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온 Apr 15. 2023

허벅지 튼튼이가 테이퍼드 핏을 애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역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패션에 대해서 완전히 무지한 내가 옷에 관련한 글을 쓰다니. 그만큼 최근에 구매한 테이퍼드 핏의 청바지가 마음에 든다는 말이다.

     

 나는 상대적으로 슬림한 상체(‘상대적으로’가 중요하다)와 튼실하기 그지없는 하체의 소유자로, 지지리도 바지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나 같은 체형은 그저 치마를 입는 것만이 살길로, 실제로 외모를 열심히 가꾸었던 20대 시절엔 옷장이 치마로 가득했다. 다행히 나는 튼튼한 허벅지에 비해 종아리는 가늘어서, 적당한 길이의 치마를 찾아 입으면 체형의 단점이 감쪽같이 커버되었다.

     

 그러나 맞벌이와 육아로 하루하루가 전쟁 같은 지금은 치마를 입기가 매우 귀찮다. 행동거지의 불편함은 긴 치마를 입으면 어느 정도 해결되지만, 여름이 아니고서야 스타킹이나 레깅스, 타이즈 등을 신어야 춥지 않은데, 그 길쭉하고 쫙 달라붙는 것들을 바쁜 아침에 다리에 우겨넣고 있을 여유가 없는 데다 건강에도 좋지 않다.  

   

 이러한 연유로 내키지 않아도 바지와 친해져야 했지만, 도무지 이 바지핏이란 것들은 도무지 나를 조금이라도 길고 날씬하게 보이게 해줄 생각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사진 출처 : 스파오 페이스북


 스키니 진은 하체발달형이라면 입에도 담지 말아야 할 존재이며, 무난하다는 스트레이트는 허벅지만 꽉 끼고 종아리는 헐렁헐렁해서 전혀 무난하지 않다. 부츠컷은 일자 핏보다도 요상해 보일 것이며 와이드 핏은 안 그래도 작은 키를 몇 센티미터나 줄여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아. 총체적 난국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의류 매장에서 테이퍼드 핏이라고 하는 처음 보는 어려운 용어가 쓰인 태그가 보였다. 점원에게 물어보니 위에서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라고 했다.


 그래, 바로 이거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입어 보니, 다행히 이 테이퍼드 핏이라는 것은 나에게 썩 잘 어울렸다. 허벅지 부분은 통이 여유로워 부담스러운 느낌이라고는 없고, 반대로 종아리 부분은 타이트해서 상대적으로 날씬한 부위를 더 돋보이게 해주었다.

    

 밑단을 롤업해서 발목을 드러나게 입으니 경쾌한 느낌도 났다. 거기에 어울리는 운동화를 찾아 신으니, 한 다섯 살은 어려진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실로 오랜만에 거울을 보고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이제 나도 자신감 있게 바지를 입을 수 있다!   


테이퍼드 핏 바지. 사진 출처 : sk스토아
테이퍼드 핏 청바지. (사진출처 : 티몬)


  

 나는 해당 바지를 색깔별로 사들고 매장을 나섰다. 매일매일 편하게 바지를 입고 출근할 생각을 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롤업을 해도 나름 괜찮게 입을 수 있어서 길이 수선을 맡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더욱 기분이 좋았다. 기성복의 시대에 평균 키와 평균 다리 길이에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아오며 느낀 설움이 어느 정도 달래지는 것 같았다.  

   




 누군지 몰라도 테이퍼드 핏이라는 것을 만들고 대중화시켜준 분들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그분들 덕에 나의 평생에 걸친 바지에 대한 원망이 조금은 불식되었다. 이런 핏을 입고 다녀도 올드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 만큼 유행하는 아이템이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니 유일한 걱정은 언젠가 또 트렌드가 바뀌어서 이 핏이 촌스러운 취급을 받으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다. 돌고 도는 유행 속에서 축복받은 체형이 아닌 사람은 패션 약자가 되기 마련이다. 부디, 테이퍼드 핏이 오래오래 유행해서 많은 하체발달형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학의 정석이 날 죽이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