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온 Mar 13. 2024

글쓰기와 상관없는 잡담, 상관있는 잡담

♬ 집 앞에 새로 생긴 베이커리의 빵이 너무 맛있다. 비건 빵(밀가루, 버터, 달걀, 설탕을 쓰지 않고 만드는 빵)이라 기름기 하나 없이 몹시 담백하고 쫀득하며 속에 부담이 없다. 특히 단호박 깜빠뉴는 장염에 걸려 30초에 한 번씩 화장실 왔다 갔다 하는 처지에도 생각날 것 같은 맛이다. 그치만 이것도 많이 먹으면 살찌겠지.

     

♬ 아이가 처음으로 수학 문제집을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초반부는 만점 일색이다. 한 자릿수를 세 번 더하거나 세 번 빼는 문제들로, 십의 자리에서 빌려오는 등의 어려운 셈법은 아직 진도가 나가기 전이지만 매우 기특하다. 이 녀석이 아빠의 이공계적 지능을 물려받았길 바란다. 그래야 학창 시절을 행복하고 무탈하게 보낼 것 아닌가.

     

 하루에 적어도 두 페이지 정도는 풀게 하고 싶지만 평일엔 내가 너무 피곤해서 그냥 놀게 내버려 둔다. 영어 학원도 꼬박꼬박 출석만 시킬 뿐 예습 복습은 하나도 못 시켜준다. 아이 공부를 봐주는 일이 결코 쉬운 게 아님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나 자신도 어렸을 적 끔찍하게 하기 싫어했으면서 눈높이 수학을 시켜야 하나 고민하고 있자니, 남편이 자기는 그런 거 안 해도 수학 잘했단다. 그러면 당신이 전담해서 매일 시켜보지,라고 말하려다 그만뒀다. 그는 사칙연산은 제쳐두고 닌텐도나 보드게임부터 가르칠 생각에 들떠 있다.

     

딸은 딸대로 티니핑 스케치북에 자기만의 세계를 그리느라 정신이 없다. 나도 할 말 없는 것이, 지난 토요일만 해도 덕질하다가 날밤 새웠다. (그리고 엑소랑 엔시티의 비교 분석 글을 쓸 생각에 신났다)

     

뭐, 할 때 되면 하겠지.

     

♬ 몇 개월 전 친애하는 배대웅 작가님의 서재 자랑 글을 보고, 조촐한 나만의 책상을 마련한 바 있다.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주변 광경을 간단히 묘사하자면 이렇다.

     

책상 바로 옆엔 오디오가 실린 3단 트롤 리가 놓여 있다. 오디오는 주인의 작업 자세에 따라 위치를 바꾸므로, 맨 윗단에 있을 땐 내가 책상에서 공부하거나 글을 쓰는 중이고, 아랫단에 있을 땐 바닥에 누워 무언가에 심취해 있는 상황이다. 최대한 귀에 가까운 위치에 스피커를 둬야 최상의 사운드를 들을 수 있기에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단을 바꾼다. 다행히 본체와 스피커가 분리되어 있는 모델이라 본체는 그대로 두고 양 스피커 두 개만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다.

     

둘은 아마 윗집 공기를 더 자주 마시고 싶을 것이다. 게으른 주인 덕에 1층에 자리하는 빈도가 단연 높기 때문이다. 방바닥에 엎드려 신세 늘어지게 책 읽고 음악 듣다 잠이 들 때가 부지기수다. (이때가 하루 중 단연 최고로 행복한 시간이다) 밑에 배관이 지나가는지 보일러를 틀면 집에서 제일 따뜻한 방이라서, 이부자리도 없이 맨바닥에 배 깔고 놀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그렇게 불도 안 끄고 꿈나라에 가 있다가 안방에서 엄마! 하는 외침이 들려오면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 얌전히 아이 옆으로 가서 다시 본격적으로 잔다. 모성이란 참으로 신비로운 본능이다. 안방과 서재 사이엔 닫힌 방문이 두 개나 존재하는 데다 깊이 잠들어 있는 상태인데도 아이가 부르는 소리는 귀신같이 듣고 깨어나니 말이다.

     

이틀 전엔 1인용 미니 패드를 구입했다. 확실히 맨바닥보다 뼈와 살이 편안하다. 이렇게 비품과 인프라를 잘 갖추어 둔 서재는 내 작은 파라다이스다.

     

♬ 주말에 친정에 가서 케케묵은 옛날 책들을 몽땅 싸들고 왔다. 주로 전공서적과 백과사전, 교과서들이다.

   

다시 보지도 않을 거면서 버리긴 아까워 방치한 전공서적들을 보니 순간 웃음이 나왔다. 책 위나 옆, 그러니까 표지로 덮인 앞뒷면 말고 종이가 노출돼 있는 좁은 면에 큼지막하게 써 놓은 이름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책에 저런 식으로 이름을 써놓은 지가 너무 오래되어 그랬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땐 나 말고도 다 그랬다. 영교 04, 국교 06, 교 08 등으로 소속과 학번까지 표기했었다.

