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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Sep 22. 2023

행복 터지는 콘서트 후기, 네 번째(완결)

후일담

충격의 지하철

     

 장장 4시간에 걸친 공연이 막을 내리고(속으로 강제 인터미션만 아니었더라도 그 정도로 늘어지지는 않았을 거라며 주최 측을 비난했다) 나는 경직된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너무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앉아있다가 일어섰더니 신체의 모든 근육이 삐그덕거리며 신음했다. 드디어 무릎을 펼 수 있게 된 다리는 나를 숙소로 데려다 줄 터였다.

   

 다행히 지하철역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승강장은 콘서트장에서 빠져나온 팬들로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아이돌 팬이라는 사실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존재감이 대단한 믐뭔봄을 드러내놓고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이 놀라웠다. 저 녀석을 패션아이템 정도로 여길 정도는 돼야 시즈니로 쳐주는 건가? 나는 생각했다.

    

 열차가 도착하자 줄지어 서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나는 간신히 맨 마지막으로 꾸역꾸역 몸을 욱여넣을 수 있었다. 다섯 살짜리 우리 딸이 서 있을 공간조차 없어 보여,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맹렬히 달려오더니 코뿔소 같은 힘으로 지하철 내부로 돌진했다. 나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뒤로 밀렸다. 그 틈을 타 그들이 중장비처럼 마구 간격을 넓히며 뚫고 들어왔다. 그렇게 예닐곱 명을 더 태운 후에야 문이 닫혔다.

      

 지하철이 없는 도시에만 살아 면역력이 없는 나에게 그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마치 공간이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일시에 팽창한 것 같았다. 무에서 유가 창조된 느낌이랄까. 수도권 사람들은 이걸 매일 아침 겪는단 말인가? 존경심이 절로 우러났다. 

    

 열차가 질식하거나 토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지만 노련한 차량은 무사히 자기 일을 수행했고, 곧 생전 처음 와보는 동네에 나를 내려주었다. 호텔은 역에서 아주 가까웠으나 이동과 장시간의 공연 관람으로 인해 몹시 지쳐 있던 내겐 매우 멀게 느껴졌다. 벌써 밤 11시가 넘은 시각, 어서 방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드디어 체크인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 체크인은 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프런트에 단 한 명 있는 직원 앞에 한 외국인 고객이 버티고 서서 화를 내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단단히 성이 난 것 같았다.

      

 강한 영국식 액센트로 따지고 드는 그녀 앞에서 직원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는 간단한 영어도 하지 못하는 듯했다. 둘은 다음 대화만을 로봇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I already paid my cash.”

“예약 내역을 찾을 수 없어요.”

     

 내가 그들의 실랑이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뒤에선 이미 체크인을 마친 팬들이 삼삼오오 야식을 사 들고 즐겁게 웃으며 객실로 올라가고 있었다. 호텔 로비에는 그들 외에도 시즈니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엔시티 정도의 대형 아이돌은 교통과 숙박에까지 영향을 미치는구나. 나는 또 한 번 내 가수의 인기에 커다란 자부심을 느꼈다.

     

 한편 앞사람의 문제는 도무지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지 않았다. 슬슬 짜증이 났다. 외국인 고객이 돌아보며 Sorry, 하며 사과하는데도 괜찮다고 웃어줄 힘조차 없었다. 직원의 일 처리는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거의 30분 이상을 기다린 후에야 문제가 해결되어 내 차례가 왔는데도, 직원은 미안하다는 말도 한마디 하지 않았다. 나는 매우 불쾌했지만 너무 기진맥진한 나머지 따지지도 못하고 키를 받아 들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아까의 그 화난 고객과 마주쳤는데, 그녀가 조용히 혼잣말로 Suck, 이라고 내뱉는 것이 들렸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미 투.

     

 객실에 도착하자 엄청난 허기가 밀려왔다. 얼른 샤워 후 야식을 배달해 먹고 드디어 침대에 몸을 누였다. 몸이 땅속으로 꺼질 듯이 처지고 가라앉았다.

     

 스마트폰을 켜 트위터와 팬 커뮤니티에 접속하자 감동한 팬들의 후기가 가득했다. 다들 연합 콘서트가 이렇게까지 재미있을 줄 몰랐다고 말했고, 유닛 팬이어서 굳이 직관할 생각이 없었던 사람들도 티켓을 구매하지 않은 것을 크게 후회하고 있었다. 

