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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Oct 06. 2023

우리 작은 공주들

동방신기, <My Little Princess>

 소년소녀는 언제 어른이 되어감을 실감할까? 백이면 백 다른 대답이 나오겠지만, 나의 경우엔 ‘TV에 나오는 연예인과 나이가 비슷해졌을 때’ 였다.

     

 지난 2004년 초, 동방신기의 데뷔는 학교에서 상당한 화제가 되었다. 팀의 막내인 최강창민이 88년생으로 우리와 동갑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빠른 생일이라 같은 ‘학년’ 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생일이 몇 개월 차이 안 나는 친구가 연예인으로 데뷔한 건 놀라운 사건이었다.

      

 OO여고우리 반엔 재미있고 에너지 넘치는 친구들이 가득했는데, H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 아이는 최강창민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다.

    

 여고에서는 가끔 라이벌 그룹 팬끼리 편이 갈려서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땐 그럴 수 없었다. 동방신기가 전부 평정했기 때문이다. ‘팍스 동방신기나’였다고 할까. 다섯 명 중에서 누굴 제일 좋아하는지만 달랐을 뿐이다.

    

 H는 예쁘고 명랑해서 언제나 인기가 많았는데, 어느 날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소문은 단숨에 전 학우에게로 퍼졌고 사춘기 소녀들의 모든 관심이 한 곳에 집중되었다. 어느 날 저녁, H가 첫키스 썰을 풀겠다 선언하자 서른여섯 명의 굶주린 무리가 일시에 그녀를 둘러쌌다.

     

 “그래서 어땠어? 좋았어?”

 한 친구가 샛별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물었지만, H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글쎄...? 생각보다 그렇게 좋은 줄은 모르겠던데. 주위에 보는 사람은 없는지 걱정도 되고 해서, 도중에 고개를 돌려버렸어.”

 그러자 주의 깊게 듣고 있던 다른 친구가 분노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야! 그때 남자는 한창 정신 못 차리고 있단 말이야!”

     

 몇 개월 후 H는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며 슬프게 울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그녀를 위로하며 이별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 봤다. 얼마나 좋아했으면 이렇게 아파할까? 그 남자애는 최강창민을 닮아 있었을까?

     

 열혈 아이돌 팬을 비하하는 속어도 있지만, 내 기억 속의 H는 그런 단어와는 거리가 먼 착하고 순수한 소녀였다. 모두가 그랬다. 우리는 동방신기의 노래를 함께 부르고 춤을 따라 하고, 사진을 교환하며 14시간 동안 학교에 갇혀 있어야 하는 괴로움과 야자의 지루함을 견뎠다.

    

 신인이었던 그때의 동방신기 멤버들 마음도 아마 우리만큼이나 풋풋했을 것이다. 채 스무 살도 안 된 앳된 목소리로 부른 <My Little Princess>에는 그런 소년다운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어떤 히트곡보다도 이 노래를 좋아한다.

    

 지금의 10대 중에는 동방신기가 원래부터 두 명인 줄로 아는 친구들도 많다고 한다. 본인들과 팬들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갈라선 그들이지만, 다섯 명의 정성을 다한 노래는 그대로 남아 옛 우정을 증명한다.





my little princess, 이제껏 숨겨온
나만의 사랑 늘 보여줄거야
영원토록 변치 않을 맘으로 girl,
너만을 지키는 빛나는 별이 될게요
you’re my love

     

 지난 8월, 김준수는 팬미팅에서 19년 만에 이 곡을 불렀다. 어느새 30대 후반이 된 그이지만 팀의 상징과도 같았던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서 팬들은 느꼈을 것이다. 동방신기에게도, 우리에게도 그 시절은 노랫말처럼 영원토록 변치 않는 별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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