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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Oct 21. 2024

콘서트 관람을 빙자한 나들이 이야기 - 1

보아 콘서트 후기 첫번째

내 연어초밥

10월 13일 일요일 오전 11시 50분, 나는 예정대로 수서역에 도착했다. 식당을 찾아가기 전 화장실을 가려 했건만 입구 바깥까지 늘어선 줄에 놀라 발길을 돌렸다. 볼일은 지하철역에서 보면 되겠지. 기차에서 올림픽공원 근처 초밥집을 세 군데 정도 찾아두었고 그중 가장 가까워 보이는 곳에 지하철을 타고 갈 생각이었다.

     

2년 전 처음 잠실주경기장에 가려고 올라왔을 땐 수인분당선 개찰구를 못 찾아 헤맸었는데, 그동안 경험이 좀 쌓여서인지 지하철을 척척 탔다. 3호선 타고 1개 역만 이동했다가 바로 8호선으로 환승해야 해서 조금 애매한 경로였지만 택시비도 아낄 겸 부지런히 타고 내렸다. 의외로 갈아타는 일은 전혀 귀찮지 않았고 짧은 거리라도 걷는 것보다는 훨씬 편했다.

     

그러나 열심히 찾아간 초밥집은 다찌만 한 줄 있는 작은 가게로, 점심 손님들로 가득 찬 상태였다. 주말엔 예약을 안 하면 자리 잡기가 힘들다는 직원의 안내를 듣고 가게를 나와 택시를 불렀다. 식사가 너무 늦어지면 박물관을 둘러볼 시간이 짧아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다행히 두 번째로 방문한 식당에는 빈 자리가 많았다. 인테리어는 먼젓번 집이 더 일식집 같고 아늑하긴 했지만 이번 가게도 깨끗하고 넓고 쾌적했다. 나 말고 혼자 밥 먹는 손님이 꽤 있는 데다 좌석에 자리한 작은 태블릿으로 간편하게 주문할 수 있는 점도 좋았다.

     

아침을 아이스 카페라떼 한 잔으로 때웠던 나는 전투적으로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일단 모듬초밥 중 가장 비싼 것을 한 세트 시키고 연어 초밥 단품을 추가하려다가, 사케동 사진을 보고 멈추었다. 약간의 망설임 끝에 모듬 세트와 사케동을 둘 다 누르고 사이다까지 추가한 후 주문을 전송했다. 직원이 음식을 가져다주며 나를 신기하게 쳐다볼 것이 조금 걱정되었지만, 혹시나 그렇게 되면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기로 다짐했다. ‘제가 배가 고파서요...’

     

요리 두 개를 정갈한 나무 쟁반에 담아 가지고 온 분은 다행히 맛있게 드시라는 말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도한 마음으로 광어 초밥에 와사비를 올리고 간장을 듬뿍 찍어 입에 넣었더니, 맙소사. 탄성이 절로 나왔다. 기대한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맨날 집에서 배달 초밥만 먹다가 오랜만에 제대로 된 것을 먹으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초밥 12개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사케동으로 넘어가자 연어가 어찌나 두툼하고 고소한지 하나씩 줄어가는 게 아쉬웠다.

     

그렇게 나는 2인분의 식사를 부수고 사이다까지 넉넉히 마신 후 유유히 가게를 나섰다.


이 많은 음식이 다 내 뱃속으로 들어갔다니



공원이랑 박물관이랑

한성백제박물관으로 가는 길을 검색하니 이번에도 1개 역만 가서 환승이었다. 이번 여행엔 유독 한 개 역 이동이 많다고 생각하며 5호선을 타고, 바로 9호선으로 갈아타 한성백제역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깜짝 놀랐는데,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역사가 완전히 새것이었다. 내부 디자인 역시 어느 역에서도 보지 못한 독특한 스타일이었다. 박물관을 지으면서 새로 만든 역이겠거니 짐작하며 출구로 향했다.

