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를 다 읽은 지 벌써 몇 주나 지났지만 다른 소설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장르의 최고봉을 읽었으니 그것을 능가하는 작품이 없을 것 같아서다. 소설을 읽는 모든 즐거움이 <토지>에 다 있었다. 이야기의 여운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기에 드라마 토지의 다시보기 서비스를 찾아다녔다.
흔히 사람들이 <토지>는 재미로 읽는 소설이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토지>는 '매우' 재미있는 작품이다. 특히 1부의 흡입력은 놀라웠으며, 2부가 가장 힘겨웠고 3부에서 숨을 고른 후 4, 5부에 도달하자 다시 휘몰아치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이야기의 전개가 빠른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냐고 묻는다면, 그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사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다 몹시 흥미로웠다고 말하겠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상관없이 인물 한 명 한 명에 대한 애정이 싹트고 언뜻 줄거리와 크게 상관없어 보이는 그들의 인생사가 못내 궁금해졌을 때, 비로소 어느 정도는 이 작품을 제대로 읽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주인공인 서희의 이야기보다 주변 인물들의 일화가 더 재미있었을 때 말이다.
석이와 석이할머니 이야기, 홍이 이야기, 두만네 이야기, 영호와 숙이 이야기, 허정윤과 양소림의 이야기 등등 각자를 주인공으로 해서 따로 책을 써도 한 권은 나올 인생사가 단일 소설에 종합선물세트처럼 등장하는데 어찌 흥미롭지 않을 수 있을까. 작품 말미에 이르자 누구 하나 친숙하지 않은 사람이 없게 될 만큼 그네들 삶에 깊이 감정이입을 하게 되었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길고 긴 철학적, 정치적 담론이었다. 인간과 삶의 본질에 대한 작가의 심오한 사색과 고뇌, 통찰이 담긴 중요한 대목이지만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어서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뒷장으로 넘어가곤 했지만, 만약 운 좋게도 다시 <토지>를 완주할 시간이 생긴다면 몇 번이고 반복해 읽고 고민해서 그 진정한 의미를 알고 싶다.
다양한 소설 유형을 다 찾아볼 수 있는 토털 패키지라는 점도 <토지>의 매력이었다. 용이와 월선이의 애절한 사랑, 서희와 길상이의 사랑 싸움, 안타까운 연인 유인실과 오가타, 영광이와 양현이의 낭만적인 청춘 로맨스를 보면 아름다운 연애소설 같다. 그런가하면 최치수를 향한 김평산과 귀녀의 음모는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물을 보는 듯 하고, 홍이와 상의가 겪는 사춘기의 방황과 고민을 보면 꼭 성장소설 같기도 하다.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 뿐 아니라 너비에도 매혹되어서 정신없이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특이했던 것은 분명히 인물의 인생에서 그리고 줄거리 전체에서 중요한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자세한 묘사나 서술 없이 이미 지나버린 과거로 처리한다던가, 다른 인물의 입을 빌려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서술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서희나 길상이가 결혼에 골인한 직접적인 계기는 마차 사고로 인한 입원인데 그 사건이 단 몇 줄의 문장으로 언급되고 지나간다. 독자로서 둘이 사랑 고백도 하고, 스킨십도 하는 그런 달콤한 장면들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어물쩡 처리되고 넘어가니 당황스럽고 허전했다. 결혼식에 대한 묘사도 전혀 없었고 다시 서희와 길상이가 등장했을 때는 이미 혼인한 지 꽤 지난 후였다. (독자들의 이런 허전함에 공감했는지 SBS 드라마는 이 과정을 상상으로 메꾸어 자세히 묘사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봉순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그녀는 주인공 서희의 가장 친한 친구로서 분명 매우 중요한 인물임에도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자살한 여인이 다름아닌 봉순이었구나, 하고 '유추' 해야 했다. (역시 드라마에서는 봉순이가 판소리를 하면서 강물에 빠지는 모습으로 상상력을 더해 생생히 묘사했다)
더군다나 나는 그녀의 죽음에 대한 서희나 길상이의 반응이 너무 궁금했는데 정작 석이나 이상현의 충격만 다루어지는 것이었다. 두 사람도 분명 봉순이와 중요한 관계를 맺은 인물이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가족처럼 지냈던 서희나 길상이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에 많이 아쉬웠다.
이렇듯 절절한 감정 표현이나 극적인 상황 묘사 같은 것이 거의 없어서 건조하고 딱딱한 소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읽어갈수록 점차 담백한 문체에 적응했고 나중에는 그 군더더기 없음이 고급스러운 품위로 느껴졌다.
사람들이 <토지>에 대해서 자주 하는 얘기 중 또 한 가지가 사투리와 토속어들이 너무 많아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난 적어도 <토지>를 읽을 때만큼은 내가 경상도 사투리의 네이티브라는 사실에 감사했다. 특히 평사리 농민들의 말씨는 사투리 구어체 그대로이므로 경상도 사람이 아니면 쉽게 알아듣기 어려운데, 나는 몇몇 어휘들 외에는 별 어려움 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다.
우리 할머니가 많이 쓰셨던 '주우' 라는 사투리의 어원을 <토지>를 읽으면서 알게 된 것도 재미있는 발견이었다. 그건 원래 '중우 '라는 단어로 바지를 뜻하는 말이었는데 할머니는 받침을 탈락시킨 채 '주우' 라고 하신 거였다. '똥 묻은 중우라도 팔아서' 라는 구절이 소설 속에서 여러 번 등장했을 때 굳이 사전을 뒤져보지 않아도 저거는 바지를 말하는 거구만, 하고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만약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전문가였더라면 정말 멋있는 평론을 쓸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아쉬움이 들게 한 작품은 <토지>가 처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당연하게 여기곤 하지만 가장 큰 축복인), 그리고 20권이나 되는 장대한 작품을 읽어낼 시간이 주어졌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다. 원래 난 한국문학보다는 영미문학을 더 좋아했는데 <토지>로 인해 현대 한국문학에 관심이 생겼다는 것도 큰 소득이다.
대하소설을 읽을 만한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면 꼭 <토지> 에 도전해 보라. 형언할 수 없는 문학적 깊이에 자발적으로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