    

 공연을 보고 온 어느 팬은 이렇게 다짐했다고 했는데, 내 마음이 그 마음이었다.

‘나 평시티(평생 엔시티) 할 거임.’


     

기적적인 네 시

     

 잠이 든 줄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 보다. 돌연 푸드덕거리며 깨어나 보니 불도, 에어컨도 끄지 않은 채였다. 광명역에서 새벽 6시 반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려면 네 시에는 일어났어야 한다. 망했다는 예감에 급히 핸드폰 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제 막 네 시가 지나 있었다. 아마 한 시가 넘어 잠들었을 것이기에 채 세 시간도 자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서둘러 출발해야 했다.      


 호텔 앞에서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근처에는 한 무리의 중국 팬들이 역시 택시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내가 요청한 택시가 먼저 도착했다. 나는 묘한 우월감과 안쓰러움을 동시에 느끼며 차에 올라탔다. 

    

 광명역까지의 택시비가 3만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어차피 그 시간엔 지하철도 버스도 없었다. 언제나 남편에게 주장하는 바대로, 일이십 대 팬들에 비해 체력도 시간도 정보력도 달리는 내가 그들에 비해 우위에 설 수 있는 건 경제력뿐이다. 나는 진작 이 여정을 돈으로 바르기로 결심하고 왔으므로, 아무 죄책감 없이 택시를 이용했다.

     

 무사히 광명역에 도착해 KTX를 타자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기적적으로 네 시에 깬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늦잠을 자서 시아버님의 생신 오찬에 참석하지 못했다면 어땠을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친정 식구들에겐 된통 혼났을 테고, 남편과 시부모님 얼굴을 뵐 면목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아 몹시 안도한 마음으로 나는 기차에서 2시간 내내 신나게 헤드뱅잉을 하며 잠을 잤다.

     

여행의 끝

     

 몇 시간 후, 양가 식구들이 모두 모인 점심 식사 자리는 매우 화기애애했다. 시부모님은 아버님의 생신을 축하하러 내려온 친정 아빠와 동생에게 고마워하셨다. 음식은 꽤 훌륭했고(특히 내가 좋아하는 초밥이 무척 맛있었다) 어른들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었으며, 어머님은 아주 착하고 싹싹하다며 동생을 칭찬하셨다.

     

 나는 이 광경에 흐뭇해하며 열심히 배를 채웠다. 다행스럽게도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러나 모자란 잠은 어디에 선가는, 언젠가는 표가 나게 마련이다. 

    

 시댁 식구와 못다 한 대화를 나누려고 들어간 파스쿠찌에서였다. 배가 불러서인지, 코빼기도 모습을 보이지 않던 졸음이 갑자기 나타나 극성스럽게 눈꺼풀을 눌러대기 시작했다. 

     

 남편이 신나게 부동산 얘기를 하고 있을 때, 나는 견디지 못하고 시부모님이 계신 앞에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떴다. 또 감았다가 떴다. 그러기를 수백 번은 했던 것 같다. 시부모님은 이런 나를 보셨는지 못 보셨는지,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나중에 남편이 말했다. 내가 기절할 듯 졸고 있는 걸 봤다고. 그렇다면 아마 시부모님도 보셨을 것이다. 그저 며느리가 많이 피곤한가 보다, 하고 너그럽게 이해해 주신 것일 테다. 

    

 세 시간 후 시댁 식구들을 배웅하면서 나는 이제 편하게 잘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내내 잤고 집에 와서도 잤다. 그렇게 나의 1박 2일 여행은 엄청난 잠의 향연으로 끝이 났다.  

    

 돌아보면 아주 특별한, 그 어떤 공연보다도 기억에 남는 콘서트였다. 연합 콘서트가 언제 또 열릴지 모르기에 더 소중한 추억이다. 나는 한 달여가 지난 지금도 유튜브에서 그때의 영상을 돌려본다. 같은 노래와 춤이어도 그날의 라이브가 훨씬 각별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잊지 못할 근사한 시간을 선물해 준 엔시티 멤버 전원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4일에 걸쳐 이 길고 긴 후기를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린다. 모아보면 엄청난 분량일 테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다음 한마디가 다다. 

     

엔시티 우주최강킹왕짱.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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