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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Oct 11. 2023

때로는 그냥 아는 것만으로도

서평 보따리 풀어놓기

 연휴 동안 미뤄둔 책을 신나게 읽었다. 내 욕심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여가이지만, 남편과 번갈아서 육아를 전담하며 조금씩 시간을 모았다. 그렇게 확보한 시간에 다른 일은 하나도 안 하고 오직 책만 읽었더니 아주 행복했다.

     

 이번 글은 그때 읽은 책 다섯 권 – 역사책 네 권, 음악책 한 권 – 에 관한 서평이다.

     


역사 문해력 수업


 이 책 정말 유익하다. 역사에 진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는 것을 추천한다. 역사를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를 알려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특히 다음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측면에서 내가 읽어본 그 어떤 역사학 개론서보다도 명쾌하다.

    

 -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

 - 역사적 진실이란 무엇인가?

 - 역사가는 어떻게 역사를 쓰는가?

     

 사학과나 역사교육과의 신입생이 읽으면 가장 좋고, 일반 대중이 읽기엔 조금 어렵긴 하다. 원래 교수님 설명은 아무리 쉽다 해도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가.

     

 그렇다고 대학 교재처럼 딱딱하진 않으니, 1장만이라도 읽어보는 게 좋다. 역사학의 효용성, 존재 의의가 뭔지 알 수 있다.

     

 뒤로 갈수록 역사철학의 등장과 함께 아우구스티누스, 베버, 랑케, 헤겔 등 유명하신 분들이 출몰하기 시작하니,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한다면 도중에 그만두어도 괜찮다. 어차피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서는 저분들의 사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14가지 테마로 즐기는 서양사


 이 정도면 대중적이라고 생각한다. 교수님이 이만큼 쓰셨으면 정말 최선을 다하신 거다. 평소에 역사, 특히 세계사에 관심 있었던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반면 세계사와 아예 담을 쌓았다면 이 책도 아주 쉽지만은 않다. 아마 제목에서 기대한 것보다는 어렵다고 느낄 것이다.

   

 서양사를 개관하기에 매우 좋은 책이다. 여기서 다루는 14가지 테마는 교양인이 알아야 할 역사로서 충분하다. 즉, 서양사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로만 구성되어 있다.

     

 교과서처럼 수많은 사실만 나열하는 서술을 피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를 만든 사건과 그 의의를 다루었다는 점이 특히 훌륭하다. 목차를 언뜻 보면 시대순으로 주제를 줄 세운 것처럼 보여도, 본문을 읽어보면 어떤 사실이 후세에 끼친 영향 위주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함무라비 법전을 예로 들어보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내용 자체보다 그 조문들이 당시 기준으로 합리적이라는 점,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우리를 지배하는 서양 법치주의의 뿌리가 되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약간의 배경지식이 있다면 이 책의 독서를 확실히 ‘즐길 수’ 있고, 그렇지 않아도 책장을 넘기는 일이 그다지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이 놓친 역사, 공간으로 읽는다


 이 책은 ‘금요일엔 역사책’이라는 기획 시리즈의 세 번째인데, 개별 도서도 좋지만 기획 자체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엔 역사책을 읽자는 모토로, 도서의 판형이 작고 두께도 얇다.


 게다가 학계의 최신 연구성과를 대중들과 공유하기 위한 기획이라니, 이 어찌 고맙지 않으랴.

    

 내가 읽은 세 번째 책에는 삼국의 공간 경영에 대한 새로운 학설이 잘 정리되어 있었는데, 어디에서도 배운 적 없는 내용이라 신선했다. 특히 삼국이 지방 거점도시를 운영한 방식을 설명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최신 학설을 딱딱한 논문이 아닌 좀 더 쉬운 글로 접하고 싶다면 선택하면 좋을 시리즈다.          



단단한 고고학

 

 오늘 소개하는 모든 책 중에서 가장 쉽다. 분량도 적은 편이다. 그러면서 유익함까지 놓치지 않은 뛰어난 저서이다. 이 책을 읽으면 다음 질문의 답을 얻을 수 있다.

     

 - 박물관에 전시된 석기가 자연석과 뭐가 다른가? 즉 자연석을 구석기인이 만든 석기와 어떻게 구별하나?

 - 우리 눈에는 수준 낮아 보이는 이 석기들이 고고학과 역사학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참고로 나는 이 책을 읽고 찍개와 주먹도끼 정도는 구분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호모 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인을 무시하지 않게 되었다.

     




차이콥스키 × 정준호


 드디어 음악책이다. 차이콥스키는 알겠는데 곱하기 기호는 뭐고, 정준호는 누구냐고? 정준호는 음악 전문 칼럼니스트이자 이 책의 저자이며, 곱하기는 저자가 차이콥스키의 족적을 따라 여행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책 역시 시리즈물로, ‘클래식 클라우드’라는 기획이다. 거장을 만나는 여행이라는 표어 아래 100인의 작가가 각 분야의 거장을 한 명씩 맡아 그 발자취를 따라간다. 듣기만 해도 대단히 흥미롭지 않은가?

     

 지금까지 총 29권이 나왔고, 거장의 목록은 헤밍웨이, 단테 등의 작가와 푸치니, 쇼팽 등 음악가, 드가, 모네 등의 화가, 니체와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까지 망라한다. 전권 독파가 매우 시급하다.

     

각 권의 저자가 다르므로 아마 난이도나 문체도 각양각색일 것이라고 예상해본다. 내가 읽은 제28권, 차이콥스키 × 정준호는 저자의 이력 덕분인지 칼럼 같은 느낌이 났다.

      

 그리고 여타 클래식 교양서와의 차별점을 짚자면, 차이콥스키의 ‘오페라’를 비중 있게 소개한다는 점이다. 차이콥스키는 발레 음악과 기악곡이 유명한 작곡가로, 오페라가 높은 평가를 받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세간의 평가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여러 작품 이야기가 나오지만, 오페라와 같은 난해한 예술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우리는 하나의 제목만 기억하면 될 것 같다. <예브게니 오네긴>이다. 이왕이면 원작 소설을 쓴 작가가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이라는 사실까지 기억하면 더 좋겠다.


 어차피 인문・교양서를 읽는 까닭은 물질적으로가 아닌 정신적으로 부유해지기 위해서이니까, 이렇게 그냥 배우는 것, 몰랐던 것을 아는 것 자체가 즐겁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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