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세온입니다. 오늘은 제 어머니의 16주기 기일입니다.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엄마에 대한 글을 써 보았어요.
엄마가 떠난 지 벌써 오랜 세월이 지났다.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것은 16년 전 그때와 똑같다.
얼마 전 동계올림픽이 끝났다. 그때도 올림픽 기간이었다. 엄마랑 약속도 했다. 김연아의 경기를 같이 보기로. 엄마는 경기 당일 쓰러짐으로써 약속을 깼다. 첫번째 수술 후 엄마의 의식이 돌아왔을 때 내가 말했다.
- 엄마, 연아가 금메달 땄어.
- 정말? 너무 잘됐다. 그거 보러 가야 하는데.
그러나 엄마는 경기를 보지 못했다.
엄마의 인생은 내게 온통 물음표 투성이었다. 어른들은 날보고 어린애가 책을 어쩜 그리 많이 읽냐며 신기해 했지만 내겐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엄마의 삶이라는 문제를 풀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낳은 첫째의 생명이 백일도 되기 전에 스러지는 바람에 나는 강제로 맏이가 되었다. 엄마는 그때 무엇을 부여잡고 버텼을까. 언니의 그림자는 살아남은 엄마의 가슴 속, 무한히 깊어서 보이지도 않는 곳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겁이 난 나머지 차마 그곳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왜 엄마는 삼촌과 이모를 먹이고 입히고 대학까지 보내놓고 당신은 국민학교만 나왔다는 사실을 평생 부끄러워 했을까. 문제집을 풀다가 졸려서 잠깐 누운 열 살짜리 나를 보고 엄마는 회초리를 들고 왔다. 회초리로 방바닥을 탕탕 치며 고함을 질렀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아 다시 공부를 했다. 문제집이 알록달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온통 회색일 뿐이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 중에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사랑한다면서 왜 날 때리고 나만 보면 얼굴을 찌푸릴까? 모순의 해답은 어떤 책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나와 동생이 싸울 때면 엄마는 매를 들고 달려왔다. 책상 밑에, 식탁 밑에 숨은 날 쫓아와 가구가 가려주지 못한 내 신체 부위를 타격했다. 내게 가장 강렬하게 남은 엄마의 기억은 두 눈을 부릅뜨고 매를 들고 쫓아오던 모습이었다.
아빠는 술만 마시면 엄마에게 라면을 끓여오라 시켰다. 엄마가 끓여오면 먹기를 거부했다. 다시 끓여오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새로 끓여오면 또 거부했다. 잠에서 깨어나 우두커니 서 있던 내 눈에 들어온 건 새벽 내내 부엌과 식탁을 수십 번 왕복하던 엄마의 뒷모습이었다.
엄마는 말로 아빠를 후벼팠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집을 나갔다. 엄마가 영영 나를 떠나는 거라면 어쩌지?현관을 나서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물음표만 떠올렸다.
아무리 봐도 서로를 증오하는 게 분명한 두 어른은 대체 뭘 위해 같이 살고 있는 걸까?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답을 내지 못한 생각은 방향을 바꾸어 나를 공격했다. 다양한 방법으로 남을 해치는 장면이 끊임없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병원에서 내린 진단명은 가해 강박이었다. 그래도 엄마는 내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
엄마는 엄마처럼 살지 말라는 숙제를 내고 떠났다. 나는 그 목표를 위해 인생 전체를 갖다 바쳤다. 그리고 이뤄냈다. 엄마처럼 살지 않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병원에 계속 다녔다. 진단명은 우울로 바뀌어 있었다.
몇 번이고 부서지면서 숙제를 해놨더니 이젠 검사를 해줄 사람이 없다. 엄마도 약을 먹었어야 했다. 그래야 내 숙제를 봐줬을 게 아닌가.
동생이 물었다. 왜 누나는 엄마의 납골당에 가지 않느냐고. 그때 난 계속 숙제 중이었다. 이제는 완수한 과제물을 들고 납골당에 갈 수 있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 웃으며 찍은 사진을 제출할 것이다.
나는 아직도 엄마를 그렇게 만든 세상을 용서하지 못했다. 그래서 반항한다. 시지프스가 되어 돌덩이를 밀어올린다. 떨어지면 밀고, 다시 떨어지면 또 밀고.
이제는 알겠다. 라면을 끓이고 끓이던 엄마도 시지프스였다는 것을.
언젠가 밀어올릴 힘이 남지 않으면 나도 엄마처럼 되겠지. 그래도 엄마를 만나면 웃을 것이다. 그때는 엄마도 나를 보고 웃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