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꽤 부서졌다. 부서진 채로 살고 있다. 왜 부서졌을까?
드라마 선덕여왕 속 미실의 유명한 대사에 답이 있다.
여리디 여린 인간의 마음으로 너무도 푸른 꿈을 꾸는구나.
저 푸른 꿈 때문이다. 나는 평생에 걸쳐 푸른 꿈을 꿔 왔고 그래서 부서지면서 살아왔다. 그렇다면 나는 왜 푸른 꿈을 꾸게 된 걸까? 누구도 답해줄 수 없다. 타고난 기질에 삶의 여러 조건이 더해졌을 거라고 추측할 수밖에.
아무튼 이렇게 사는 건 너무 힘들다. 힘들다는 것을 자각한 건 아주 최근이다. 더 이상은 이런 식으로 나를 무너뜨리면서 살 수는 없다고 느꼈다. 처음으로, 그저 편안해지고 싶다고 외쳤다.
그러면 푸른 꿈을 포기해야 할까? 아니, 포기할 수 있을까?
포기할 수 없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의 집합체다.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고 소중하고 고귀한 것들이라서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 내가 그것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느냐와는 별개로, 언제까지나 꿈으로서 내 안에 남아있어야만 한다.
다만 내가 너무 힘들지 않도록 덜 크게, 덜 넓게 추구할 수 있을 뿐이다. 덜 깊게는.... 가능할까?
그러니까 나는 어쩌면 영원히 스칼렛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스칼렛을 부러워하고 배우고 싶어 하면서도 아주 깊숙한 곳에서는 멜라니를 숭배하지 않는가. 그렇지만 지금의 내 모습은 스칼렛도 멜라니도 아닌 애쉴리를 닮아 있다.
이런 자기 인식은 아이에게 나의 방식을 권할 것이냐는 문제로 이어진다. 여기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1. 역시 드라마 선덕여왕 중에서, 어린 덕만의 꿈에 나타난 성인 덕만은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덕만아, 지금부터 많이 힘들 거야. 그리고 많이 아플 거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을 거고, 너무너무 외로울 거야. 사막보다 훨씬 메마르고 삭막할 거야. 모든 걸 다 가지는 것 같지만, 실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할 거야. 그래도 견뎌야 해, 알았지? 견뎌.
2. 소설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중에서 덤블도어 교수는 해리에게 진실을 감춘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널 너무나 아꼈던 거란다. 나는 네가 그 사실을 아는 것보다 너의 행복이 더 중요하고, 내 계획보다는 네 마음의 평화가 더 중요하고, 그 계획이 실패했을 경우에 희생당할 목숨들보다 너의 목숨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거야. 네가 지금 여기에 살아 있고 잘 지내고 또 행복할 수 있다면 내가 무엇을 신경 쓰겠느냐? 나는 내가 그토록 한 사람을 책임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단다.
당연히 내 선택은 후자다. 그렇지만 아이가 그걸 허락할까?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날까? 내 아이가 내면에 가지고 태어난 성질은 어느 쪽일까. 아직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