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출판사가 원고를 읽어주었다

지금 거절이 중요한 게 아니다

by 세온

투고한 지 3주째. 며칠간 메일함 확인도 안 하고 덕질이나 하면서 빈둥거리던 중이었다. 덕질 계정 비밀번호를 바꾸려고 메일함에 들어갔더니, 거절일 게 확실한 출판사의 답장이 하나 와 있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읽어 내려갔다. 몇 초 후, 두 눈을 부릅뜨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 편집자님은 내 샘플 원고를 읽어보신 게 분명했다!


투고해 본 사람들은 안다. 대부분의 출판사는 무언의 거절을 택하며 메일을 보내주는 곳조차 소수라는 것을. 샘플 원고까지 읽어보는 케이스는 극히 드물다. 더군다나 내 원고는 출판사들이 이름만 들어도 기피한다는 에세이였다! 심지어 글의 매력과 장점까지 정확히 짚어주고 계셨다.


작은 1인 출판사에 관심 기울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만 살펴보아도 재치가 넘치는 글을 쓰시네요.
유머와 감성을 섞는 비율도 잘 아시는 것 같고요.
다만 전반적으로 저희가 추구하는 문장의 온도와는 다소 다른 측면이 있어
원하시는 답변드리지 못함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저희는 여러모로 부족한 작은 출판사에 불과하므로
혹시나 마음 상해하지 마시고
어느 정도 시스템이 갖춰진
좀 더 건실하고 탄탄한 출판사에 타진해 보시길 바랍니다.

사정상 회신이 늦었습니다.
조만간 뜻깊은 결과 만들어내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치레일 수도 있다. 그럼 뭐 어떤가? 인사치레라도 내가 기분이 좋으면 됐지. 앞으로 계속 거절당하면 또 어떤가. 내 글뭉치를 출판사의 공고한 성벽 너머로 던졌고, 그것이 닿았고, 친절한 메모와 함께 돌아왔다는 경험만으로도 투고는 가치 있는 행위였다. 출간만이 원고에 생명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길도 아니다. 이미 다른 길을 위해 열심히 퇴고 중이다.


일단 오늘은, 어느 훌륭한 편집자님이 긍정적인 말씀을 해주셨다는 사실을 즐기자. 아, 달콤해!


*1인 출판사의 과도한 업무량을 고려해 혹시 궁금해하셔도 출판사명은 밝힐 수 없는 점,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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