      

네임펜으로 정성 들여 소유권을 표시 중인 17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4학년이 되면 이 두꺼운 책들을 머릿속에 다 넣고 있을 거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그게 얼마나 택도 없는 생각인지 3학년 2학기쯤엔 확실하게 깨닫게 될 거야, 과거의 나야.

     

그 외에 눈길을 끈 옛날 책은 중학교 교지였다. 문예부가 매 연말 펴내던 간행물이다. 아빠는 뭐 하러 20년도 더 된 책을 넘겨보고 있냐고 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작은 저널이 가치 있는 것이다.

     

무심결에 책장을 넘기다 내 이름을 발견하고 헉 놀라며 살펴봤더니, 교내 과학상상글짓기 대회에서 입상하여 작품이 실린 것이었다. 그 치기 어린 글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고대 유물을 발견한 기분으로 브런치에 그것을 올려볼까 하다가 내용을 슬쩍 훑어보고는 포기했다. 과학‘상상’ 글짓기인 데다 형식의 제한이 없었다 보니 100프로 픽션인 글을 써 놓았는데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난 여태껏 중2병에 걸린 적이 없었다고 자부했지만 이날부로 주장을 철회하기로 했다.

   

이 오그라드는 글 말고 브런치에 소개하고 싶은 다른 작품은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급 문집에 실렸던 김치찌개 시다. 엄마가 끓여준 김치찌개를 예찬한 내 역작을 보고, 무슨 연유에선지 울고 있던 한 친구가 울음을 뚝 그치고 웃음을 터뜨렸다. 작품성이 증명된 시의 행방은 그러나, 친정 책장에서 문집이 사라지면서 함께 묘연해졌다.

      

♬ 돌이켜 보니 순수한 즐거움만으로 공부했던 시기는 중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였다. 보다 깊은 지식에 목말라 있던 나는 과목마다 가르치는 선생님이 달라진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에 휩싸였다. 누가 강요하지 않았어도 스스로 책상 앞에 앉아 교과서를 펼치곤 했는데, 그중 가장 재미있었던 과목은 사회였다.

     

다른 교과서들은 다 버렸어도 여태껏 중학교 1학년 사회 교과서만은 버리지 못했다. 배우는 재미를 깨닫게 해 준 귀한 교재를 버리면 내 왕성했던 지적 호기심의 추억조차 사라질 것 같기 때문이다. 여백에 깨알 같은 글씨로, 하루가 멀다 하고 펜 색깔을 바꿔가며 필기해 놓은 것을 보면 그때의 의욕이 다시 떠올라 현재의 공부에도 좋은 자극이 된다.


     


사진에서 알 수 있듯 교육과정 상 사회 시간엔 한국지리와 세계지리를 배웠는데, 지금 보니 그때 공부한 내용들은 우리나라와 세계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지식이자 교양 그 자체다. 그래서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들이 실생활에 일절 쓸모없다며 매도하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국내 최고의 집필진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 결과를 반영하는 데다 최신 교육이론을 적용하여 펴내는 교과서는 대단히 양질의 교재이며, 그것을 토대로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면 충분 무형의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새 학기를 맞아 개강한 도서관의 독서문화프로그램에 등록했다. 나는 철학 강좌에, 아이는 그림책 수업에 신청해 금요일마다 수강한다. 나만큼 도서관을 구석구석 알차게 이용하는 울산 시민은 없을 거다. 성실히 납부한 세금을 질 높은 공공 서비스로 톡톡히 돌려받는 중이다.

     

내가 듣는 철학 강좌는 <처음 읽는 현대 철학> 등을 저술한 안광복 선생님이 맡으셨다. 비록 ZOOM 교육이긴 하지만 책을 여러 권 내신 유명한 저자분께 직강을 들으니 내가 선택받은 학생이라도 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지난주엔 첫 시간인만큼 개별 철학 이론을 다루기보다 현대사회와 철학의 관계를 중심으로 강의가 진행되었다. 철학이 내리는 ‘처방’을 통해 현대인의 정신적 고통을 치료받을 수 있다는 취지였다. 대중에게 철학이 현실에 무용하다는 인식이 워낙 팽배하다 보니 의도적으로 실용성을 부각한 듯했다.

     

매슬로의 욕구이론도 등장했는데 그 유명한 피라미드에 대한 설명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일반적으로 하위 욕구가 충족되어야 상위 욕구를 추구할 수 있다는 뜻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반대로 인간은 상위 욕망이 충족되면 하위 욕망이 덜 풍족하더라도 견딜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생존과 안전이 보장된 나라이니 이제 자아실현과 자아존중을 위해 노력해야 할 차례이고, 그러기 위해선 철학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선생님은 금요일 저녁을 편리한 유흥에 소비하지 않는 대신 배움의 길을 택한 수강생들을 칭찬하셨다. 그 덕에 내가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지식과 지혜를 내면화하려 노력하는 일이 헛되지 않다는 위안을 얻었다. 함께 접속한 56명을 보며 같은 방향의 길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고무되기도 했다.

    

이번 주에도 열심히 들어야지. 횟수가 네 번밖에 되지 않아 아쉽지만 완강한 후에는 선생님의 저서를 읽으며 모자란 학습량을 채우면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 1주년을 맞이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