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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Jan 14. 2024

죽은 후에야 다다른 건너편 초록 불빛

클래식 클라우드 열두 번째 책, 피츠제럴드

이번 독서를 통해 확신하게 된 사실은 과거의 거장 중 정신이 건강한 예술가가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미국 문학사에 <위대한 개츠비>라는 명작을 남긴 스콧 피츠제럴드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지독한 술쟁이였다. 알코올 중독으로 건강이 망가져 감에도 불구하고 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스스로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당신이 술을 마시고, 나중에는 술이 술을 마시고, 급기야 술이 당신을 마신다.

     

피츠제럴드는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간호사에게 술을 마시게 해달라고 졸랐다. 딱 1온스만 술을 마시게 해 달라는 애원은 그의 뇌가 얼마나 알코올에 절여져 있었는지 실감케 한다.

     

그가 술독에 빠져 산 이유가 꼭 괴로움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듯 그도 술을 마시며 정신적 고통을 달랬을 것이다. 피츠제럴드가 감내해야 했던 아픔과 슬픔은 어떤 것이었을까.

     


콤플렉스 덩어리


피츠제럴드의 인생은 콤플렉스로 점철되어 있었다. 하층민은 아니었으나 상류층도 아니었던 그는 평생 출신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렸다. 곱상하고 약해 보이는 자신의 외모도, 동료 작가인 헤밍웨이나 다른 많은 남자들처럼 군에 입대해 활약할 시기를 놓친 일도 그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냈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콤플렉스는 실연이었다. 그는 첫사랑이었던 애인의 아버지에게 몹시 모욕적인 말을 듣고 영혼의 상처를 입었다. 다음 발언이었다.


“가난뱅이는 부잣집 딸과 결혼할 꿈조차 꾸지 말아야 해!” - 38p

     

가난하다는 이유로 첫사랑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피츠제럴드는 후에 다른 여인에게 청혼하지만,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또다시 거절당한다. 그 여인은 대법원 판사의 딸이었고, 피츠제럴드가 인기 작가가 된 후에야 결혼을 허락했다.

     

‘돈이 없어서’ 상류층 여자들에게 버림받은 경험은 그의 가슴에 세속적 성공을 향한 갈망을 심었다. 피츠제럴드가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한 사치스러운 생활습관은 이런 심리적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회적 상승 욕구가 강했던 그는 <위대한 개츠비>에서 ‘up’이라는 단어를 202번이나 등장시켰지만, 소설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우리가 아는 <위대한 개츠비>의 명성은 그가 죽은 지 10년이 지난 후에야 작품이 재조명받으며 생긴 것이다.

    

피츠제럴드 편의 저자 최민석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 작품들에는 그의 열망과 상처, 상처를 극복한 방식, 계급에 대한 투쟁이 담겨 있다. 이 작품들은 그의 이야기고, 이 작품 속 주인공들은 그 자신이다. 그중 개츠비는 피츠제럴드와 너무 닮았다. 한평생 원하는 것을 얻고자 불나방처럼 날아들었지만, 결국 마지막 날갯짓은 불꽃 속에서 해야 했다. - 40p

     


명문대를 향한 로망

     

피츠제럴드는 명문 프린스턴 대학교에 합격할 만큼 우수한 학생이었다.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 그였으니 세계적인 명문대는 그에게 로망이었을 테고, 그 목표를 실현한 직후엔 매우 기뻤을 것이다.

     

그러나 프린스턴은 피츠제럴드에게 소속감보다는 소외감을 안겼다. 명문가 자제, 부잣집 자녀들의 노골적인 친목을 보며 피츠제럴드는 출신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길은 졸업이 아닌 자퇴였다.

     

프린스턴의 특권 의식과 배타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상징으로‘코티지 클럽’이라는 단체가 등장한다. 코티지 클럽은 부유층 출신 학생들로 이루어진 일종의 식사 동아리인데, 저자 최민석은 이 클럽을 취재하러 갔다가 냉담한 반응을 얻고, 그들의 뿌리 깊은 계급적·인종적 우월감을 느낀다.

     

저자의 눈에 코티지 클럽의 학생들은 미국 사회에서 묵직한 위치를 차지할 자신들의 장밋빛 미래를 확신하며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모습에 환멸이 일기는커녕 강한 동경심이 생겼다.

     

세계 최고의 수재들이 모이는 곳, 허락된 소수만이 수학할 수 있는 곳이라는 엘리트성이 너무 멋져 보였다. 내가 프린스턴에 입학할 수 있을 만큼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아쉬웠다.

