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존 전략은 사고思考였다. 생각으로 일상을 지탱하는 동안 감각은 묻혔다. 그렇게 지낸 세월이 어찌나 오래되었는지 깨어있다는 게 도대체 어떤 상태인지조차 까맣게 잊어버렸었다.
그것이 다시 찾아온 건 투사도 집착도 사라진 후였다. 그 후에도 나는 남아있었다. 이 순간에 그저 내가 존재한다는 느낌, 살아있다는 기분. 실존의 감각이 거기 있었다.
단 일 분이라도 비어있음을 견디지 못하던 내가 이제 한 시간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중심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온 순간 삶이 충만해졌다. 내 세계에서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실체가 추상에 억눌렸을까.
몸이 글을 거부한 날 깨달았다. 지금은 언어가 감각을 방해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익숙한 언어 대신 새로운 언어를 찾아야 했다. 밤 열 시가 되기 전 서점에 달려가서, 시집 두 권을 손에 들고, 이도윤 시인과 이태수 시인의 말을 들었다.
드디어 나도 시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느껴진 많은 것들.
○○도서관에 걸어가는 길의 볼을 식히는 차디찬 공기와 손바닥을 데우는 카푸치노 커피의 온기.
엄마, 이 반에는 삼십일 명이 있어. 내가 삼십일 명 이름을 다 지었어. 나를 부르고 말을 거는 아이의 목소리.
거실 창문을 뚫고 꽂히는 햇살. 빛의 직진, 눈부심.
Grey Rain을 부르는 해찬이의 목소리. 내 기분도 제법 회색이다. 단지 먹먹하지 않은, 밝고 가벼운 회색.
그냥 거기 존재하는 순간 밀려오는 상실감의 파도는 크고 드세지만 나를 집어삼킬 만큼 거대하진 않다. 치고 지나갈 뿐이다. 휘청거리게 하고 넘어뜨려도 휩쓸어가지는 못한다.
생의 본질에 더 가까운 것은 감각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