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가 예뻐서 감탄한 노래가 있었다. 노랫말에 어울리는 짧은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서 브런치에 소개하고 싶었지만, 그럴싸한 스토리를 지어내는 일이 너무 어려워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브런치 지뉴 작가님의 연재 브런치북을 읽어나가다, 그 소설의 주인공들이야말로 바로 내가 상상했던 이야기 속 그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글은 내가 즐겨 듣는 엔시티의 음악에 지뉴 작가님의 소설 <우리가 저 높이 날아오른다면>을 오버랩한 결과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고등학생 신우가 송이와 진호를 만나, 서로에게 의지와 힘이 되어주며 꿈을 향해 성장해 가는 이야기입니다. - 지뉴 작가님 브런치북 <우리가 저 높이 날아오른다면> 소개글
신우와 송이, 진호는 저마다 상처와 아픔을 안고 있는 열여덟 살 청소년들이다. 신우는 여섯 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으며, 송이는 사사건건 오빠와 비교하는 부모님 아래에서 개성과 취향을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자랐다. 진호는 한국인 양아버지와 결혼한 베트남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온 아이로, 근수 패거리와 같은 거친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세 아이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는 모범생이 되어 어른들에게, 학교 규칙에 고분고분 따른다고 해서 가벼워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마음 깊은 곳에 어둠이 드리워진 이들은 일탈을 통해 간신히 하루하루를 살아갈 기력을 얻는다. 신우는 남몰래 담배를 피우는 습관이 있고, 송이의 손목에는 자해한 자국이 가득하며, 진호는 오토바이를 타고 등하교한다.
작가는 어른들 기준에서 비행을 일삼는 이 고등학생들을 문제아로 묘사하지도, 마냥 순진하고 착한 아이들로만 그리지도 않는다. 진호가 다문화가정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욕설을 퍼붓는 근수조차 선입견을 배제한 채 중립적이고 개방적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나조차 비행 청소년에 대한 편견을 덜어내게 만들었다.
가장 반항적이라는 사춘기 시절에조차 부모님과 선생님께 대든 적 한 번 없는 범생이었던 나는,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아이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중에도 신우, 송이, 진호처럼 본성이 고운 친구들이 있었을 텐데도 금지된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무섭고 못된 애들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편협하고 경직된 태도는 그들과의 대화와 소통을 막고, 자기파괴적 일탈이 아닌 좀더 건강한 방법을 택하도록 이끌 기회조차 없앨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소설 속 삼총사에게는 밝고 건전한 세계로 나아갈 잠재력이 충만하다. 신우는 현명하고 애정 넘치는 신이나 선생님을 통해 글쓰기라는 새로운 재능에 눈을 뜬다. 진호는 베트남에서 성공한 치킨집 사장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아르바이트에 열심이고, 송이는 그저 남들만큼만 살고 싶다는 신우를 다그쳐 제대로 된 꿈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는 송이가 말하는 꿈이란, ‘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하고 싶은데 아직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되고 싶은 것보다 하고 싶은 게 많은 송이의 버킷리스트에는 김우빈을 닮았다는 신우와의 ‘연애’ 도 올라 있음이 분명하다.
소설 초반부터 은근히 암시된 신우와 송이의 러브라인은 결말로 갈수록 분홍빛을 더해가며 독자들의 애를 태웠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 꼭 해리 포터 시리즈의 론과 헤르미온느를 보는 것 같았다. 고등학생 때 이성친구는커녕 또래 남학생을 볼 기회도 없었던 나는 둘의 풋풋한 사랑을 보고 다시 사춘기 소녀로 돌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마음이 설렜다. 서로가 서로에게 첫사랑이니 얼마나 소중하고 애틋할까? 상대가 세상에 오직 유일한, 특별한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저 나이이기에 지닐 수 있는 순수함이 돋보였다.