     

상상해 봤다. 내가 만약 지금보다 훨씬 똑똑하고 야망 있는 학생이어서 프린스턴에 갔다면, 어떤 학교 생활을 했을까?

    

전 미스코리아이자 현 교수인 금나나의 자서전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금나나는 하버드에 입학한 직후 수업을 알아듣지 못해 천재들 사이에서 혼자 바보가 된 것 같았다고 했다. 그녀에게 하버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문자 그대로 생존의 문제였다. 절박했던 금나나는 염치 불고하고 동급생과 조교에게 닥치는 대로 도움을 요청했고, 시험 기간마다 피오줌을 싸도록 레드불을 들이키며 공부했으며,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폭식증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과연 나였다면 그 살벌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세계에서 손꼽히는 엘리트가 되었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인종 차별 정도는 쿨하게 넘겨버릴 수 있었을까? 아니면 피츠제럴드처럼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위화감에 시달렸을까.

      

프린스턴에 대한 이야기는 피츠제럴드에 관한 분석보다도 더 크게 마음을 흔들었고, 내 가치관을 구성하는 한 요소인 엘리트주의를 일깨웠다. 다시 태어난다면 프린스턴 급의 명문대생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사 피츠제럴드처럼 좌절하게 될지라도.



개츠비는 왜 위대한가


난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이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이유를 깨닫지는 못했다. 작품의 미학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피츠제럴드 책을 읽고 나서야 <위대한 개츠비>의 위대함을 알 수 있었다.

     

메타포   

<위대한 개츠비>를 이해하는 열쇠 중 하나는‘메타포’에 대한 이해다. 최민석은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이의 반응이 극도로 갈리는 것은 바로 이 메타포 탓도 있다고 여긴다. 이 메타포의 활용법에 찬성하는 사람에게라면 <위대한 개츠비>는 명작임에 틀림없다. 반면, (중략) 이 활용법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위대한 개츠비>는 그야말로 지루한 텍스트의 나열일 뿐이다. - 229~230p

     

가장 대표적이고 중요한 메타포는 ‘물’이다. 소설 속에서 물은 개츠비의 탄생과 죽음을 암시한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살다 가출한 후, 그를 거두어 준 백만장자의 요트를 타고 물 위를 떠다니던 때가 새로 태어난 순간이라면, 억울한 시신이 되어 자기 집 수영장 위를 떠다니게 된 때는 죽음의 순간이다.

     

개츠비에게 ‘물’이란 뛰어넘어야 하는 대상, 헤쳐나가야 하는 대상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부’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의 집과 데이지의 집 사이에는 바다, 즉 물이 있으니 데이지를 만나기 위해서는 물을 건너야 한다. 이는 데이지를 얻기 위해 그가 성취해야 했던 어마어마한 재력과 자본, 사회적 지위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토록 이기기 위해 발버둥 쳤던 물과의 싸움에서 개츠비는 패배한다. 그의 장례식에 조문객 대신 찾아오는 억수 같은 비가 증거다.

      

재즈 시대     

<위대한 개츠비>는 ‘재즈 시대’라고 불리는 1920년대 미국의 향락적 문화를 생생하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잘 알려져 있듯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을 능가하는 선진국으로 떠오르며 절정의 호황을 누렸다.      

낙원의 풍요는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하기 전까지 지속되었으며, 피츠제럴드는 바로 이 시기의 사회상을 소설로 풍부하게 담아냈다. 실제로 피츠제럴드 부부는 결혼 직후 사치스러운 생활로 인해 ‘재즈 시대의 완벽한 커플’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등장하는 최민석 작가의 평가가 재미있다.

     

화려한 재즈 시대의 사교계 소설을 피츠제럴드가 아니라면 과연 누가 쓴단 말인가. 장총 메고 킬리만자로에 사냥을 간 헤밍웨이가 쓴단 말인가. 재즈 시대가 오기도 전에 죽어버린 마크 트웨인이 쓴단 말인가. - 282p     


대가의 솜씨     

헤밍웨이 편에서처럼, 피츠제럴드 책에서도 그의 소설적 기교와 문장에 대한 찬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대문호의 솜씨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다음은 <위대한 개츠비>의 제일 첫 문장이다.


 내가 지금보다 더 어리고, 상처를 받으면 잘 아물지 않던 시기에 아버지는 절대 잊지 못할 충고를 해주셨다.

“다른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을 땐 말이다…….”아버지는 말했다.

“이걸 기억해 두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네가 누려온 특권들을 누리진 않았다는 걸.”

