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작가의 두 가지 저서에서 완전히 상반되는 감상을 느낀 적이 있다. 오래전 사회학자 남경태 선생이 쓴 대중 역사서 종횡무진 시리즈를 접했을 때였다.
<종횡무진 서양사>를 읽었을 땐 눈앞이 환하게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산만하게 흩어져 있어 한데 모으기 어려웠던 과거의 사실이 몇 가지 틀 속에 가지런히 정리되는 듯했다. 교과서를 재구성하는 능력이 뛰어난 선생님이 특강을 열어준 듯, 갑자기 서양사 공부의 난이도가 확 내려가는 것을 체감했다.
이 책의 핵심 이론은 ‘서양 문명의 중심은 서진西進해왔다’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아한 문명의 씨앗이 고대 그리스, 로마, 중세 서유럽, 근대 영국을 지나 현대 미국에 이르기까지 차례차례 서쪽으로 옮겨가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는 내용이다.
그 외에도 역사 속에서 일관되게 관찰할 수 있는 서양 문명과 동양 문명의 차이를 특정 개념과 틀을 이용해 설명해주는 방식을 취했다. 예를 들어 고대로부터 동양에는 관의 정치 권력이, 서양에는 민의 경제적 자유가 강한 전통이 있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혼미하기만 하던 역사 공부에 새로운 길잡이를 얻었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부푼 기대를 안고 <종횡무진 한국사>를 펼친 나는 그러나, 이게 정말 같은 사람이 쓴 텍스트가 맞는지 몇 번이나 확인해야만 했다. 서양사에서 느낀 후련함은 온데간데없고 혼란과 당혹감만이 엄습했다.
<종횡무진 한국사>의 한국사 인식은 비판할 요소로 가득 차 있는, 서양사처럼 되지 못한 미완성의 역사라는 것이었다. 마치 서양이 역사의 최종 승리자인 이유를, 우리나라가 패배한 원인을 까발리려는 듯했다. 세계사와 동일한 잣대로 재단된 한반도의 역사에서 한국사만의 고유한 특성과 발달 논리라는 기준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대학에서 배운 역사는 그런 게 아니었다. 교수님들도, 교재를 쓴 원로 학자들도 서양사는 서양사로, 동양사는 동양사로, 한국사는 한국사로 가르쳤다. 거기엔 우월한 역사도 열등한 역사도 없었고 그 문화권의, 그 문명의 역사가 있을 뿐이었다. 그게 다 잘못된 방식이었단 말인가? 그럼 내가 배운 한국사는 국수주의에 물든, 왜곡된 서사였나? 한동안 풀리지 않는 의혹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대학 시절의 벽돌책 중 낙오한 녀석들이 아직도 친정에 남아 먼지를 섭취하며 질긴 생명을 이어오고 있다는 걸 얼마 전에야 알았다. 한 권 한 권 상자에 집어넣는 도중 얘네들을 읽으며 느꼈던 오래된 위화감이 되살아났다.
교과서나 개설서를 통해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항상은 아니더라도 꽤 자주 일정하게 반복되는 구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눈치채게 된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중국사에서 유목민의 정복왕조와 한족이 세운 왕조가 교대로 나타나는 양상
통일신라 말기와 고려 말기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중앙정부의 지방통제력 붕괴와 호족의 발흥
당의 조용조와 조선의 수취 체제(전세․공납․역)
양차 세계대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전쟁 후반 미국의 결정적인 개입
물론 이 사례들을 제대로 파고 들면 하나하나 다 다른 현상과 제도라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그러나 적어도 입문자의 입장에서는 유사성을 느낄 여지가 있다.
그러면 이런 식의 짝짓기를 통해 공통점과 차이점을 정리하고, 어떤 테마나 주제를 세워서 거기에 속할 만한 또다른 역사적 사실을 탐색하면서 학습을 이어나가면 이해와 암기가 좀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이상한 일은 그 어떤 개설서도 이러한 접근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분명 조금이라도 비슷한 점을 언급할 법한 지점에서도 오직 그 체제, 그 구조, 그 조건에 대해서만 길고 자세한 설명을 할 뿐이었다. 위 사례들 뿐 아니라 남경태 선생이 정리한 동서양 문명의 차이 역시 역사학자들이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역사 전체를 통틀어 작동하는 프레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듯한 태도였다.
굳이 그래야 할 까닭을 알 수 없었던 나는, 원래 교수님들은 학생이 조금이라도 쉽고 편하게 공부하는 걸 싫어하는 존재들인지 궁금했다.
나름의 가설을 세우게 된 건 최근에 와서였다. 문득 내가 느낀 당혹감과 위화감은 역사학과 사회학의 문제의식이나 목표 설정 자체가 다르다는 데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학과 역사학은 모두 과거의 사실을 다룬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사회학은 그 속에서 보편적 원리를 이끌어내고 일반화시켜 이론을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두는 반면, 역사학은 개별 사실의 특수한 작동 조건을 밝혀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두 학문에서 바라본 과거가 그토록 달랐던 게 아닐까?
사회학에서 일반화를 포기한다는 것은 학문적 정체성을 포기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이다. 역사학에서 특수성을 부정하는 행위 역시 다른 인문계열 학문과 구별되는 역사학만의 자리를 지워버리는 것과 같다. 상반된 역사 해석은 각자의 문법과 논리를 이용해서 도달한 당연한 결과였다. (덤으로 사학과 교수님들이 반드시 학생을 괴롭히기 위해서 개론서를 쓰신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양쪽 학계에 모두 몸담고 있지 않으며 교양 차원에서 역사를 알고 싶은 나는 (대학원 근처에도 안 가봤고 현재 전공과 전혀 관련없는 직종에 종사 중이며 순전히 지적 호기심으로 역사책을 본다) 두 분야의 장점만 취한 방법론을 적용하면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를테면 나만의 비교군을 만들어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견주어 보는 과정을 거치면 개념을 좀더 쉽고 정확하게 익힐 수 있을 것이다. 반복되는 흐름이 보이면 가상의 법칙을 세워서 다른 시대와 지역의 역사를 유추해 볼 수도 있다. 모두 어려운 역사 공부를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하지만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똑같은 사건과 제도는 없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야 과잉 일반화의 오류를 피하고, 역사학을 사회과학으로 둔갑시켜 버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각국 역사의 고유성을 침범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나는 사회학과 역사학이 모두 개인의 성향이 아닌 사회의 구조로 세상을 설명한다는 점이 참 좋다. 선택 주체로서의 인간이 지닌 비합리성을 보완해 합리성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의 가르침도 그대로 따르지 않는 탈모범생인 지금의 나는 자유롭고 즐겁다. 내가 알고 싶어서, 내게 편리한 방법을 선택해서 학습할 수 있다. 지금은 학교 다닐 때보다 더 공부가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