둘은 소설이 끝나기 직전에야 이어진다. 어린 연인은 함께 탐조(자연 상태에 있는 새들의 모습이나 울음소리를 있는 그대로 관찰 또는 감상하면서 즐기는 행위 – 소설 속에 언급된 사전적 정의) 여행을 갔다가 그림 같은 설경 속에서 입을 맞추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신우의 시점에서 쓰여진 소설이니만큼 이후 에피소드에서는 신우의 행복감이 직접적으로 전해져오는데, 꼭 그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은 노래가 있다. 엔시티 드림의 <같은 시간 같은 자리>이다.
정류장에서 좀만 더 멀어도 좋을 텐데
보폭이 괜히 작아지곤 해
마음 같아선 보이는 벤치마다 잠시
앉았다가 가고 싶은데
마냥 신이 나 웃고 떠드는
너를 보며 걷는 길
다 왔다 안녕 잘 들어가
너 마저 보고 갈 테니까 어서 들어가
예쁜 뒷모습이 사라지고 나서
돌아서는 그 순간, 벌써 네가 그리워
유난히 헤어지는 게 싫은 어느 저녁
일단 널 불러서 세운 채
더는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wait,
내일 다시 우리 만날 때까지
널 따뜻하게 해 줄 Hug 마저 할래
하늘거리던 두 개의 그림자
어색해진 분위기
★다 왔다 안녕 잘 들어가
너 마저 보고 갈 테니까 어서 들어가
예쁜 뒷모습이 사라지고 나서
돌아서는 그 순간 벌써 네가 그리워
한 발자국 walk you home 그 걸음은 무거워
두 발자국 walk you home 그 걸음은 아까워
세 발자국 walk you home 그 걸음은 힘겨워
네 발자국 walk you home 그 걸음은 아쉬워
잘 자고 안녕 내일 만나
몇 시간 뒤면 기다렸던 주말이니까
데리러 올 테니 늦잠 자고 나서
이따 두 시 거기서
우리 다시 만나자
엔시티 드림이 이 곡을 발표했을 당시 멤버들 나이가 겨우 15세에서 18세였어서인지, 마치 또래의 신우가 송이를 데려다주며 부르는 노래 같다. 특히 주말에 만날 약속을 하는 마지막 구절은 바로 앞에서 이야기하는 듯 생생하다. ‘이따 두 시 거기서’ 다시 만날 생각에 두근거려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30편에 가까운 에피소드를 통해 한층 가까워지고 친밀해진 세 친구는 좀더 높이 날아오를 준비를 한다. 신우는 송이의 영향으로 담배를 끊으려 노력할 것으로 보이고, 할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와 어머니의 숨겨진 비밀을 직면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기를 것이다. 송이의 손목에는 더 이상 붉은 줄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진호는 친구들과 함께 고향인 베트남을 방문할 예정이다.
성격도 관심사도 모두 다른 세 친구의 공통점은, 하늘을 날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송이는 자유롭게 훨훨 나는 새를, 신우는 날아가는 비행기 소리를, 진호는 날개가 있는 닭을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새도, 비행기도, 닭도 다 날 수 있잖아? 물론 닭은 새나 비행기에 비하면 높이 날지 못하겠지만, 이 세상엔 분명 높이 나는 닭도 있을 테니까... - (11화 몽현도에 떠오른 무지개 중에서 송이의 대사)
날고 싶어하는 세 친구가 공항에서 베트남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모습에서 소설은 막을 내린다.
아직 모든 것이 불확실한 때, 가야할 방향도 걸어가야 할 길도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운 나이. 사춘기란 원래 그렇게 어렵고 괴롭게 생겨먹은 시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우와 두 친구의 고군분투를 보며 느낀 것은, 그 시기가 단지 어른의 미성숙한 버전이거나 프로토 타입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미덕이 존재하는 독립된 인생의 한 구간이다.
마지막으로 세 친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을 하나 더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꿈을 향해 비상하는 신우, 송이, 진호에게 딱 걸맞는 음악이라 자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