    

이 첫 문장은 얼마나 정교한가. 화자 닉 캐러웨이의 성격과 지내온 인생, 그리고 그의 계급까지 모두 보여준다.  - 199~200p


     

이번엔 조던 베이커가 닉에게 데이지 부부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다.



조던 베이커가 이야기를 모두 마쳤을 때는 플라자호텔을 떠난 지 30분이 지난 뒤로, 우리는 관광용 사륜마차를 타고 센트럴 파크를 지나고 있었다.

     

‘장소를 옮겼다’는 식의 직접적이고 촌스러운 문장도 쓰지 않고, 옮겨서 대화를 이은 곳이 바로 관광용 사륜마차 좌석이라니. 그리고 그 마차는 센트럴파크를 지나고 있다니. - 243p


    

그리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찬양의 문장이 있으니, 다음이다.



한 사회의 담론을 유도하면서, 글 자체가, 그러니까, 명사와, 조사와, 형용사와, 부사와, 동사가, 즉, 단어가, 그리고 문장이, 문단이, 챕터가, 아니, 소설 한 권 전체가 아름답게 쓰였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위대한 개츠비>라는 제목처럼 위대한 점이기도 하다. - 287p


소설가 최민석

     

나는 여태껏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독후감을 써오면서 거장의 원전보다 이 시리즈를 읽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피츠제럴드×최민석> 편을 읽는 일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순전히 작가의 글솜씨에 반해서이다.

     

그는 피츠제럴드의 생애 궤적을 따라 미국을 여행하며 겪은 수모와 고생조차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며, 어떻게 생각해 냈는지 모를 참신한 비유를 사용한다.

      

예를 들면, 피츠제럴드의 묘지를 찾아다니다 스페인 사람을 만났을 때, 오래전 스페인어를 배운 기억을 떠올리며 더듬더듬 단어를 나열한 일을 두고 이렇게 말하는 식이다.

     

뇌 구석에서 지난 10년간 꽁꽁 얼어 있었던 기초 생활 스페인어 단어를 해동하여 유치원생 같은 대화를 나눈 후 겨우 입장하니, 똑같은 비석과 무덤이 수백 개 즐비했다. - 123p

     

그는 작가로서 존경하는 선배 피츠제럴드의 직업적 고통에도 깊이 공감한다.

      

작가의 삶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어떠한 이야기라도 써내야 하는 날들의 이어짐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새겨졌다. - 108p

     

그래서일까. 그는 걸작을 남긴 작가의 무덤답지 않게 쓸쓸한 피츠제럴드의 묘지를 보고 마음 아파한다. 묘비 위에 쌓인 새똥을 맨손으로 치우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나는 그가 피츠제럴드를 얼마나 좋아하고 존경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제껏 읽은 시리즈 중에서 거장의 무덤을 방문한 글쓴이들은 많았지만 이렇게 눈물까지 흘리며 슬퍼한 경우는 없었다. 그의 진정성이 가슴에 와닿는 대목이었다. 


여러모로 이번 책을 통해서는 피츠제럴드보다 최민석이라는 소설가에 더 호감을 느끼게 돼 버렸다. 이 글을 마치고 나서 인터넷 서점에 그의 등단작인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를 주문할 예정이다.

     



피츠제럴드 편을 다 읽고 나니 문득 2013년 개봉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가 다시 보고 싶어졌다. 예전에 처음 봤을 땐 파티 장면 묘사가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이번엔 그 화려함이 꼭 필요했다는 걸 납득할 수 있었다. 개츠비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서인지 디카프리오의 연기도 더 훌륭해 보였다.

    

그래서 전문가에게 배우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유익하다. 모자란 안목으로 인해 간과했던 매력을 깨닫는 재미가 있다. 영화를 보면서도 향상된 감상 능력을 느끼는데, 소설을 다시 읽으면 오죽할까.

     

<위대한 개츠비>는 2013년뿐 아니라 훨씬 이전인 70년대에도 영화로 만들어졌다. 작품의 인기를 증명하는 건 그뿐이 아니다. 현재 <위대한 개츠비>의 초반본은 상태가 좋을 경우엔 가격이 1~2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살아생전 소설이 성공했더라면, 피츠제럴드는 여생을 훨씬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으리라. 그의 말년이 궁핍함과 알코올 중독, 아내의 조현병 때문에 불행의 연속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

     

피츠제럴드의 인생에서 ‘빛나는 초록 불빛’ 이 상징하는 대상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의 사후 <위대한 개츠비>에 주어진 고매한 평가보다 더 밝고 진한 초록빛은 없을 것이다. 개츠비는 허무하게 죽었으나, 피츠제럴드의 문학은 생명력을 더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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