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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Apr 10. 2023

제비보다 자미가 좋아졌다

옛날 중국 드라마 <황제의 딸> 이야기

 아마 내 또래의 독자들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옛날 경인방송에서 방영했던 <황제의 딸>이라는 중국 드라마를. 이 작품은 90년대 후반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오늘은 이 추억의 드라마에 대해 몇 가지 수다를 떨어보고자 한다.

     

# 역사상 가장 완벽한 투톱 주연


왼쪽부터 자미의 시녀 금쇄 역의 범빙빙, 가운데 자미 역의 임심여, 오른쪽 제비 역의 조미. 신인이었던 그들은 지금은 셋 모두 중화권을 대표하는 대배우이자 톱스타가 되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황제의 딸>의 주인공은 조미(자오웨이)가 분한 제비와 임심여(린신루)가 연기한 자미다. 투톱 주연을 맡은 두 여배우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용호상박, 난형난제, 호각지세 그 자체다. 미모면 미모, 연기면 연기, 심지어 대본 상의 비중까지도 도저히 어느 한쪽의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쟁쟁했다.

     

 방영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툭하면 제비와 자미 중 누가 더 예쁘냐를 두고 친구들과 토론을 벌이곤 했는데, 결과는 항상 무승부였다. 우리 엄마한테까지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구했고, 엄마의 대답 역시 같았다.

    

 오죽하면 난 그때 중국 배우들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줄 알았다. 우리나라의 김희선이나 이영애의 미모도 대단하지만 저 두 사람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제비와 자미는 아름다웠다.

    

# 줄거리

    

 드라마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청나라 건륭황제는 지방 순시 때 한 여인과 정을 통하는데, 그 사이에서 자미가 태어난다. 성인이 된 자미는 황제인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북경에 오고, 거기서 고아에 평민인 제비를 만나 친구가 된다. 제비는 몸이 약한 자미를 위해 대신 황제를 만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다가 화살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지고, 황제는 제비를 자신의 딸로 오해한다. 결국 제비가 자미 대신 공주에 책봉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자미를 사랑하는 어전시위 이강과 제비를 좋아하게 된 오왕자는 두 사람을 제자리로 되돌려놓기 위해 노력한다.

     

 실제 드라마는 글로 쓴 줄거리보다 훨씬 재미있다. 탄탄한 구성과 매력적인 캐릭터, 배우들의 호연, 화려한 궁중의상과 액션 씬까지,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흡입력을 자랑한다.

     

# 제비와 자미

    

 여기서 제비와 자미라는 두 대조적인 주인공에 대해 잠깐 논하고 넘어가겠다.  


    

자미와 제비.


 제비는 길거리에서 무술을 팔며 살아가던 평민 출신답게 매우 자유분방하다. 자기를 옭아매는 황실의 규율을 갑갑해하고 툭하면 궁을 탈출할 기회만 엿보며, 조심성 없는 성격 때문에 사고도 많이 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의리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길 만큼 정의롭기도 하고, 유머와 재치가 넘쳐 주위 사람들을 즐겁고 재미있게 해준다.     


 이런 제비는 시청자들에게 그야말로 인기 폭발이었다. 사극에서 일찍이 보지 못한 참신한 캐릭터였던 데다, 배우 조미가 누구도 대체 못할 대단한 연기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대중은 제비의 사랑스러움과 천진난만함에 열광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에 비해 자미는 공주라는 신분에 걸맞게 아주 우아하고 품위가 넘치며 미모와 지성과 교양을 모두 갖춘 엄친딸이다. 특히 마음씨가 거의 부처님 급으로 착해서, 자신을 죽도록 괴롭하고 고문하기까지 한 황후 일당을 너그러이 용서하는 충격적인(?) 행보를 보인다.   

   

 물론 자미도 인기가 많았지만, 아무래도 제비의 톡톡 튀는 매력에 비하면 자미의 성격은 상대적으로 조금 재미없어 보였다. 착한 게 너무 지나쳐 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나 같은 잼민이들한테는 제비의 인기가 자미의 그것을 훨씬 웃돌았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다시 드라마를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 그녀의 고귀함  


 언뜻 보면 자미는 온화하고 차분한 품성 덕에 소극적이고 연약해 보인다. 정반대 성격인 제비에 비하면 더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사실 자미는 절대로 소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용감한 인물이다.     

 그녀는 ‘황제의 딸’로 인정받기까지 그야말로 온갖 죽을 고생을 다 한다.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타고 사냥터로 잠입하는 수밖에 없을 때, 자미는 그게 얼마나 위험천만한지 알면서도 오직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그 일에 도전한다.  

    

 또한 궁녀의 신분으로 입궁하여 온갖 수모와 고문까지 당하지만, 황제에게 인정받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황제가 암살당할 위험에서 몸을 던져 아버지 대신 칼을 맞고 죽음의 문턱까지 가기도 한다. 황제를 속인 것이 들통나 처형당할 위험에 처했을 때도, 동료가 혼자 모든 걸 뒤집어쓰고 죽을 것을 염려해 도주를 단념한다.     


 이 모든 시련과 고통도 아버지를 찾고 싶다는 자미의 의지를 절대 꺾지 못한다. 그녀는 겉으로는 약해 보이지만 마음의 힘은 누구보다도 강했던 것이다. 그런 그녀는 결국에는 승리하여 진정한 ‘황제의 딸’이 된다.  

    

 나는 어른이 되어 이 드라마를 다시 보면서, 이런 자미의 강인함에 감동받았다. 그녀는 모든 사람이 본보기로 삼을 만한 인물이었다. 용기, 희생정신, 지혜로움, 인내심, 재주, 모든 점이 고귀함과 숭고함 그 자체였다.

    

 내 생각에 이 드라마를 쓴 대작가 경요는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여성으로 자미라는 인물을 설정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니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제비가 아닌 자미다. 가장 중요한 주제 자미의 가족 찾기, 정체성 찾기, 사랑 찾기인 것이다.      




 훌륭한 작품들이 으레 그렇듯이, <황제의 딸> 또한 OST가 매우 아름답다. 더불어 앞서 언급한 경요 작가의 로맨틱한 대사도 일품이다. 무엇보다, 너~무 재밌다.   

   

 오늘은 또 무슨 드라마를 볼지 고민 중이라면, 망설임 없이 이 작품을 추천한다. 적잖은 분량을 눈이 벌게져 가며 밤새워 정주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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