰지만, 큰 고장이 발생한 건 사실인 듯했다. 급기야 긴급 수리를 위해 모두가 무대를 비워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공연장은 삽시간에 얼음물을 들이부은 듯 조용해졌다. 팬들은 황당함에 할 말을 잃은 듯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공연 중단이라니, 말이 되는 소린가?

      

 심지어 상황을 설명한답시고 나선 관계자는 ‘일종의 인터미션이라고 생각해달라’는 뻔뻔한 발언을 해서 화를 돋다. 관중석에서 웃음이 터졌지만 너무 어이가 없어 나오는 실소일 뿐이었다.

      

 그러나 화를 낸다고 무대가 고쳐질 리는 없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물이나 마시며 좀 쉬는 것뿐이었다. 슬쩍 옆자리 눈치를 봤다. 공연이 중단되기 전까지 나와 양옆의 그녀들은 한마디도 말을 섞지 않은 채 서로 질세라 비명만 질러대고 있었다. 쉬는 시간을 틈타 이 어색한 분위기를 좀 풀 수 있을지 궁금했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래도 미국 팬은 영어가 유창하지 못한 나와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어 보였고, 한국 팬은 SNS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좀 시무룩해져서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렸다. 트위터에 들어가 보니 ‘무대 고장’, ‘콘서트 중단’이라는 암울한 단어들만 잔뜩 떠 있었다.

     

 무려 40분을 기다린 끝에 공연의 막이 다시 오르긴 했다. 그러나 수리에는 실패한 모양이었다. 앞뒤로 움직이던 돌출무대가 그때 이후로는 미동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들어야 할 곡이 잔뜩 남았는데 콘서트가 이대로 끝나버리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하고 있었기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웨이브이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들은 어이없이 끊겨버린 흐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줌으로써 분위기를 다시 끌어올린 후, 무대를 127에게 넘겨주었다.

     

영웅과 보스와 폭죽 

    

 <영웅>의 격렬한 비트가 문학을 강타하는 순간, 나는 전율했다. 이거지, 이거야. 이게 바로 엔시티의 정체성이자 내가 기다려왔던 그 네오함이야. 강력하고 세련된, 127만의 음악이야. 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옆에서는 미국 팬이 이제까지 들었던 비명 중에서도 제일 높은 데시벨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영어 가사를 나 못지않게 미친 사람처럼 따라불렀다.

 “Let me introduce you to some to some new thangs! new thangs! new thangs!”

    

 영웅은 엔시티 굴지의 인기곡이므로 또 한번 모든 유닛 팬들이 하나가 되어 떼창을 했다. 한번 중단되었던 공연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열기가 눈에 보일 듯이, 손에 잡힐 듯이 맹렬한 불길로 타올랐다.

     

 나는 최애 곡인 영웅의 라이브를 보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해 이성을 잃을 뻔했다. 무대까지의 거리를 가늠해보았더니, 어쨌든 전력으로 달리면 5분 안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불과 오 분 거리에 진짜 127이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뻔 했지만, 무대에 난입했다 끌려간 사람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켰다.

     

 엔시티는 팬들을 모조리 넉다운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듯했다. 공연은 점점 눈부신 피날레로 치달았다. 그리고 드디어, 팬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명곡, 호불호가 없는 그 곡, <Boss>가 무대에 올랐다.

    

 낮게 쿵쿵거리며 울리는 비트를 듣자마자 심장이 공명했다. 보스를 실제로 보다니, 인천까지 오길 잘했다. 무조건 잘했다. 나는 자기 자신 무한정 칭찬하기 챌린지에 참여한 사람처럼 되뇌었다.

     

 곡이 화려한 아웃트로에 돌입하자 축포가 터졌다. 폭죽은 드높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 찬란한 불꽃을 쏟아냈다. 굉음에 음악이 묻혔다. 보스라는 곡에 어울리는 씬이었다.

     

 마지막 센터를 맡은 마크의 파워풀한 독무는 연기에 가려 실루엣으로 보였으나, 그 모습에서 오히려 또 다른 멋이 뿜어져 나왔다. 나에겐 그것이 콘서트의 성대한 피날레를 알리는 신호와도 같았다.

    

 대인원의 멤버들이 모두 참여한 연합 곡을 마지막으로 공연이 막을 내렸다. 엔시티는 앵콜로 두 곡을 선사했다. 단체복을 입고 홀가분하게 손을 흔들며 행복해하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만약 숙소 예약에 실패했더라면 노숙이라도 불사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앵콜을 포기한다는 발상을 했던 과거의 내가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끝이 났다. 아름다웠던 한여름 밤의 꿈은 그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마지막 편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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