     

박물관 가는 길은 올림픽공원의 담벼락을 따라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걷는 평화로운 산책길이었다. 간간이 코를 찌르는 은행 냄새에조차 가을 정취가 물씬했다. 그렇게 조금 걷자 금방 박물관의 세련된 외관과 함께 공원의 푸르고 너른 잔디밭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선가 올림픽공원이 우리나라의 센트럴파크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날 내가 본 광경은 정말로 그런 별명을 얻기에 충분했다. 선선한 공기를 쐬러 나온 수백 명의 서울 시민이 돗자리를 펴고 앉아서, 또는 누워서, 혹은 놀이를 하면서 주말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곳곳에서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와 활달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 그들과 함께 공을 던지고 받거나 배드민턴을 치는 어른들을 보니 내 기분까지 명랑해졌다. 오늘 남편과 아이도 둘이서 울산대공원에 가기로 했으니 지금쯤 저렇게 신나게 놀고 있을 테지. 흐뭇하게 상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박물관 건물은 무엇을 모티브로 설계했는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백제 관련 유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아는 어떤 유명한 유물과도 닮지 않았다. 답은 한 번의 검색으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건물 외형은 몽촌토성의 윤곽을 나타내면서도 해양국가 한성백제를 상징하는 배 모양으로 디자인하였으며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설계하였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https://korean.visitkorea.or.kr/)

      

아하, 몽촌토성 모양이었구나.


한성백제박물관은 요렇게 생겼다.

      

한성백제박물관은 크게 서울의 선사 문화, 왕도로서의 한성, 한강을 둘러싼 삼국의 각축이라는 세 분야의 전시실로 나뉘어 있었다. 로비에는 풍납토성의 성벽을 자른 거대한 단면 모형이 있어 박물관의 상징처럼 관람객을 맞이하는 모습이었다.

     

성을 쌓는 백제인들. 모형이 어찌나 리얼한지 노동강도가 생생히 전해진다


전시실은 규모는 작지만 알차고 아름답게 구성되어 있어 안내판을 읽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훅훅 지나갔다. 금방 콘서트 입장 시각이 다가와 꼼꼼히 볼 수 있었던 건 선사시대 전시실 뿐이었다. 첫 번째 식당에 헛걸음한 일이 떠오르면서, 처음부터 두 번째 가게에 갔다면 최소 3~40분은 절약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몹시 아쉬웠다.

     

미련을 가득 안은 채 2전시실을 후다닥 둘러보고 나오는데, 삼국의 역사를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선생님과 학습지를 들고 경청 중인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모둠이 내가 본 팀만 해도 서너 개는 되었다. 일요일에도 박물관에 견학을 왔으니 학교는 아닐 테고, 아마 사교육의 일환인 듯했다. 그런데 아무리 서울 애들이라 해도 저 초등학생들이 벌써 역사(사회) 과목까지 사교육을 받는다는 건 좀 이상했다. 어찌됐든 목에 핏대를 세우고 열강하는 선생님들이 존경스러웠기에, 아이들이 전시실에 가득한 시청각·촉각 자료의 도움을 받아 학습 내용을 잘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기를 바라며 박물관을 나왔다.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였는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였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박물관을 보면 그 나라의 국격을 짐작할 수 있다는 구절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짧은 시간이나마 한성백제박물관을 방문한 후 그 주장에 적극 동의하게 되었다. 한 나라나 한 도시를 대표하는 국립박물관도 아닌 작은 시립 박물관조차 이렇게 잘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의 문화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문득 박물관 마니아로 유명한 <일상이 고고학>의 저자 황윤이 이 한성백제박물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해졌다. 아마 제법 긍정적인 평을 내리지 않을까.

      

그렇게 역사의 향기에 흠뻑 취해 다시 은행나무 길을 걷던 나는 대로변에 즐비한 아파트와 주상복합들을 보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저 건물들은 한 평에 얼마나 할까 하는 세속적인 호기심에 사로잡혀 버렸다.

     

- 2편(마지막)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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